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태진 자료. 황두진 건축사사무소
[다르게 짓는 건축가] 건축의 경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열고, 어떤 이는 도시 투어를 기획하거나 발 빠르게 공간에 다녀와 소셜미디어(SNS)에 기록하기도 하죠. 건축가는 이제 도면과 설계를 넘어 사람과 건축,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일을 건축의 일부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경계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것이 ‘건축하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는 지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작은 가게, 커뮤니티, 새로운 미디어가 건축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는지 여러분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도시의 경계에서 공공성을 짓다 −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도만사, 조영하’
② 도면 밖으로 나온 건축 커뮤니케이터 − 건축ㆍ공간 인플루언서 ‘공간교과서, 진세인’
③ 딱딱한 건축과 부드러운 버터, 그리고 건축가 − 건축가의 버터 가게 ‘아키텍츠 버터, 위원우’
④ 스티로폼 럭셔리를 떠나, 당신의 골목에 붙이는 건축적 포스트잇 — 도시탐험가 ‘진짜공간, 홍윤주’
⑤ 밈과 전자음악, 김판베가 설계하는 파동 — 건축 연구원 & 크리에이터 ‘김명준 aka.김판베’
⑥ 복합성과 밀도로 도시의 방향을 제안하는 건축가 — ‘무지개떡 건축, 황두진’

건축가만큼 도시와 사람, 환경과 건축물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는 직업은 많지 않다. 그런데 정작 국내 건축가가 제안한 도시 주거 형태 중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사례는 드물다.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사이, 건축적 사유에서 나온 제안이 뿌리내릴 토양은 부족했다. 성장하기 바빠 양질의 도시 환경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낄 만큼 현실이 된 지금, 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물론 주거 담론은 대출과 행정, 욕망과 규제까지 얽힌 복잡한 문제다.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질서도 있다. 그럼에도 좋은 건축을 고민해온 건축가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도 건축가의 업역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뷰는 직주근접과 적정 밀도로 도시의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황두진 소장의 ‘무지개떡 건축’ 담론을 조명한다. 나아가 이 제안이 도시의 주거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해 풀어야 할 제도적 한계를 짚고, 건물을 넘어 도시와 제도를 설계하는 건축가의 확장된 역할을 모색한다. 그를 종로구 통의동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형의 제안이 필요한 주거 문화
소장님의 수많은 저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벽돌을 쌓듯 이론과 실천적 연구를 쌓아가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책을 통해 도시 생태와 제도를 다루는 연구자이자 정책 제안자의 길을 병행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사회에 제안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시대가 바뀌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물 유형도 변해요. 그런데 정작 건축가가 연구와 실천으로 제안한 유형은 드물어요. 지금은 익숙한 주거 유형인 다세대·다가구 주택도 마찬가지예요.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에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리려고 만든 유형이에요. 이 유형에 담긴 고민은 오로지 ‘빠른 공급’이었어요. 다각도로 논의된 유형이 아니었으니 이런 부작용이 생겼죠.
도시의 주거 유형에 대한 고민은 학생 때부터 품었던 생각이에요. 학교 과제로 인사동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낮에는 붐비던 인사동이 밤이 되면 급격히 썰렁해지는 걸 목격했어요. 이후 자료를 찾아보니 옛 인사동에는 사람이 꽤 살았더라고요.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주거 건물들이 사라졌어요. 뒤이어 도심에 사람이 계속 살게 하려면 주거가 어때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주거에 다른 도시 기능을 위아래로 쌓으면 가능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일이에요. 그 생각을 계속 키워오면서 ‘무지개떡 건축’(2015),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2026) 같은 책을 써왔어요.


도시 기능을 위아래로 쌓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나요?
간단히 말하면 저층부에는 상업이나 공공 기능을 넣어요. 그 위에 주거를 올리는 방식이에요. 지하는 주차장으로 공동 개발해요. 1~2층 정도 저층부에는 흔히 상가라고 부르는 상업 기능이 들어가요. 저는 그 안에 공공 시설이 들어가도 된다고 봐요. 보건소나 우체국, 주민생활센터 같은 시설들이 왜 항상 독립된 건물로 따로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공공기관 입장에서 민간 건물주와 계속 임대 관계로 얽히는 게 꺼려진다면 그 부분만 매입해서 구분등기하면 돼요. 실제로 제가 살고 있는 통의동의 우체국이 일반 건물 1층에 들어가 있는데,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니 임대가 아니고 소유더군요. 그런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 위로는 주거가 타워 형식으로 올라가요. 그 높이를 조절해서 용적률을 맞추면 돼요. 그러니까 주거와 상업, 공공 기능이 한 건물 안에서 평면적으로 나뉘지 않고 수직으로 뒤섞여요. 넓게 퍼뜨리는 대신 위아래로 쌓으니까 개별 프로젝트도 몇백 평 정도로 작아져요. 그 사이사이로 길이 계속 이어질 수 있어요. 단지형 아파트처럼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 땅이 되지 않아요.
실제 사례를 예로 든다면 어떤 유형이 있을까요?
대학 시절 배낭여행으로 처음 유럽에 가보니 제가 떠올린 복합 유형이 이미 보편화돼 있더라고요. 학교에서 건축사 시간에 배우는 건 대개 교회나 박물관, 미술관 같은 것들이지 일반 사람들이 사는 보통의 건물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보통의 건축이 훨씬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실제로 파리나 베를린 같은 유럽 도시에 가보면 눈에 띄는 대부분의 건물이 그런 유형이에요. 대체로 기본 퀄리티가 좋아요. 그중 일부는 좋은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세계적인 작업이 되기도 해요. 예컨대 가우디의 카사밀라도 40세대 정도가 사는 상가주택이에요. 바르셀로나에 보편화된 유럽식 주거 유형이 가우디의 손을 거치면서 개성 있는 작품이 됐어요. 유형 자체는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그 유형이 갖는 보편적인 힘에 개별 건축가의 개성이 더해질 때 훌륭한 작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도 경기도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소비하는 시간을 잘 알고 있어요. 정작 인프라를 갖춘 종로구 같은 도심은 주택 공급이 없어 거주 인구가 줄어 빈 공간이 됩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적층이 필요해요. 도시의 한쪽 축이 밀도라면 다른 한쪽 축은 복합이에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IMF 때 한국 기업을 인수하러 왔던 ‘외국인 기업 사냥꾼’이 남긴 기록을 본 적이 있어요. 방문한 회장실마다 공통적으로 농촌 풍경화가 걸려 있었대요. 실제로 회장 상당수가 농촌 출신이었대요. 그런 친전원적 정서가 제도화되고 규범화되면서 한국 도시들이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게 됐다고 추측해요. 그래서 도시 안에 유사 농촌을 만들려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어요. 담을 두르고 숲속에 살고 싶어 하는 ‘전원’ 유형을 도심에 그대로 들여온 셈이에요.

도시에 사는 농촌인이라니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도시인이란 무엇인가요?
도시인이 되려면 밀도와 복합에 익숙해져야 해요. 적층된 상황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자연스러워야 도시예요. 그런데 단지형 아파트는 그 이질성에 대한 거부감을 담장으로 표현해요. 사실은 그저 비슷한 경제적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살 뿐이에요. 단독주택에서나 통용되던 배타적 사고방식이 대규모 주거 단지에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청년 시절 어마어마한 장거리 통학·통근을 경험했어요. 대학 때는 정릉에서 관악산¹까지 6년을 다녔어요. 취직해서는 과천에서 여의도를 다녔고요. 이후 미국 유학과 직장 생활 때는 서울에서 천안 정도 거리를 자동차로 몇 년간 오갔어요. 그 경험으로 장거리 출퇴근이 삶의 기본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절감했어요.
¹정릉에서 관악산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20km이며, 현재 대중교통 이용 시 약 1시간 10분~30분이 소요된다. 다만 당시에는 지하철 4호선 공사 기간이라 2시간 이상 걸렸다.
그 경험이 지금의 생각에도 이어지는 걸까요?
그럼요. 지금 서울은 많은 인구가 장거리로 이동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도시예요. 실제로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일산이나 분당에서 출퇴근해요. 마포·용산·성동² 같은 지역마저 단지형 아파트로 채워지면서 도심 근처에 살 곳을 구하기 어려워졌거든요. 결국 돈 없고 힘없는 사람,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계속 외곽으로 밀려나요. 이건 땅을 많이 필요로 하는 단지형 아파트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예요.
²사대문 안(원도심)의 상업화로 주거지가 사라지자 주거 수요는 자연스레 원도심과 인접한 마포·용산·성동으로 쏠렸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저렴한 소형 주택지(다세대·다가구)마저 대단지 아파트로 전면 재개발되면서 도심 인근의 주거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는 청년·서민층이 경기도 외곽으로 밀려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도시에 실험이 필요한 지금
소규모 가로주택 정비사업 등 직주근접 및 복합개발 정책 등 여러 정책들이 있어요. 그러나 현실의 정비 사업들은 결국 대단지 아파트 건설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거에 대한 해결책이 대단지 아파트라는 하나의 방향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밀도와 복합성이 높은 주거 방식이 아직 낯서니까 그저 단지형 아파트로 해결하려는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의사결정이 매번 단지형 아파트로 귀결돼요. 사람들이 아파트를 원하니 결정권자들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도를 기다리기보다 민간 차원에서 이런 주장을 누적시켜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지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책을 쓰고 강의를 다녀요. 그런데 현재는 워낙 판이 공고하게 짜여 있어서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다만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실천해 온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계속 용기를 얻어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건축가로서 제가 관찰하고 진단한 수준이에요. 실제로 왜 정치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지 않는지, 어떤 유인 구조가 있어야 움직이는지는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건축가로서 내놓을 수 있는 제안은 시작점에 가까워요. 세상이 움직이는 축은 크게 두 가지예요. 저변부터 법과 제도를 하나씩 고치는 방법과 성공 사례를 만들어 보여주는 방법이에요. 사례를 만들려면 기존 법과 제도의 예외를 인정받아야 해요. 국내에도 특별건축구역³ 같은 제도가 이미 있어요. 다만 잘 활용되지 않고 있을 뿐이에요. 왜 활용이 안 되는지는 제도를 운용하는 행정 쪽에서 더 정확히 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지금 당장 서울시나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관할 구역 몇 곳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무지개떡 건축 시범 사업을 해보는 일이에요. 몇 개 사업이 잘 작동하면 자연스레 시장이 따라올 거라 기대해요. 법과 제도도 그에 맞춰 고쳐나갈 수 있다고 봐요. 물론 이건 제 희망 섞인 전망이에요. 지금 우리나라 주거 시장 구조는 대규모 자본과 대형 건설사가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특화돼 있어요. 무지개떡 건축과는 애초에 정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시범 사업으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³특별건축구역이란 조화롭고 창의적인 건축물을 통해 도시경관을 창출하고 건축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건축법 등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완화·통합해 적용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지정하는 구역이다. 2007년 도입됐으며 현재까지 전국에 70여 곳이 지정됐다.
그 정도 프로젝트를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여야 하는 건가요?
제 나름대로 가늠해본 규모예요. 토지 구입비를 포함해 프로젝트당 천억 원대 정도면 가능해요. 우리 경제 규모를 따져보면 그 정도 자본은 충분히 투입할 수 있어요. 지자체가 보유한 공공용지를 합쳐 전체 토지 면적을 3~400평 정도로 잡아요. 전체 연면적은 천 평 범위로 잡고요. 주차장은 지하에서 공동 개발하면 충분히 해볼 만해요. 토지도 3~4개 필지 정도만 합치거나 공공용지를 활용하면 돼요. 단지형 아파트처럼 토지 매입에만 오랜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어요. 다만 실제 금융 조달이나 사업성 검증은 더 촘촘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에요.
대표적인 무지개떡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도시에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창덕궁 앞의 ‘노스테라스North Terrace’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소규모 무지개떡 건물인데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트레바리 북클럽이나 법률 사무소 같은 다양한 도시 기능이 들어가 있어요. 최상층인 5층에는 앞뒤로 테라스를 갖춘 주거 공간을 조성했고요.
이 건물에서 바라보는 창덕궁의 경관은 실로 장엄하다고 할 수 있어요. 북클럽 등으로 인해 상당한 유동인구가 유입되어 종묘 서쪽 지역의 활성화에 조용히 기여하고 있는 건물이지요. 다만 궁극적으로 무지개떡 건축은 다수의 주거 유닛이 있는 공동주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스테라스는 소규모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봐야 해요.


소장님의 주거 개념을 제도화하고 싶어 여러 제안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관심을 갖고 연락을 준 분들이 꽤 있어요. 지방의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관계자들이 책을 보고 연락해 온 경우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겠죠. 지금은 일종의 도시계획적 폭탄 돌리기를 하는 상황이에요. 주거 관련 문제는 다음 세대에 언젠가 한 번은 터질 문제라고 봐요.
‘무지개떡 건축’을 낸 뒤 지금까지 그 주제로 많은 강연이 이어졌어요. 사회적 관심은 분명히 존재해요. 실제로 이 개념에 공감해 직접 건물을 짓겠다며 사무실을 찾아온 이들이 꽤 있어서 실제로 무지개떡 건축도 여러 곳 구현했어요. 다만 아직 절대적인 수요 자체가 부족해요. 무지개떡 건축이 집단을 이루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효과까지 기대하기는 이른 단계예요. 그렇게 되려면 정책적·거시적 차원의 사회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봐요.
용적률에 대한 오해도 짚을 필요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경희궁 자이 재개발 사업이 좋은 예예요. 원래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을 재개발한 곳인데 오히려 인구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고층 아파트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고밀도 유형은 아니라는 뜻이죠. 원리적으로 보면 용적률은 바닥 면적의 합으로 정해져요. 같은 용적률이면 저층으로 채우든 고층으로 채우든 수용 인원은 같아요. 그런데도 고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개발이 제대로 안 되는 것처럼 여론이 쏠릴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돈의문뉴타운 1구역 재개발사업, 경희궁 자이의 인구 감소 사례는 어떤 자료나 통계가 있을까요?
제가 2017~2018년쯤 종로구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때 위원회 회식 자리에서 구청 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예요. 경희궁자이가 완공됐는데 오히려 그 지역 인구가 줄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확인한 통계 자료도 있어요. 돈의문뉴타운 1구역은 행정동으로 보면 교남동 일대인데, 정확한 사업구역 경계와는 살짝 어긋나서 완전히 정확한 통계를 구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재개발 전인 2010년 교남동 인구가 9,140명이었고, 2026년 6월 기준으로는 9,473명이에요. 큰 틀에서 보면 거의 그대로인 셈이죠. 재개발 전에는 노후한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이었고요.
어떤 자료에는 이 일대 인구가 재개발로 급격히 늘었다고 나오는데, 아마 재개발 과정에서 대량으로 전출이 이루어졌던 2014년 무렵의 일시적인 저점과 비교한 걸로 보여요. 그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물론 사회가 발전하면서 1인당 주거면적이 늘어나는 것 같은 다른 변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전후 상황을 보면 대대적인 재개발에도 인구는 뚜렷하게 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당시 종로 행정을 책임지던 구청장의 발언이니 가볍게 볼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종묘 앞 고층 빌딩 재개발 추진에 논란이 있었죠. 사대문 내에 용적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고층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아요. 산이 있고 조금만 올라가도 경관이 펼쳐지는 지형적 조건을 가진 나라에서는 낮고 뚱뚱한 것보다 좁고 높은 편이 오히려 좋은 선택지일 수 있어요.
그 논쟁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당시에도 그 땅을 개발하지 말자는 주장은 아무도 하지 않았어요. 언제까지고 도심을 낙후된 상태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관건은 필요한 용적률을 어떻게 채우느냐예요. 고층으로 채울 수도 있고 저층으로 채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치 고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개발이 제대로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흐르더라고요. 이건 모든 논의에 앞서 경관 계획 관점에서 먼저 따져야 할 문제였다고 봐요. 역사적 경관이자 남산과도 연결되는 경관이니까요.

건축 업역의 확장과 도시의 이로움
무지개떡 건축이 도시에 실제로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신다면요?
무지개떡 건축은 꽤 거리 친화적인 건축이에요. 저는 건물의 저층부가 길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건물보다 거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건물이 하나씩 들어설 때마다 그 앞의 거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봐요. 걷고 싶은 거리나 아름다운 거리는 가로수를 많이 심어놓은 곳이 아니에요. 좋은 가게들이 쭉 이어진 곳이죠.
적어도 2층 정도까지는 외부 계단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게 좋은 건물이라고 봐요. 이런 건물이 많아지면 도시가 밝아지고 개방적이 돼요. 상업도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 도시가 되니까 결과적으로 경찰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가 될 수 있어요. 하루 종일 거리에 사람이 걸어 다니는 도시가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에 신림동 원룸촌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각자 문을 걸어 잠근 채 지내다 보니 오히려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불안감을 키운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이런 부분도 무지개떡 건축과 관련이 있을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자기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동선이 어느 정도 개방돼 있는 게 오히려 심리적으로 훨씬 안전해요.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서로 마주칠 일이 없는 구조보다는 계단이나 복도에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마주치는 구조가 안전감을 줘요. 그래서 무지개떡 건축의 최종적인 목표 중 하나는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에요.
나아가 건축가의 역할이 개별 건물 디자인을 넘어 도시 정책과 입법 제안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에 대해 소장님의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각자가 판단할 문제예요. 다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흔히 명작을 남긴 근대 건축가로 알려진 르코르뷔지에나 미스 반데어로에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상이 달라요. 겉으로는 하나하나의 명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유형을 제시하려 했던 사람들이에요. 르코르뷔지에는 도미노 시스템을 고민했어요. 미스는 철과 유리로 오피스 타워라는 유형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했고요. 둘 다 지극히 유형적인 사고였어요. 이들의 작업이 훌륭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유형이었기 때문에 섞여 보일 뿐이에요. 근본에는 유형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 봐요.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축가들이 더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건축가도 주관적이고 정서적이며 감각적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요. 물론 저도 그런 일을 하지요. 그러나 정말 자기 표현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순수예술을 하는 편이 나아요. 이 말에는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사회를 읽고 세상을 읽어서 그렇게 만들어진 보편적인 사고의 토대 위에 자기만의 개성이 꽃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두진 Doojin Hwang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예일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건축가 김종성, 김태수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혔고, 1997년 김태수의 서울 사무실 TSKP의 소장을 지낸 뒤 2000년 자신의 이름을 딴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목련원, 더브릭스, 더웨스트빌리지, 통인시장 아트게이트, 춘원당한의원, 북촌 한옥 시리즈, 과천동 무지개떡 등 서울 구도심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이어왔으며, 서울시건축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대한민국 한옥대상, 김종성 건축상,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2015년 펴낸 저서 ‘무지개떡 건축’은 주거와 상업, 공공 기능이 저층부터 고층까지 복합적으로 쌓인 도시형 건축 유형을 제안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가장 도시적인 삶’, ‘은퇴 없는 건축’,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 등을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도시 정책의 언어로 확장해왔다. 설계와 집필, 강연을 오가며 15년 넘게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개념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