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노말건축
‘무우운’은 경주에 위치한 한옥 숙소다. 계획에 앞서 한옥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한옥을 특정 시대나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통 한옥, 혹은 현대적 재해석과 같은 특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현시대에 만들어질 한옥을 생각하며 설계를 진행했다.
계획은 마당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했다. ‘ㄱ’자 한옥 두 채를 두고 남측에 진입 마당을, 북측에는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깃든 사적史跡 ‘나정’을 바라보는 마당을, 동측에는 신라의 역사를 품은 ‘남산’을 바라보는 마당을 구획했다.
진입 마당에서 특별한 첫인상을 주기 위해 두 가지를 시도했다. 먼저 두 한옥이 만나는 모퉁이에 45도 꺾은 입구를 만들어 맞이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진입 마당을 향한 입면에는 반침을 두어 한옥 구조에서 자유로운 파사드를 만들었다. 동일한 규격의 회벽을 연속시켜 질서를 부여하되, 객실의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ㄱ자 평면의 두 객실에는 모서리 칸을 중심으로 입구와 가까운 곳에 거실, 먼 곳에 침실이 있다. 객실은 도로와 마주한 진입 마당으로는 굳게 닫힌 반면 각 마당을 향해서는 열려 있다. 거실과 부엌에는 네 짝 창호가 있어 전체를 열 수 있고, 침실에는 한지와 삼베문을 더해 내밀하지만 채광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지와 삼베를 통해 여과되는 빛은 ‘무우운’이라는 이름처럼 안개와 구름을 연상시킨다.
반침으로 닫힌 면 상부에도 맞창을 두어 환기를 유도했다. 객실 가장 끝은 욕실로, 서까래가 드러나는 높은 천장 아래 문을 활짝 열면 노천탕처럼 사용할 수 있다. 낮은 욕조는 타일로 만든 현대적 우물이기도 하다.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우물을 일컫는 ‘나정’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분위기와 사용성, 편안함 등을 고려해 실내 마감재를 선정했다. 바닥의 단차를 달리해 현대인에게 편리한 입식 공간과 한옥의 좌식 공간이 공존하도록 했다. 입식 가구와 동선이 되는 바닥에는 강화마루를 설치하고, 잠을 자거나 앉아 쉬는 곳에는 콩댐(콩을 이용한 전통 바닥재 시공 방식)한 장판지와 흙 미장으로 전통 재료의 미감을 살렸다. 벽과 천장에는 전통 한옥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색상 한지를 사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계절과 시간에 어우러지는 한옥의 특성을 즐기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