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공들인 극동의 파리

[Archur의 낯선 여행] ⑦ 베트남 호찌민 시티
ⓒarchur
글 & 사진. 스페이스 도슨트 방승환

 

‘Archur’ 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도시와 공간을 안내하는 방승환 작가가 <브리크 brique>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시지만 그 안에 낯선 장소,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업들을 소개해 새로운 영감을 드리려 합니다.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와 공간에 대한 소개와, 현재에 이르게 된 이야기, 그리고 환경적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Archur와 함께 이색적인 세계 여행을 떠나보시죠.

 

어떤 도시의 인상은 단 하나의 장면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시청과 곧게 뻗은 광장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손을 들고 여유 있게 인사하는 호찌민 동상은 호찌민 시티Ho Chi Minh City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하노이Hanoi와 달리 호찌민은 어딘가 모르게 잘 정리돼 있고 유유하다.

 

호찌민 시티를 대표하는 상징물과 장소가 된 호찌민 동상과 인민위원회 앞 광장 ⓒarchur
 

남북으로 1400km에 달하는 지형을 가진 베트남은 북부, 중부, 남부가 각각 다른 특색을 이루며 발전해왔다. 역사적으로도 각 지역을 다스리는 지배층도 달랐는데, 하노이가 있는 북부는 다이비엣Đại Việt, 다낭이 있는 중부는 참파Chiêm Thành, 호찌민이 있는 남부는 푸남Phu Nam 왕조가 각각 다스렸다. 각 지역의 주요 민족도 킨족, 참파족, 크메르족으로 달랐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887년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든 프랑스도 북부는 통킹Tonking, 중부는 안남Annam, 남부는 코친차이나Cochinchine로 나눠 지배방식을 달리했다. 통킹은 프랑스와 베트남 관리가 공동 관리하는 보호령이었고, 안남은 이름뿐이었지만 황제를 비롯한 전통적인 지배체제가 유지됐다. 반면에 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인이 지방 현 단위까지 직접 지배하는 식민지였다. 이후 인접한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직접 지배를 받으면서 코친차이나에 포함됐다.

 

인민위원회 앞 광장의 야경 ⓒarchur

 

프랑스인들은 사이공(現 호찌민)을 코친차이나의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도시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서양식 건물을 짓고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했다. 첫 번째 도시계획은 1862년 보병 대령 폴 코핀Paul Coffyn이 수립했다. 하지만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사이공의 인구가 계획인구 50만 명을 훨씬 넘어섬으로써 폐기됐다. 그러나 코핀의 계획에서 시청과 사이공강을 잇는 축은 도심의 골격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

이를 이어받아 1921년 어니스트 헤브라드Ernest Hébrard가 새로운 도시계획을 수립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건축 및 도시계획 사업의 책임자였던 헤브라드는 사이공과 하노이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의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했다. 헤브라드는 코핀이 계획했던 시청과 사이공강을 잇는 축을 샤너 대로Boulevard Charner로 구체화하고, 보나르 대로Boulevard Bonnar를 도시의 주요한 공간구조에 추가했다. 보나르 대로는 1885년에 개통된 기차역과 포병부대를 연결하는 녹지축으로 시청 앞에서 샤너 대로와 교차한다.

 

호찌민 시의 중심축 응우옌후에 보행로 ⓒarchur

 

현재 샤너 대로는 ‘응우옌후에 보행로(Nguyễn Huệ Pedestrian Walkway)’로, 보나르 대로는 ‘레러이Đ.Lê Lợi’ 거리로 길 이름이 바뀌었다. 응우옌후에는 18세기 떠이선 왕조의 초대 황제로 태국과 청나라를 격파한 민족 영웅이고 레러이는 15세기 후 레 왕조의 초대 황제로 명나라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룬 인물이다. 이 두 사람 외에도 베트남의 중요한 길 이름에는 전쟁 영웅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만큼 고대부터 현대까지 베트남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파리나 워싱턴D.C처럼 도시의 주요시설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대로를 만들고 이를 도시의 중심축으로 설정하는 건 전형적인 프랑스 도시계획 수법이다. 현재 응우옌후에 보행로 양쪽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호텔과 명품매장을 비롯한 판매시설, 현대적인 고층 업무시설이 배치돼 있다.

 

프랑스인들의 식민지 정착을 위해 필요한 시설들이 모여 있는 동커이 거리 ⓒarchur

 

프랑스인들의 식민지 정착을 위해 필요한 시설은 응우옌후에 보행로에서 한 켜 물러난 ‘동커이Đồng Khởi’ 거리에 있다. 이 일대는 ‘파리 코뮌’이라는 뜻의 ‘콩 짜 파리Công xã Paris’로 불릴 만큼 프랑스 정착인들의 생활 중심지였다. 대표적인 시설로 여가를 위한 사이공 오페라하우스(1900), 통신을 위한 사이공 중앙우체국(1891), 그리고 종교활동을 위한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1880)을 들 수 있다. 이런 시설들은 식민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도록 본국에 있는 건물과 비슷하게 설계됐다. 일종의 친숙화 과정이다. 실제 사이공 오페라하우스는 프티 팔레Petit Palais를, 사이공 중앙우체국은 오르세 박물관을,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각각 닮았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에 아시아적인 요소가 혼합된 사이공 중앙우체국 ⓒarchur
사이공 중앙우체국 내부 양쪽에 있는 1892년 사이공 지도와 코친차이나 지역의 전신선로 지도 ⓒarchur

 

이런 시설들은 식민국의 우월함을 식민지 국민에게 전달하여 식민체제의 정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다. 당연히 건축물의 설계도 명성 있는 건축가가 담당했다.

오페라하우스는 프랑스 건축가 으젠느 페레Eugène Ferret가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화려한 건축장식이 가미된 플랑부아양 양식(Flamboyant style)으로 설계했다. 또한 중앙우체국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에 아시아적인 요소가 혼합돼 있는데, 설계를 맡은 마리에 알프레드 폴홍스Marie-Alfred Foulhoux는 1879년 임명된 코친차이나의 첫 번째 수석건축가였다. 그리고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은 현상공모를 통해 선정된 종교건축 전문가 쥘 브라르Jules Bourard의 설계로 모든 자재를 프랑스로부터 들여와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 ⓒarchur
레러이 거리에 있는 사이공 오페라하우스 ⓒarchur

 

때로는 이런 시설들을 짓는 일이 식민지 국민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는 일화가 더해지기도 한다. 성당의 경우는 프랑스의 무력 침공의 구실이 된 선교활동의 보장과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정당성 확보가 필요했다.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 건립을 위한 기초공사 때 지하수가 있는 지층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공사 기간도 길어지고 지반이 약해져 성당이 한쪽으로 살짝 내려앉았다. 실제 성당 정면을 가만히 쳐다보면 왼쪽(서쪽) 탑이 오른쪽(동쪽) 탑보다 약간 낮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수층이 나온 건 성당을 건설하는 입장에서 분명 악재다. 하지만 이때 발견된 지하수를 통해 당시 사이공 시민들의 부족한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 건설을 ‘신의 행위(act of God)’라고 불렀다.

 

프랑스 식민지 양식의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병존하는 호찌민 ⓒarchur

 

사이공은 ‘동양의 진주’, ‘극동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이 공들인 도시다. 하지만 1954년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하며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끝났다. 베트남은 정글 속을 헤치며 자전거로 군수물자를 나르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무력으로 식민지배를 끝냈다. 미국의 개입마저 승리로 끝낸 뒤 사이공은 호찌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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