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투닷건축사사무소 TODOT Architects and Partners
바람이 많은 제주에는 유독 삼나무가 많다. 그 까닭은 슬프게도 일제강점기의 흔적과 맞닿아 있다. 당시 무분별한 벌목으로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심어진 일본 삼나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제주의 산과 들을 메워왔다. 삼나무는 그 자체로 제주의 황량했던 풍경을 회복시켰고, 노랗게 익은 감귤을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서귀포 남원읍 신흥리와 수망리 일대에 자리한 ‘경흥농원’은 남원에서 가장 먼저 감귤 농사를 시작했던 만큼 오랜 시간을 품은 땅이다. 농장이 조성될 당시 감귤 밭 주변과 길을 따라 심어졌던 삼나무는 50년이 흐른 지금, 경흥농원의 터줏대감처럼 든든한 존재가 되었다.
‘스튜디오 제라’가 들어설 대지도 삼나무 울타리 안에 자리한 키위밭이었다.




1970~90년대에 이르기까지 농장은 마을 사람들의 주요 생계처였다. 주민들의 노동으로 운영되었고, 수익은 다시 농장에 투자되어 동백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데 쓰였다. 농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의뢰인에게 삼나무와 동백나무는 그 자체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그가 이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단지 자연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아버지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숲이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이유다.




이미 신혼부부들이 야외 촬영지로 즐겨 찾는 이 농원의 동백 숲을 활용해 사진 스튜디오를 기획한 의뢰인의 결정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었다. 약 700평 남짓한 부지에는 실내 호리존 스튜디오, 남녀 파우더룸과 피팅룸이 있는 본동, 운영 사무실과 응접 공간이 있는 별동이 배치되며, 별동 옆으로는 14m x 14m 크기의 정방형 중정이 자리한다.
이 공간은 스몰 웨딩, 촬영, 행사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건물 후면에는 주차장이, 전면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정원이 조성되어 사진 촬영에 활용될 예정이다.



건축 면적이 300㎡가 채 되지 않는 단층 건물은 주변 자연 속에 스며들 듯 존재한다. 사진관은 사진을 찍는 공간이지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건물은 단순한 매스를 기반으로 디자인되었고, 시선이 닿는 높이까지는 미러 스테인리스로 마감되었다. 덕분에 건물 표면은 숲을 반사하며 무한한 깊이를 가지게 되었고, 정원에 선 이들은 거울 속 풍경과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정은 외부에서 완전히 은폐되어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존재한다. 붉은 송이석과 푸른 하늘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이 장소는 ‘숲 속 또 다른 추상의 숲’으로 기능한다. 중정 내부는 규화 처리된 적삼목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이는 수직으로 솟은 삼나무를 은유하며 하늘과 대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시도다. 행사나 웨딩을 위한 데크 위에는 마차 바퀴를 닮은 캐노피가 설치되어 있으며, 해가 좋을 때면 이 구조물의 그림자가 바닥과 벽을 유영하듯 흐른다.




새롭게 조성된 조경은 기존의 삼나무, 동백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사계절의 변화를 담아낸다. 전면 정원의 중심에는 여름동백이라 불리는 노각나무가 자리하며, 목련과 가막살나무는 이른 봄을, 파니쿰과 원추리 같은 초화류는 여름을 준비한다. 대지의 경계를 따라 쌓인 현무암 돌담은 마당의 영역을 정의하는 동시에 장소성을 부여한다. 이 돌담은 미러 스테인리스에 반사되어 금속 표면에 시각적 질감을 더하고, 공간의 깊이감을 확장시킨다.
스튜디오 제라는 단지 촬영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숲을 주인공으로 삼고, 삶의 기억을 담은 풍경을 공간으로 번역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장면을 기록하는 건축적 배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