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디디스튜디오
초등학교 앞 삼거리 코너
대지는 화곡초등학교 앞 삼거리에 위치한다. 위쪽 동네를 연결하는 지점으로 차량 통행이 빈번하고 유동인구가 많아 상가들이 발달해 있다. 서쪽으로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마주한 덕에 주변 건물로부터의 간섭이 없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시원한 전망과 상권 등을 고려할 때 주택으로서나 상가로서나 입지환경이 매우 우수한 편이다. 특히 코너에 자리해 마을의 이정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매입한 상가주택에서 지내온 건축주는 노년을 대비해 각종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신축을 결심했다. 신축을 통해 기존 건물에 부재했던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등 시설을 마련하고, 미흡했던 단열 성능을 보완했다. 하지만 기존 건물은 대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현재의 건폐율을 적용하면 한 층의 바닥 면적은 좁아질 따름이었다. 심지어 측량 결과 실제 대지 면적이 지적도상 면적보다 작은 값으로 도출되기도 했다. 구도심에서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건폐율에 맞는 건축 면적을 확보하니 실제로 남은 공지는 공부상 면적보다 작아 주차장과 조경 면적을 확보하는 일에 어려움이 따랐다.
다행히 도로가 두 면에 접해 주차장과 계단, 엘리베이터의 위치는 다양하게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최선의 선택은 계단을 일조사선 방향으로 노출시키는 것. 방해가 적고 안전한 쪽에 주차장을 배치하고 상가와 주택의 공간 구성을 고려해 엘리베이터와 출입구의 위치를 설정했다. 경사진 도로에 면해 1층 상가는 위치에 따라 1m가량 천장 높이가 다르다. 가장자리 상가의 법정 천장고를 확보하고 후면의 일조사선을 지키기 위해 2층과 3층은 반으로 나누어 한 단 정도의 높이차를 두고 해결했다. 이처럼 공부상보다 작은 실제 대지 면적, 기존보다 줄어드는 바닥 면적, 도로 경사와 주변의 낮은 인접 대지를 고려한 일조사선 등 제약 조건이 많았지만 건축으로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기보다 단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경량철골주택
건축주는 독특하게도 구조 형식과 외장 재료를 먼저 결정한 상태로 건축가를 찾았다. 철골을 통한 건식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 도로 쪽은 인도 없이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로 비계를 설치하기에 위험한 조건이었다. 이에 반해 철골구조물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후 현장으로 반입해 건설하는 방식으로 신속함은 물론 안정성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했다. 외장면은 패널 한 장으로 3개 층 전체를 크레인을 통해 설치하는 방식이기에 비계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또한 콘크리트에 비해 먼지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주변으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부지가 학교 앞 통학로이므로 건식공법의 장점이 한층 두드러졌다.
샌드위치 패널을 활용한 입면 디자인
주택에 건식공법을 적용하는 일도 흔치 않지만, 샌드위치패널을 사용하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 건축주의 요청에 따라 철골구조와 샌드위치패널을 주택에 적용하는 과제를 풀어가며 기대와 염려를 동시에 품었다. 가족은 집이 창고나 공장처럼 보이게 될 것을 우려했다. 수차례 회의 끝에 샌드위치 패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패널의 경우 판을 매우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벽돌처럼 알갱이가 모여 전체를 이루거나 석재처럼 줄눈이 만들어지지 않기에 입면을 한 장의 패널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듯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물성 자체를 활용하는 입면 디자인을 고안했다.
또 다른 우려점은 회색빛 금속 색상이 주로 사용되는 샌드위치패널의 경우 공장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었다. 이에 금속의 속성이 인지되지 않는 백색을 적용해 차가운 이미지로 치환했다. 물성보다 따뜻한 색감이 먼저 느껴지기를 의도했다. 입면의 사선은 조형적으로 완결된 형태로, 하나의 빙산 덩어리처럼 보인다. 이는 도시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기도 한다. 기존 가로의 상황을 존중하고 반사시키는 배경이 되기에 가로에는 이렇다 할 맥락이 부재했다. 삼거리 모퉁이는 동네의 정체성을 견인하는 장소로서 적합한 위치다. 샌드위치패널의 저렴한 이미지가 아닌, 해당 재료로만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찾아 특징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삼각형 기둥의 계단
조형의 마무리는 계단에서 이루어졌다. 기능상 평면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계단은 노출 계단으로 계획했다. 계단을 형성함에 있어 초기에는 하나의 기둥을 고려했으나, 구조적으로 여러 테스트를 통해 현재의 삼각형 기둥을 만들어냈다. 4층 주택의 대문을 상징하는 일종의 솟을 대문으로 주택의 입구를 상징하도록 했다.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변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삼각형의 사선이 전체 조형을 다루는 도구가 된 셈이다. 세 개의 수직 창, 세 개의 수평 창은 사선으로 정리되면서 작은 요소들은 독립적이기보다 전체를 구성하는 집합적 관계를 갖는다.
풍부한 평면
1층 상가는 코너의 이점을 살리면서 코어의 위치를 결정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차장은 교통 흐름상 방해가 적은 쪽에 위치시켰다. 2층과 3층에는 엘리베이터 우측에 실외기를 배치해 소음과 진동이 근린생활시설에 전달되지 않도록 했다. 4층 주택은 넓은 시야를 가진 쪽으로 테라스와 함께 거실을 배치했다. 거실을 서쪽으로 둔 이유는 남측에 이웃한 건물이 높고 가까워 서측 운동장 쪽으로 시야를 틔워주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실 남측에 둔 발코니는 추억과 관계한다.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남서방향으로 보이는 기다란 계단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족 역시 이곳을 주제로 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고. 재건축이기에 마땅히 회상할 만한 요소를 찾던 참이었다. 발코니를 통해 보이는 계단이 마침내 추억의 장소가 됐다. 분위기가 독특한 다락은 연속된 구조체의 리듬으로 기도실의 인상을 자아낸다. 구조 형식이 철골인 터라 지붕하부에 구조물을 노출시켜야 했다. 면적 자체는 넓지만 구조물의 크기만큼 낮아지게 된 다락을 두 공간으로 나눠 높이차를 뒀다. 다락 턱에 앉아 바라보는 난간과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의도한 대로 시적이다. 새로 지은 주택인 만큼 가족에게 선물 같은 풍부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