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제이앤피플
시간을 담은 집
‘재호가在好家’는 시간을 담은 집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한 건축주는 어느덧 은퇴를 내다보는 중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서귀포 앞바다 뒤로 한라산이 보이는 그곳에 다시 내려와 지병이 있는 부모와 함께 살 집을 새롭게 마련하기로 했다. ‘재호가’라는 집의 이름은 건축주의 이름에서 가져와 지은 것이다.
그곳에 그대로 있던 것들
오래 전 서울로 떠난 건축주를 기다리고 있던 건 그의 부모만이 아니다.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집, 유년 시절 타고 놀던 어린 비자나무, 아버지가 가꾸던 귤나무, 돌담, 등굣길. 집은 낡았지만 나무들은 훌쩍 자라 새로운 가족을 품어줄 커다란 품을 갖게 됐다. 고향의 많은 것들은 건축주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만들어 온 추억과 그 추억이 깃든 것들을 지켜주고자 했다. 더불어 가족을 위한 공간이 반드시 새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건축주의 아버지가 직접 지은 대지 좌측의 창고동은 그 위치가 나쁘지 않았고, 내부 목재 구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따라서 창고를 추후 작업장이나 카페 등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하여 이를 배치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가족의 개성을 존중하는 공간
기존의 집은 건축주 부모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낡은 집터부터 현무암, 손때가 묻은 집안의 자재들, 일어나면 창 너머로 늘 보이는 귤나무들까지. 아버지가 더 나이 들더라도 이러한 추억을 계속해서 떠올릴 수 있게끔 창턱을 낮췄고 따뜻한 햇볕이 드는 서까래 밑에 툇마루를 마련했다.
종갓집 맏아들과 맏며느리인 건축주 부부는 가족 행사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제사실과 충분한 크기의 부엌을 요청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고향에 내려왔지만 오랫동안 아들 내외와 떨어져 살아왔기에 공간을 적절히 분리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 동은 기존 집 위치에 별채로 마련하고 본채 및 주방으로 연결되는 소통의 복도를 두었다.
외부 공간에도 가족의 개성을 담고자 했다. 아들을 위해서는 추후 온실로 쓰일 외부 공간을, 아내를 위해서는 부엌과 연계된 외부 공간을, 아버지의 소일거리를 위한 귤나무 마당을 계획했다. 건축주의 아들, 즉 손자의 공간은 프라이버시를 좀 더 고려해 2층 동쪽에 원룸 형식으로 계획하고 별도의 진출입 동선을 마련했다. 가족 구성원 각각을 위한 내외부 공간이 있어 평소 각자의 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명절 혹은 가족 행사 때는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
‘재호가’가 옛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을 넘어 다가올 수십 년 가족의 시간이 담기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