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자료. 노말 건축사사무소 NOMAL
노말HQ는 노말 건축사사무소(이하 노말)의 사무실이자 노말을 이끄는 조세연 소장의 집이다. 일도 하고,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책도 읽는···. 일과 삶이 공존하는 모호한 경계를 가진 공간.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이 집에서, 노말HQ를 설계한 건축가이자 집주인인 조세연 소장, 그리고 매일 집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복기 소장과 최민욱 소장을 만나 일과 삶, 그리고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집과 사무실을 결합한 공간을 꾸린 계기가 있었나요?
조세연 시작은 예산 때문이었어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을 마련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한 공간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됐죠. 초기 세팅 비용부터 매달 나가는 임대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작은 사무실 하나 꾸리는 데도 비용이 적잖이 들더라고요. 1층은 저와 아내, 반려견 고래가 살며 잠을 자고 쉬는 공간이고, 2층은 주방과 식당, 그리고 노말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2층은 평일 낮에는 주로 업무를 위한 공간이지만, 저녁이나 주말에는 저와 아내를 위한 주거 공간이기도 해서 너무 사무실 같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집 같지도 않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다기능의 공간, 살아보니 어떤가요?
조세연 2층 공간을 구상할 때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보니, 일과 식사뿐 아니라 독서, 게임, 커피, 미팅 등 잡다한 활동들이 마구 혼재되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처음부터 기능이나 이름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어요. 현재 총 네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업무 공간에 딱히 고정석이 없어요. 안쪽에 마련한 방에서 집중해서 일할 때도 있고, 넓은 테이블에 자유롭게 앉아 대화를 나누며 일을 하기도 해요. 이렇게 인터뷰나 미팅도 하고요.
업무가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저녁이나 주말에는 저와 아내가 함께 밥도 먹고 책도 읽고 미팅용 모니터로 영화도 보죠. 누군가에게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공간일 수도 있지만, 작은 공간에 여러 요소를 넣어야 하는 경우 이렇게 정의되지 않은 공간일수록 더 풍요롭게 활용할 수 있어요. 작은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방법이기도 해요.
2층 평면도 ©︎NOMAL
단점은 없나요? (웃음)
조세연 업무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언제든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곧 단점이 되기도 해요. 그건 온종일 일을 놓지 못한다는 뜻이거든요. 퇴근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죠. 초창기엔 자다 일어난 차림에 슬리퍼 바람으로 올라와서 일하기도 했어요. (웃음)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반드시 효율과 성과에 비례하지는 않더라고요. 지금은 출퇴근할 때 반드시 옷을 갈아입고, 고래와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가요. 집에서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저만의 의식이죠. 퇴근 후에는 일부러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해요.
재택근무 경험자로서 상당히 공감되네요.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 외부에만 있는 점도 공간 구분을 위한 일종의 장치인가요?
조세연 이 집은 30년 된 다가구주택으로 원래 각 층마다 개별 세대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부에는 계단이 없었어요. 지금은 1, 2층 모두 제가 쓰지만 그렇다고 내부에 계단을 새로 설치하기엔 공간이 너무 부족했죠. 층을 오르내릴 땐 밖으로 나가 외부 계단을 통해야만 하는데, 사실 이 불편함을 오히려 즐기고 있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 공기를 쐬곤 하죠. 이따금 비가 오는 날엔 처마 아래에 서서 비를 구경하는데, 그런 경험에서 오는 기쁨이 커요. 가끔 2층에서 야근을 할 때도 1층에서 지내는 아내의 일상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장점이죠. 적당한 불편함이 때로 삶의 풍요와 질서를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1층을 주거 공간으로, 2층을 업무 공간으로 구성한 이유가 있나요? 저라면 접근이 더 쉬운 1층을 업무 공간으로, 2층을 주거 공간으로 했을 것 같아요.
조세연 그 점에 대해 주변에서도 의아해하더라고요. (웃음) 일단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으로 보지 않고, 주거 공간은 ‘프라이빗private’, 업무 공간은 ‘퍼블릭public’ 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는 집에서는 무장 해제를 하고 심지어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거나 누워 있곤 하거든요.
그에 반해 업무 공간은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언제나 열려 있으니 훨씬 개방적인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도로 측으로 창이 없어 내밀한 공간인 1층을 프라이빗한 주거 공간으로, 창이 큰 2층을 퍼블릭한 업무 공간으로 배치했어요. 지하층에도 두 세대의 임대 주거 공간이 있어서 층간 소음 때문에 그렇게 한 이유도 있어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2층에서 시끄럽게 놀거나 스피커로 음악을 틀 때도 있거든요. 보통은 1층이 외부에서 접근이 쉽다 보니 퍼블릭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편견일 수 있어요.
최민욱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분명하게 하면 상식이라고 여기며 당연시했던 생각을 깨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내 생활에 맞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죠.
최근 이렇게 오래된 주택이나 빈집을 고쳐 살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조세연 비용 절감 목적이 가장 크다고 봐요. 대부분 신축보다 반값 이하일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건물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축 대비 60~70%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아예 신축으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도 있죠. 이 집도 겉보기엔 별로 바뀐 게 없어서인지 공사비를 말하면 놀라는 분도 있어요. (웃음)
이복기 리노베이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집은 30년이 훌쩍 넘은 집이라, 사람으로 치면 몸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어요. 면역력을 회복시켜서 앞으로 30~40년 더 오랫동안 건물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했죠. 안전 문제와 직결되니까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를 보강하고 노후화된 전기와 설비, 단열 공사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였어요. 외관은 그다음에 손을 댔고요. 오래된 건물을 고쳐 쓰는 일을 단순히 외관을 치장하거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예쁘게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아니에요.
최민욱 원래 5세대가 모여 살던 집이라 벽이 엄청 많았어요. 작은 방이 촘촘히 구획되어 있었죠. 2층을 방 없이 넓게 쓰기 위해, 한가운데 있던 기존 벽을 헐면서 구조를 보강했는데요. 보강을 위한 기둥을 벽 쪽으로 바짝 붙였더니 1층에서 문 바로 앞에 기둥이 내려오게 되는 통에, 벽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설치해야 했어요. 결국, 다소 엉뚱한 위치에 기둥이 위치하게 됐죠. 애초에 건물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탓이에요. 이렇듯 오래된 집을 고쳐 쓰는 일은 때로 계획을 무색하게 하는 변수도 많아서 상황마다 적절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리노베이션을 할까요?
최민욱 신축보다 비용 절감 가능성이 크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법규 적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신축을 하게 되면 대지에서 현행 법규를 새로 적용해야 하는데, 리노베이션을 하면 기존에 지어진 것을 그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신축을 했다면 건축 면적이 지금보다 현저히 줄었을 거예요. 1층은 거의 필로티로 비워야 했겠죠. 주차장도 만들어야 하고, 일부 면적은 도로로 내어줘야 했을 테니까요. 대지 특성상 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주차장을 만들었어도 무용지물이 됐을 게 분명하고요. 서울에 있는 이런 오래된 주택 중에 이렇게 차량 진입이 어려운 집이 꽤 많아요.
조세연 소장님과 반대로, 최민욱 소장님과 이복기 소장님은 ‘남의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한데요. (웃음)
최민욱 지금은 익숙해져서인지 그냥 사무실 같아요. 다만 가끔 야근하면서 늦게까지 있는 저녁에 조 소장 아내가 사무실에 들어올 때 여기가 조 소장 집이라는 걸 다시금 상기하죠. 따지고 보면 그냥 귀가한 건데. 마치 외부인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온 느낌? (웃음)
이복기 오히려 제 작업실 같아요. 유일하게 남의 집이라고 느끼는 경우는 조 소장이 없을 때 혼자 고래에게 밥을 주거나 배변을 처리해야 할 때죠. (웃음) 처음에는 좀 놀랐어요. 자기 공간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몇 년 전에 조 소장이 한창 벽돌에 심취해있을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성수동에 좋은 벽돌집을 구했다며 자기 집으로 초대하더군요. 월셋집에 이태리 타일을 깔고 카페처럼 큰 커피머신을 들여놨더라고요. 오래 알고 지내기도 했지만 워낙에 자기 영역에 남이 들어오는 걸 꺼리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조세연 제가 학교 다닐 때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던 집이 아주 열린 집이었어요. 누구나 들어와서 머물고 함께 작업하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곳이었죠. 그래서인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편이에요.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집이었나 봐요.
조세연 원래는 공장이었는데 누군가 아파트로 용도 변경을 해서 빌려주는 집이었어요. 층고가 3.5m나 되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죠. 당시에 학교에서 매일 모형만 만들다 보니 1:1 스케일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아파트를 빌려서 교수님들께 간단한 구조검토만 받은 뒤 친구와 둘이서 집을 고쳤죠.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요. 지금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에요. 심지어 단열재 비용 아낀다고 안 입는 옷을 끼워 넣기도 했고요. (웃음)
1층에는 넓은 거실이자 공용 작업 공간을 두고, 2층에 방 3개를 추가로 만들어 올렸어요. 2층 방에서는 잠만 자고, 주로 1층에서 생활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죠. 뉴욕은 거주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시잖아요. 높은 집세 때문에 많은 학생이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조그만 공간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가 넓은 작업 공간을 제공하니 뉴욕에 있는 여러 디자인 학교에서 패션, 그래픽, 파인아트, 필름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어요. 매일같이 모여서 서로 작업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눴죠. 그때의 경험이 계속해서 제 삶에, 그리고 이 집에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세 분은 함께 일과 삶을 공유하는 동료이자 친구 사이죠.
조세연 셋이 같은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친하게 지냈어요. 서로 일에 대한 하소연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이자 친구였죠. 전우라는 말이 맞으려나. (웃음) 언젠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다 2018년에 제가 혼자 창업을 했고, 공모전과 작은 프로젝트를 조금씩 함께 작업해 오다가 최민욱 소장이 합류했어요. 지난 1월에 이복기 소장이 오면서부터 완전체가 되었죠.
최민욱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진행해요. 무엇보다도 셋이니까 둘씩 짝을 지으면 경우의 수가 계속 바뀌어서 어떤 조합으로 묶느냐에 따라 디자인의 방향성과 시각과 관점이 달라지는 게 재밌어요. 이복기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도 각기 다른 조합으로 엮여 있는데,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명씩 짝을 짓는 방식은 새롭네요.
조세연 이런 방식을 택한 건 디자인사무소로서 ‘자기 복제’에 대한 경계 때문이기도 해요. 매번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둘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나머지 하나가 제삼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교통정리를 해줄 수도 있어요. 같은 사무소 출신이라 그런지 일 처리 방식이나 디자인 취향이 비슷해 팀워크는 제법 좋아요. 다만 개인별로 성향은 많이 다른데, 축구선수로 빗대어 표현하자면 저는 공격, 이 소장은 미드필더, 최 소장은 수비예요. (웃음)
최민욱 조 소장은 조형미와 공간적 경험에, 이 소장은 재료와 마감 방식에서 나오는 만듦새에, 저는 완성도와 디테일에 중점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큰 맥락은 비슷하지만, 서로의 다른 부분과 강점에 대해 조율하고 의지하며 작업하고 있죠. 이복기 일의 효율도 높아요. 둘이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다른 일을 볼 수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일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려는 이유도 있어요. 셋이서 한 가지만 붙잡고 있으면 그 일이 끝났을 때 다음 일에 대해 준비를 할 수가 없거든요. 둘이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는 그다음 프로젝트 수주 준비를 한다든지, 자투리 프로젝트를 맡는다든지 하면서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려는 의도가 있어요. 하나의 공간이지만 여러 층위가 존재하는 이 집과도 닮아 있는 듯합니다.
최민욱 사실 처음에 사무실 오픈할 때는 ‘건축사사무소’라는 타이틀도 붙이지 말자고 했어요. 인테리어, 기획, 그래픽, 전시···. 건축 말고도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거든요. 이복기 가구도 만들고 물건도 팔아 볼까 했죠. (웃음) 기본적인 정체성은 건축사사무소가 맞지만, 아직 여러모로 고군분투하면서 ‘노말’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걸 시도하고는 있어요. 조세연 ‘건축사사무소’라고 단정 짓는 순간 오히려 그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았죠. 건축 설계 일만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도 있었고요. ‘임스 오피스Eames Office’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는 건축가이면서 가구 디자인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무척 다양한 걸 했잖아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도 건축가이자 화가였고요.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인 ‘만가타mångata’ 프로젝트에선 건축 설계뿐 아니라 공간에 관한 모든 기획을 총괄했죠.
조세연 건축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간판이 아닐까 싶어요. (웃음) 정성 들여 지어 놓은 건물에 이상한 간판이 아무렇게나 붙어서 건물을 망치는 경우가 빈번하거든요. 그럴 바에 아예 건물 안팎의 모든 요소를 총괄해서 기획하고 디자인해 보자고 마음먹고 시도한 프로젝트가 ‘만가타’예요. 로고와 명함 제작과 같은 비주얼 아이덴티티(VI, Visual Identity)로 시작해, 가구 디자인과 스페이스 아이덴티티(SI, Space Identity) 작업까지 진행했습니다.
‘스페이스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이 아직은 생소한데요.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조세연 쉽게 말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말해요. 여러 가지 세밀한 요소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고 바꾸기도 하죠. 가구는 물론이고, 음악이 흐르는 방향에 맞춰 스피커의 위치를 지정한다거나, 공간의 온도와 조도, 꽃병이 위치할 장소를 선정하거나 포크와 나이프, 테이블 매트를 세팅하는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관여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고객이 좋아할 만한 SNS용 설치물도 기획했죠. 정기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오픈 당시 셰프와 메뉴 구성도 함께 정했는데 전통 코스와 현대 코스로 나눴어요. 공간 콘셉트가 옛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모든 요소에서 일관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죠.
최민욱 만가타 같은 곳에서는 공간 자체보다 음식이 돋보이도록 공간이 그 배경을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단순히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에 따라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이 달라져요. 스페이스 아이덴티티는 결국 공간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계하는 일이죠.
조세연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깨달은 계기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과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였어요. 두 미술관에는 모두 클로드 모네의 작품 ‘수련’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뉴욕 한복판에 있고 입장료도 무료인 만큼 작품을 쉬이 접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모네를 감상할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죠. 언제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통에 좀 산만하기는 하지만요. 반면 지추 미술관은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일단 나오시마 지역이 섬인 데다, 그 안에서도 꽤 깊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접근 자체가 어렵죠. 내부도 엄격하게 통제되는데 작품을 보러 들어가는 인원 또한 제한적이에요. 온도와 조도, 발걸음과 숨소리까지 정해진 룰에 따라야 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볼 수 없지만, 그 두 경험이 완전히 달랐어요. 같은 목적을 가진 공간이라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좋은 집,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조세연 좋은 집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관되게 사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사무실’이나 ‘주방’ 같은 명사로 이름을 정의하기보다는 ‘일하기’, ‘식사하기’ 같은 동사로 쓰임을 정리하는 거예요. 명사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용도가 한정적으로 변하거든요. 이를테면 ‘교회’나 ‘성당’을 말하면 머릿속에 대개 박공지붕이나 십자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기도하는 공간’이나 ‘성스러운 장소’라고 하면 갑자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죠. 이렇듯 공간을 대할 때 이름보다 그 쓰임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에게 기성품이 아닌 맞춤옷 같은 공간이죠.
최민욱 집을 처음 짓는 건축주는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설계를 의뢰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런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틀에 박힌 아파트 평면이 나오기도 하죠. 내가 하고 싶은 걸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무작정 어떤 ‘실’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만 할 뿐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맞춤옷은커녕 아무도 입을 수 없는 옷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건축주와 미팅할 때 그걸 ‘동사’로 정리하면서 원하는 공간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그렇게 하면 내가 쓰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포괄적으로 열리거든요. 내가 원하는 바가 정리되고, 그걸 명확하게 실현할 수 있어야 좋은 집이자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복기 주택뿐 아니라 업무 시설, 상업 시설도 마찬가지예요. 명사보다는 동사를 분명히 하면 내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뚜렷해지고 그 공간을 쓰임에 맞게 만들기가 쉬워지거든요. 이를테면 요즘 카페는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일도 하고, 쉬고, 사람도 만나는 일종의 ‘거실’이 됐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거실이라고 부르지는 않죠. 노말HQ 역시 사무실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한 모호한 경계를 가진 집이자, ‘동사’의 공간 개념으로 완성한 집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희가 추구하는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