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봄 건축연구소
동쪽에서 달려오는 작은 동산은 대지를 지나 서쪽으로 가며 나직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남서향으로 열려 있는 땅이다. 마을 군데군데 놓인 파란색 샌드위치 패널 지붕들은 담장을 높이면 가려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 나면 푸른 마당, 담장의 수평선과 그 위의 하늘, 동쪽 가까운 작은 동산과 남서쪽으로 열린 원경의 조화가 근사할 것 같았다. 집은 그 풍경 뒤에 얌전히 놓여 이것들을 담아내는 장치가 되어야 했다.
집을 가로로 길게 앉히고 가능한 벌려 두었다. 이에 따라 대지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지만 위압적인 느낌은 들지 않도록 한다. 가능한 오브제가 아닌 배경으로 남으려는 제스처가 필요하다(건축이 배경 된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단순한 매스와 그 매스를 상쇄할 온화한 톤의 마감재를 택했다. 치장벽돌의 구축성을 드러내기보다 그것을 없애 하나의 덩어리 또는 단일한 벽면을 만들어 중정의 보이드가 도드라져 보이기를 의도했다.
평면을 늘리니 중정이 만들어진다. 중정은 가까이 있는 마당과 멀리 있는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내부는 중정을 매개로 외부 공간으로 확장된다. 새로울 것 없는 고전적 수법이지만 실패할 리도 없는 ‘치트키’다. 평면 구성을 따라 배치된 중정은 다섯 개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현관의 리셉션, 막내딸의 음악 작업실을 위한 기능적 이격, 집의 중심 공간이자 거실의 확장, 아내이자 엄마인 이 집의 실질적 주인의 손님맞이를 위한 뒷마당, 욕실의 프라이버시와 욕조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위한 장치.
다섯 명인 가족과 일대일 대응해 중정 이름을 짓고자 가족들의 한자 이름까지 받아 놓았으나 능력 밖의 일임을 깨달았다. 직원이 ‘다섯, 뜰’이라는 집 이름을 제안했고 건축주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편 중정 벽 일부를 연장해 만든 낮은 담과 가벽들은 외부 공간을 주차장과 앞마당, 현관과 안마당으로 나누는 장치이자 동측 이웃의 보강토 블록을 가리는 스크린으로 기능한다.
조경이 자리 잡고 나니 앞마당은 시원한데 반해 뒷마당은 오밀조밀하고 풍성하다. 은밀한 느낌도 들고 살림집 같다. 남서향이라 볕도 제법 들어온다. 이렇듯 외부 공간은 앞뒤로 다른 분위기를 지닌 채 중정과 여러 개의 창을 통해 서로 투명하게 조우한다. 나머지는 빛과 그림자의 역할이다. 날씨와 햇빛의 질감에 따라 벽돌이 분홍색과 노란색, 베이지색으로 편차를 보이는 것을 보는 소소함도 이 집에 사는 이에게만 주어진 즐거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