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히어 here architects
이 집의 이야기는 ‘달무지개 (Moonbow)’에서 시작되었다. 건축주는 집짓기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까운 가족을 떠나보냈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풍경 속에서 이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우리는 달무지개라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공간의 구성과 재료를 상상하며 집을 설계해 나갔다.




빛을 통해 떠오르는 기억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은 결국 ‘빛’이다. 빛이 어떻게 퍼지고 어떤 재료를 만나 반사되며 어떤 방식으로 보여지느냐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와 사용자의 경험이 달라진다. 이 집에서는 어슴푸레한 빛, 푸른 기운, 고요한 분위기 등 달무지개가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공간 안에 담아내고자 했다.
천연 슬레이트는 이러한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였다. 동틀 녘, 해 질 녘, 정오의 햇살, 인공조명 등 시간과 날씨에 따라 은은하면서도 다채롭게 건물 표면을 빛을 통해 바꿔냈다. 우리는 건축주가 이곳에서 달무지개의 이미지를 경험하길 바랐다.




일과 생활이 공존하는 공간
이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건축주의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건축주는 조부모님,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프리랜서로서의 업무와 각종 클래스 진행, 유튜브 촬영을 병행할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또한 재택근무를 하는 동생과 함께 삼대가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네모난 방에서 유튜브 촬영과 잠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어요. 하나의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이 반복되다 보니,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건축주 인터뷰 중
건축주는 이 집에서 온전히 하루를 누릴 수 있길 원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일반적인 단독주택과는 다른 공간 구성을 통해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집을 설계했다.





작업과 휴식의 전환을 위한 설계
일상 공간과 업무 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하기 위해 2층과 3층을 동서 방향으로 나눠 배치했다. 동쪽의 침실에서 복도를 지나 작업실로 이동하는 동선은 물리적인 거리감을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드레스룸과 욕실을 지나게 하여 작업과 휴식 간 심리적 환기를 유도했다.
작업실은 남북으로 열린 공간 속에서 별도의 건물처럼 인지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외부에서 보면 작업실 벽면은 주택과 분리된 또 다른 매스로 보이며 천연 슬레이트와 구로 철판 도어를 적용해 내부와의 대비를 강조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마치 외부 공간을 지나 작업실로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부 또한 편안한 톤의 주거공간과는 달리 차분하고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로 조성해 공간의 성격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시니어를 위한 배려가 담긴 1층 설계
1층은 조부모님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주방, 거실, 침실, 욕실을 단차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모든 공간에는 포켓 도어를 설치해 평소에는 개방감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거실과 침실 사이의 포켓 도어는 소파와 침대를 맞닿게 배치해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고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했다. 1층 곳곳에는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여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님이 보다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두 개의 정원이 품은 시간의 흐름
이 집이 자리한 대지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재된 풍경 속에 있다. 상점, 음식점, 공장, 창고, 주택이 질서 없이 뒤섞인 모습은 단독주택과 어울리지 않는 듯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런 풍경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달무지개’는 주변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심한 대로와 무채색의 골목 가운데 자리한 이 집이 마치 달무지개처럼 주변에 잔잔한 빛이 되어, 낯설지만 익숙하고, 조용하지만 생기 있는 마을의 또 다른 풍경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