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로우 크리에이터스 LOW CREATORs 정리 & 편집. 정지연 에디터
“성이다.
집은 가족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주는 성이다.
성안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를 들고 연주를 시작한다.
단차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앉은 사람들 머리 위로 동그란 빛이 떨어진다.
세모난 하늘위로 구름이 떠내려간다.”
무던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한 아이를 안고 젊은 부부가 찾았다.
“위례에 땅을 샀다. 집을 짓고 싶다. 비용 회수를 위해 단독이 아닌 듀플렉스로 짓고 싶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젊은 건축가를 찾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 성심성의껏 작업에 응할 것이다. 둘, 기존의 건축과는 다른 결과를 낼 것이다. 셋,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서 잘 들어줄 것이다. 여러 건축가를 만나보고 온 건축주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이와 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건축주에게 우리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역시 위와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젊은 건축가와 젊은 건축주의 집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모서리 땅
위례신도시는 주변 모든 건물이 지어진지 5년 이내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한 집 걸러 한 집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고, 서로 자신을 뽐내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자인 방향을 잡는 것은 오히려 쉽게 느껴졌다.
시끌벅적한 형태보다는 번잡한 요소를 지우고 단순하고 강렬한 매스로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묵직하게 자리 잡은 모습으로 주변의 새롭고 적극적인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하지만 나지막하게 도시 속에 자리 잡기를 바랐다. 자연스럽게 도로를 등진 ‘⊐’자 형태로 건물을 배치했다.
높은 땅값과 부족한 대지로, 한 필지에 한 가구만을 짓는 일은 이제는 사치로 느껴진다. 우리를 찾은 클라이언트 역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듀플렉스 하우스’로 집을 짓길 원했다. ‘⊐’자로 배치된 건물의 형태를 따라 위쪽의 ‘ㅡ’ 부분은 임대 세대가, 아래쪽의 ‘⨼’ 부분은 주인 세대가 점유하고 안마당은 주인 세대가 점유하는 방식으로 평면을 풀어나갔다.
클라이언트
건축주와 매주 진행된 인터뷰와 워크숍을 통해 그들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건축주는 단독주택에 대한 꿈과 관심이 매우 컸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공유했다.
건축주는 높고 밝은 집 아래서 가족 음악회를 꿈꾸었다. 평소 음악 감상과 와인을 즐긴다는 그들의 소망을 담은 집을 함께 그려갔다. 1층은 가족들이 음악회를 즐기는 무대다. 거실과 주방은 2개의 단으로 나뉘어 있어 자연스레 객석과 무대가 형성되고, 동그란 아치문은 등장하는 이들에게 재미와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현관이다. 흘러 지나가는 곳이라 여겨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곳이지만, 조금은 사치를 부려 천창이 있는 포켓 정원을 만들었다. 서로 엮이는 계단과 시선, 그리고 빛으로 인해 작은 공간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인테리어는 외관의 무거움을 상쇄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커다란 볼륨이 주는 무게감에 건축주가 짓눌리지 않도록 오픈된 공간은 곡선을 활용하여 무게감을 덜었고, 조형이 주는 재미와 아름다움을 집안 내부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시간에 따라 달리 떨어지는 빛의 모습이 내부에서 잘 연출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한 형태의 조형으로 내부 공간을 만들어나갔다.
임대 세대
주인 세대의 강한 취향과 이상과는 달리 임대 세대는 보편적인 특성과 더불어 집의 조화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디자인을 진행했다. 작은 평수의 집이지만 누가 들어와서 살던지 단독주택만이 줄 수 있는 소담함과 공간감을 주는 계획을 구성하였다. 1층은 식당과 주방을 배치해 포켓 정원을 바라보며 즐거운 한 끼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고, 2층은 거실과 침실을 배치하여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평면적인 면적의 불리함을 수직적인 확장으로 동일 면적대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집은 건축주와 건축가, 그리고 시공사가 함께 짓는다. 자신들의 취향을 알고 그를 현실화 시키는 데 있어서 지속적인 협의 작업이 필요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과 순간을 함께해주신 건축주 부부의 에너지와 열정에 다시 한번 감사와 경외의 말을 드린다. 자신들의 생각이 투영된 집에서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