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현자연 인턴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플랜
지산 돌집
지산 돌집의 부지는 무등산국립공원과 광주 도심의 경계면이다. 자연과 도시를 이어주는 왕복 2차선 도로에 맞닿아 있으며 높다란 은행나무 가로수와 오래된 주택들, 그리고 상업 건축물 사이에 있다. 주변 환경이 뚜렷한 주거지의 모습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상업가로도 아닌 대지는 삼각형 형태에 설계 가용면적이 62.72㎡밖에 되지 않았다. 삼각형 부지의 세 면 중 두 면은 도로에 접해있고, 남쪽을 향한 면은 인접한 건축물로 가려진 상황이었다.
협소하고 정형적이지 않은 대지는 가치가 떨어지지만, 이제 막 새로운 가정을 꾸린 젊은 건축주 부부에게는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매입할 기회이기도 했다. 건축주는 무등산 자락과 가까운 대지에 건축물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집을 짓기로 했다. 외식 사업체를 운영 하는 부부는 이 집에서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일과 취미는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동시에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주변과 집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를 요구했다. 이에 집의 구성을 층별로 구분했다. 1층은 음식을 매개로 주변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이닝 키친으로 계획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완전한 주거 공간으로, 옥상층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외부 공간으로 구성했다.
집의 외벽은 단단한 자연석인 파주석으로 처리했다. 건물의 외벽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첫 번째 경계이기 때문에 거주자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을 우선순위로 생각했다. 가로에서 봤을 때는 집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내부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천연 목재 소재의 붙박이 가구를 제작해 외부의 자연이 실내까지 이어진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적절한 위치에 간접 조명등을 설치해 집에 은은한 온기를 더했다.
느슨한 경계
도로와 건축물에 접하는 벽은 개구부를 최소화하고 개방적인 동측 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빛과 바람이 들도록 평면을 계획했다. 내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해 거실의 개방감을 확보했다. 계단 동선은 층마다 있는 공간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계획했다. 오르내리는 부담은 줄이고 공간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출입문은 주차장을 거쳐 주거 공간으로 접근하는 주택 현관과 다이닝 키친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현관을 따로 두었다. 다이닝 키친의 현관문은 전면 외벽의 거친 파주석 마감 면과 어울리는 고古목재로 제작했다. 다이닝 키친과 주택 전실의 경계는 미닫이문을 두어 유연한 공간 활용을 꾀했다. 전실에는 거친 마감의 통석 디딤돌과 콘크리트 원형 세면대, 낮은 조도의 팬던트 조명을 두어 내밀한 공간으로 연출했다. 2층의 거실은 계단과 이어져 넓은 개방감을 갖는다. 계단과 거실의 경계에서 일부 시선을 차단한 난간벽은 맞은편 정원으로 시선을 이끈다. 이는 주거 공간의 안락함을 보장하고 사생활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안방과 화장실을 제외한 다른 공간은 최대한 느슨한 관계를 갖도록 배치했다. 아이 방과 계단, 복도와 세면 세탁 공간, 취미실과 계단, 거실과 정원의 경계에는 투명한 유리 개구부를 두거나 아예 구획하지 않았다. 사용자가 공간의 사용 목적과 행태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설계하면서 가구까지 함께 디자인했고, 통일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유연한 개입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했기 때문에 계단을 중심으로 실室과 실室을 어떻게 나누고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였다. 해결 방법으로 계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계단이 층마다 기능과 형태, 진행 방향이 변화한다. 외부와 내부의 전이 공간인 1층 전실에는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진 계단 구조물을 두었고, 재질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투명한 유리 난간을 설치했다. 2층에서 3층으로 넘어가는 구간은 상부 슬라브slab를 덜어내 긴장감 있는 맞물림을 만들어 냈다. 3층 이상부터는 색다른 방식으로 벽을 열어 리듬감 있는 현絃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했다. 이처럼 이 집의 계단은 가까운 공간의 특성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공간에 유연하게 개입한다.
경관의 일부로서의 집
첫인상을 결정하는 외벽의 파주석은 원재료의 가공을 최소화하고, 부정형의 덩어리를 정성스레 쌓아 올려 만들었다. 이 석재 외벽에 맞닿은 2m 폭의 보행 구간은 매끈한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보행자들이 집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 위의 차량 운전자들은 도심과 자연의 경계에 선 이 집을 이정표로 인식하기를 바랐다. 상부는 밝은색의 외단열 마감으로 처리했다. 이는 다소 부피가 큰 건물 상부를 가볍게 보이게 하고 하부의 물성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함이다. 외벽의 무질서한 개구부들은 단단하고 거친 석재 장벽에서 오는 중량감을 덜어준다. 건물 상부로 갈수록 표면적이 넓어지는 창호와 옥상의 캐노피canopy 구조는 원경의 무등산과 시각적으로 관계 맺는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일상에 다양한 자극을 선사한다. 산바람 속에서 차茶 향을 음미하고, 틈틈이 가꾸어 놓은 정원을 살피며 비 오는 날의 도시 전경을 감상한다. 어슴푸레한 저녁 옥상에 따뜻한 조명이 들어와 공간을 밝힐 때, 삭막한 가로를 거니는 사람들도 문득 저마다의 저녁 풍경을 떠올리는, 그런 동네의 모습을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