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마을을 닮은 집
남해 바닷가 마을의 집들은 해안선에서 시작된 가파른 경사에 순응하며 서로 어긋나고 겹쳐지며 서로를 보호하듯 모여 있다. 자연이 내어준 형상을 따른 배치이기에 의도된 규칙을 찾을 수 없다. 안길로 걸다 보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다로 점차 다가가는 모험의 즐거움이 무척 컸다. 가장 남해스러운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남해에 무척 많은 펜션이 생겼다. 해외의 마을을 본떠 만든 독일 마을, 미국 마을, 일본 마을이 들어서기도 했다. 점점 남해스러운 모습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렸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로 들어선 많은 펜션은 위압적인 벽을 두르고 바다를 향해 큰 창을 낸 채 오션뷰라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은 유인한다.
남해에 어울리는 건축
‘남해 적정온도’는 마을 안길에서 본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굽은 길을 따라 모인 시골집들은 처마가 겹치거나 높낮이를 달리하며 틈을 만든다. 그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이 여백은 땅의 경사에 따라 형성된 것이지만 매우 절묘했다. 그래서 마을을 닮은 집을 따라 틈틈이 바다가 보이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대지는 산 중턱을 둘러 지나는 주 도로 아래 움푹 꺼진 곳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도로 위쪽이 인지성이 높아 펜션 부지로 선호된다. 인기 없는 땅이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바닷가 마을 또한 주 도로 아래 있어 마을의 모습을 따르기엔 오히려 더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움푹 들어가 쉽게 인지할 수 없으나 그 때문에 더 조용하고 위요감이 느껴지는 길을 통해 부지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 아래로는 항구에 정박한 작은 배들이 보인다.
주차장은 숙소 동의 땅보다 한 단 높은 데 위치한다. 주차를 하고 내리면 세 개의 처마가 겹쳐진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면 처마 아래 얇게 띄워진 여백 너머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마을의 굽은 길에서 본 모습과 유사하다. 틈으로 보이는 바다는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직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다와 나의 거리를 상상하며 들어선 객실, 그곳에서 작은 항구와 펼쳐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