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현기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나우랩 NAAULAB ARCHITECTS
대지는 전원주택이 모여있는 마을 한가운데 있다. 서쪽으로 6m 이상의 고저차가 있는 경사지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낮은 산자락이 펼쳐진 시원한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건축주는 30대 초중반의 두 형제로, 서울에 일자리와 각자의 가정을 꾸렸다. 첫 설계 미팅 당시 한창 일할 나이라는 생각에 직장까지 출퇴근이 쉽지 않을 거란 우려를 전했다. 그러나 형제는 자녀들과 함께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조곤조곤 들려줬다.
6m가 넘는 경사지에 집을 어떻게 앉힐 것인지가 큰 고민이었다. 3m 높이로 땅을 뚝 잘라내 위에는 형, 아래는 동생이 사용하는 단순한 설계를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공유 주방이 한 집에 몰릴 수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두 가정의 중간 공간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땅의 높이를 4단계로 구분해 2미터씩 내려가는 스킵플로어 형식의 테라스 주택을 만드는 것이었다.
형제는 설계를 진행하기 전부터 두 집에서 공간의 공과 사를 어떻게 나눌지 결정한 상태였다. 각 집에 거실과 침실 그리고 마당을 갖되 현관과 주방은 공유하기로 했다. 결정을 정리하여 가능한 넓은 마당을 면하는 30평 중반의 사적 공간과 10평 중반대의 공유 주방을 갖는 것으로 계획했다.
2층의 주 현관으로 들어서면 동생 집이 있고 2m의 반 층을 내려가면 공유 주방이 있다. 다시 2m를 내려가면 1층 형 집이 있는데 1층의 커다란 지붕은 상부층에 있는 동생 집의 마당이자 그 아래 있는 형 집 마당의 처마 역할을 한다. 지하 마당의 크기를 최대한 넓히기 위해서 필로티 하부와 마당을 묶어 공간을 만들었다. 각 집에서 공용공간까지의 균등한 이동 거리와 고저차를 응용한 서향 풍경의 확보 그리고 개별 마당까지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켰다.
설계 시 크게 두 부분에 초점을 맞췄는데, 하나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스킵플로어 구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계단을 활용했다. 현관에서 주방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확장하여 한쪽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영화나 게임을 할 수 있는 취미 공간을, 다른 한쪽에는 단의 개수를 조절하여 독서 공간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빛과 바람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서향집에서 오전 시간 동안 부족할 수 있는 자연광을 확보하기 위해 거실과 방, 방과 현관 등 개별 공간의 매스를 분리하여 그 사이에 작은 정원과 빛 우물을 계획했다. 더하여 경사진 건물에 생기는 지하 옹벽은 습기를 머금어 곰팡이나 해충 등이 꼬일 수 있으므로 지하 옹벽과 건물을 분리하여 빛과 바람의 통로를 만들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토목공사비와 짧게 끊기는 스킵플로어 구조로 시공사가 괴로워했고, 더딘 진도와 공사비 증가로 선택과 포기의 상황에 마주하며 건축주 또한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2년에 걸쳐 집이 완성됐다. 입주를 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건축주로부터 카톡이 왔다. 노을을 앞에 두고 테라스 난간에 발을 올린 채 맥주잔을 들어 올린 사진과 함께. “소장님들 오늘 하늘이 예술입니다. 집짓기 정말 잘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