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지일 글 & 자료. 이코스건축사사무소
만남과 헤어짐
원목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 수업이 인연이 되어 알고 지낸 지인에게서 노후를 보낼 땅을 구했는데 이곳에 설계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당장 현장을 찾아 둘러보고 적정한 계획안을 전달했다.
하지만 아파트의 평면에 익숙했던 지인은 그 계획안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고, 때마침 현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소개받아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말 미안하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그에게 좋은 집 만드시라 덕담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인연이 없는 작업이라 여기고 있었다.
재회
1년 정도 지난 후 그 지인에게서 해당 설계사무소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울 것 같으니 대신 설계를 마무리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재차 받게 됐다. 그렇게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다행히 지난 1년 동안 건축주의 안목도 아파트 평면에서 벗어나 주거 공간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어 있던 터라 진행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다시 그리기
이전 설계사무소와 어느 정도 정리된 계획안을 보여주며 마무리 작업을 부탁하는 건축주에게 아쉬워 보이는 몇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수정해나가며 기존의 계획안은 점차 전혀 다른 새로운 주택으로 변해갔다. 건축이라는 것이 작은 요소 하나가 바뀌어도 전체가 달라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과정이었다. 원래 한 필지이던 토지를 분할하여 분양한 토지 중, 도로의 마지막에 위치한 토지를 구입한 건축주는 가족들이 생활하게 될 본채와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주택을 분리했다. 본채의 1층에는 부부침실과 거실, 주방이 위치하고 자녀 침실과 가족들의 이야기 공간인 대청마루가 계단과 이어져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전문 목수에 비견될 만한 실력을 가진 건축주의 목공방이 지하에 위치하고, 지상1층과 다락으로 구성된 박공지붕 형태의 단아한 매스를 이루고 있다. 지하 목공방에서 전면 폴딩도어를 개방하면 적당한 크기의 선큰이 있어 자연스레 풍성한 하늘을 담아낼 수 있다.
건축주의 부지런함과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은 설계와 시공과정 내내 큰 자극이 되어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집을 거의 스스로 지은것과 다름 아닌 것이 되었다. 주택 어디서든 좋은 경치를 보고자 했던 욕심으로 인해 창이 많아진 것과 두꺼워진 지붕의 마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건축주는 이 또한 좋은 경험이라 여기며 만족해하는 모습에 무척이나 감사함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