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현자연 인턴 글 & 자료. 백에이어소시에이츠 100A associates
산과 하늘에 둘러싸인 땅
경주 산내면에 위치한 대지는 ‘산속의 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과 하늘에 둘러싸여 있다. 땅으로부터 그늘에 햇살을 희미하게 머금은 유현의 아취를 품은 곳이다. 장소를 방문하는 객의 시간을 아침부터 밤중이 아닌, 해 질 무렵부터 아침까지의 시간으로 설정해 병풍처럼 에워싸인 앞산의 산등성이 너머 황혼으로 맞이하고자 했다. 펼쳐져 있는 지평에 어린 어스름한 모습에는 비단 어둑한 형상뿐 아니라 내면의 뜻 모를 비애와 셈을 잊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이러한 심상에서 출발해 드리운 그늘을 대지의 한계로 정의하지 않고 그 이상의 유희로 기록하고자 했다.
안식을 위한 길
여정은 투박하지만 단단한 물성의 덩어리로 향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세속의 고독이라는 자유로움 속에서 그윽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는 그늘진 길과 바람 소리, 잔잔한 못에 담긴 해 질 녘 석양. 자연과 동화되어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번잡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멀어질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변주보다 수묵이 종이에 번지듯 서서히 대기에 젖어 들고 묵힌 흔적을 차차 지워냄으로써 안식에 다다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간을 들고 나는 과정에서 산과 하늘을 향해 열어둔 동선은 모호한 경계로 작용한다. 땅의 정취를 겸허히 받아들이되, 적절한 닫힘으로 정적과 고요 속에 오롯이 몰입되는 선미를 추구했다.
빛과 그늘이 만나는 자리
어렴풋이 빛나는 잔양을 따라 진입하며 마주하는 정갈한 물성은 가녀린 빛을 흩트리지 않고 섬세히 받아낸다. 간소한 벽에 반사되는 빛과 그늘의 교묘한 마찰은 저무는 저녁과 돋아나는 아침 사이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경주옥’ 곳곳에 맺힌 음영은 더 낮고 작은 소리, 더 깊고 짙은 소리로의 미감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머무는 이가 단아한 풍취를 음미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