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로폼 럭셔리를 떠나, 당신의 골목에 붙이는 건축적 포스트잇

[다르게 짓는 건축가] ④ 도시탐험가 ‘진짜공간, 홍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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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태진  자료. 진짜공간 jinzaspace

 

[다르게 짓는 건축가] 건축의 경계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열고, 어떤 이는 도시 투어를 기획하거나 발 빠르게 공간에 다녀와 소셜미디어(SNS)에 기록하기도 하죠. 건축가는 이제 도면과 설계를 넘어 사람과 건축,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일을 건축의 일부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경계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것이 ‘건축하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는 지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작은 가게, 커뮤니티, 새로운 미디어가 건축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는지 여러분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도시의 경계에서 공공성을 짓다 −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도만사, 조영하’
② 도면 밖으로 나온 건축 커뮤니케이터 − 건축ㆍ공간 인플루언서 ‘공간교과서, 진세인’
③ 딱딱한 건축과 부드러운 버터, 그리고 건축가 − 건축가의 버터 가게 ‘아키텍츠 버터, 위원우’
④ 스티로폼 럭셔리를 떠나, 당신의 골목에 붙이는 건축적 포스트잇 — 도시탐험가 ‘진짜공간, 홍윤주’


건축가 홍윤주는 서울 골목을 탐험하며 정주민이 일궈낸 생활의 활기를 기록한다. 그는 세련된 건축물 대신 은색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인 단열재나 가설 건물을 살피며 그것들이 어떤 까닭으로 세워졌는지 추측한다. 수집한 허름한 공간의 기록은 웹 매거진 ‘진짜공간’과 인스타그램에 기록물로 차곡차곡 쌓인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낡은 흔적에서 그는 꿈틀거리는 삶의 에너지를 읽어내고 그 가치를 기록으로 불러 세운다.

그의 활동은 단순히 독특한 취향을 나누는 낭만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에 밀려 금세 사라지고 마는 이웃의 삶의 터전을 기록으로 붙잡아두는 일이다. 모든 공간이 수익으로만 환산되는 도시에서 그는 자본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삶의 궤적을 발견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풍경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하고 단단한 기록의 투쟁을 이어가는 셈이다.

봄의 입구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나누고 서순라길을 함께 거닐며 잠깐이나마 진짜공간 탐험을 함께했다. 건축가가 도시를 읽어내는 세밀하고 다정한 시선을 흠모하며 자본이 지워버린 도시의 숨은 진짜를 따라가 보았다.

 

“꼭 한번 담아보고 싶었어요.” 소장님의 말과 함께 행인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려 셔터를 눌렀다. 벽면마다 덧대어진 각기 다른 마감재의 결이 비로소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BRIQUE Magazine

 

가짜 성城을 떠나 진짜 공간으로

 

특별히 시간을 내어 기록이라는 행위를 하는 데에는 소장님만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체험으로부터 ‘진짜공간’이 시작되었나요?

건축학과 졸업 후 남해의 리조트 건설 회사에서 첫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정통 유럽식’과 ‘고품격 럭셔리’였죠. 2000년대 중반이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건축과는 괴리가 컸어요. 자연 풍광에 녹아들고 우리나라의 재료를 살리는 건축을 배웠는데 막상 현장에서 목격한 현실은 온통 유럽 스타일만 외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시잖아요. 그 ‘정통 유럽식’이라는 게 실상은 스티로폼을 깎아서 만든 가짜였거든요. 겉모양만 흉내 내는 방식들이 제 가치관과는 도저히 맞지 않았어요. 일을 하면서도 계속 마음속에서 부딪히더라고요.

 

보통 사회 초년생은 현실에 순응하거나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마련인데, 소장님은 후자였나 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짜로 지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왜 굳이 스티로폼까지 깎아가며 가짜를 만들어야 하나 싶었어요.

한번은 당시 실장님이 리조트 지붕을 징크Zinc 재질로 설계해서 가져가신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분양팀에서 모델하우스를 보고는 ‘이 칙칙한 철판은 뭐냐’면서 당시 유행하던 ‘스웨디시 기와’로 바꾸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때 실장님이 ‘파리 시내의 지붕들을 봐라, 90% 이상이 징크다’라고 한마디하셨더니 그쪽 말이 쑥 들어갔어요.

그걸 보면서 ‘유럽 이미지’라는 게 가진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참 씁쓸했죠. 저는 결국 그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퇴사했어요.

 

일상의 흔적을 건축적 시선으로 기록해온 ‘진짜공간’ 웹진의 모습. <이미지 출처 = jinzaspace 웹진>
웹진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도 골목의 기록을 꾸준히 아카이빙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jinzaspace 인스타그램>
<이미지 출처 = jinzaspace 인스타그램>

 

설계를 구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계속해서 부조화가 쌓였나 봐요.

맞아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TV를 틀었는데 아파트 광고들도 하나같이 정통 유럽식과 고품격 럭셔리를 말하더라고요. 아파트 게이트를 성문처럼 만들었더라고요. 실상은 그냥 네모난 박스 건물인데 입구만 성처럼 꾸며놓은 식이었어요. 저는 그런 가짜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TV 속 모습이 제가 거부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일종의 집착처럼 느껴져서 스트레스였어요.

다들 왜 그렇게 ‘유럽’이라는 환상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우리 땅에는 정말 좋은 게 없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공간’을 시작했어요. 내 삶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가까운 곳’부터 제대로 살펴보려고요.

 

중간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진짜공간의 활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시간도 가지셨다고요.

네, 설계 사무실을 다닐 때였는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한 번은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해 서울 강북 지역을 뒤지고 다녔죠. 진짜공간에서 다루는 증축된 건물들이나 독특한 생활 흔적이 남은 건물들을 찾아 논문을 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진짜공간과 논문 연구를 같이하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

 

소장님의 행보를 보면 일반적인 건축가의 ‘성공 방정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여요. 큰 조직을 떠나 1인 체제를 유지하며 ‘진짜공간’을 하게 된 건 전략이었나요, 아니면 어떤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인가요?

우선 저 스스로가 회사라는 시스템을 정말 못 견디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다녀도 직원이 저 혼자뿐인 작은 스튜디오 같은 곳만 다녔죠. 그리고 어떤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어요.

만약 저에게 건축 프로젝트들이 밀려들었다면 아마 활동을 끝까지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하나씩, 건축가라는 이름의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일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일이 없을 땐 진짜공간에 몰입하고 일이 들어오면 건축에 집중하면서 균형을 맞춰온 거예요.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온 셈이죠.

 

“저 돌덩이는 대체 뭘까요?”라는 엉뚱한 물음에 돌아온 소장님의 유추. 빗물받이 겸 내리막길을 타고 내달리는 빗물이 빨간 벽돌집에 들이쳐 방수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물길을 틀어주려 놓아둔 누군가의 배려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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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하신 ‘가짜 럭셔리’에 대한 거부감이 결국 소장님을 골목으로 이끈 동력이 된 셈이네요.

맞아요, 전 그게 정말 싫었거든요. 그래서 진짜를 찾아보려고 동네를 적극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발견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제가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구석구석 살피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어요. 마치 탐험가처럼요.

잡지에 나오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나 전시회만 찾아다니던 때는 느껴보지 못한 생생한 즐거움이었어요. 여긴 볼 게 정말 무궁무진했거든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내 취향은 확실히 이쪽이구나’ 싶어서 지금까지 계속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골목을 탐험하며 마주한 풍경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생생함이요.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매끈한 디자인보다 그곳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힘이나 일상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 투박한 흔적들 속에서 삶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도시의 숨은 진짜를 따라가는 시선. 건축가 홍윤주는 오늘도 누군가의 삶이 깃든 골목을 탐험한다. ©BRIQUE Magazine

 

건축적 포스트잇을 붙이다

 

‘진짜공간’의 활동을 보고 저도 동네를 탐방해 봤어요. 사람들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들이 일순간 나타나더라고요. 얼기설기 지어놓은 모양새에서 그 사람의 기지나 때로는 귀찮음까지 읽히는 공간들이 많았어요.

네, 맞아요. 정말 그래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엮어 놓은 것들이죠.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더 무리하지 않고 멈췄거나 나중에 더하려다가 지금까지 방치된 흔적들 같은 거요. 그런 투박한 멈춤이 오히려 삶의 냄새를 풍기곤 하죠.

 

인터넷에 넘치는 이미지들은 불필요한 걸 깨끗이 없앤 모습뿐이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잖아요. 적당히 떼서 덮고 가리는 게 현실이죠. 소장님의 기록에서 ‘진짜’가 읽혀서 좋았어요. 연희동 맨홀도 가보려고 지도에 찍어놨답니다.

(웃음) 아, 정말요? 제가 진짜공간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바로 그런 거였어요. 지도에 찍어두기까지 하셨다니 기쁘네요.

 

<이미지 출처 = jinzaspace>

 

소장님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온 도시에 ‘건축적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니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긴 이런 느낌이야, 저건 저런 공간이야”라고 나름의 주석을 달아주는 느낌이랄까요? 소장님만의 수집 기준이 궁금합니다.

우선 제 눈에 띄어야겠죠. 저만의 즐거운 기준이 있다면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풍경들이에요. 전문가가 만든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엮어 놓은 ‘생활 기술’이나 ‘일상의 창작’이 담긴 것들에 눈길이 가요.

또 하나는 제 나름의 해석을 더하는 즐거움인데요. 길거리의 주차 금지 고깔을 보며 ‘마녀 모자 같다’고 상상하는 식이죠. 어떤 장면을 보고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4차원 세계나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정말 재밌거든요. 가끔은 지구를 잠시 이탈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관심사가 더 넓어져서 지하철이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건축 구조물까지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 삶을 기록하는 일이다 보니 범위가 정말 넓더라고요.

 

소장님의 시선을 따라 서순라길에서 마주한 ‘진짜공간’. 한 계단씩 디딜 때마다, 오랜 세월을 이토록 단단하게 버텨준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묵묵한 지탱이 우리에게 주는 안도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BRIQUE Magazine

 

다른 사람들이 진짜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이유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실 전 진짜공간이 대중적으로 아주 인기 있다고 느끼지는 못해요. 워낙 취향을 타는 매니악한 공간이니까요. 에디터님처럼 이런 감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과 일종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취향을 가진 분들이 진짜공간의 활동을 좋아하는 건 잘 다듬어진 디자인보다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에너지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도 한때 저런 공간을 꾸리고 살았지’ 하는 향수나 ‘나도 지금 이런 동네에 살고 있어’라는 생활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시는 거죠.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를 보는 것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찰나의 감각들이 겹치는 지점이 있잖아요.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느끼는 편안함과 반가움, 그런 감각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소장님의 기록은 마치 보물찾기 같아요. 일상의 발견을 나누는 SNS의 순기능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혹시 이런 기록들을 해시태그로 따로 모으기도 하시나요?

오랫동안 활동하다 보니 저 나름의 아카이빙 카테고리가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디자인 채집’이나 ‘#도시판타지’, ‘#비공식 건축’ 등으로 묶어서 아카이빙 하고 있어요.

사실 전 SNS를 정말 못 하거든요.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끔 AI한테 ‘여기엔 해시태그를 달아야 할까? 뭐라고 달까?’ 물어보기도 해요. AI가 추천해 주는 걸 달 때도 있지만 메인은 제가 가진 카테고리를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취지에서 정리하고 있어요.

 

벽돌인 척하다가 실패한 벽지. 임시방편임에도 굳이 ‘벽돌 문양’을 골랐을 마음이 귀엽지만 은박 테이프가 정체를 폭로하고 말았다. 철사까지 동원해 우편함 자리를 정교하게 오려낸 노력이 무색하다. 판단 미스와 귀찮음이 빚어낸 실패작. 정교한 마감 대신 택했던 임시방편은 흐르는 세월을 견디지 못한 채 낡은 껍데기가 되어 떨어져 나갔다. ©BRIQUE Magazine

 

긴 시간 기록을 이어오시다 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거나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것들도 있을 것 같아요.

공부할 게 너무 많고, 세상에는 정말 볼 게 너무 많다는 걸 매일 느껴요. 요즘은 그냥 어느 동네든 걸어 다니며 계속 관찰해요. 예전에는 개인의 사적인 흔적들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관에서 하는 프로젝트나 이른바 ‘집장사’가 지은 집들도 유심히 보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그 공간들이 시대적인 맥락과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해요.

‘탐방 다방(2024년 11월, 프로파간다)’이라는 책도 그런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나오게 된 거였어요. 다방 말고도 떠오르는 주제들이 계속 생겨나요. ‘이건 정말 중요한 건데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거든요. 그러다 궁금한 게 생기면 논문을 뒤져가며 공부해요.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 지점을 자료 조사를 통해 딱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 있어요.

 

현장에서의 발견과 기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아냈을 때의 재미가 가장 크신 거네요.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 그다음 순위일 것 같고요.

맞아요. 발견하고 기록하는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겐 가장 큰 재미예요. 그런데 사실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도 있어요. ‘내가 하는 이 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불쑥불쑥 떠오르거든요. 그럴 땐 답을 내기보다 그냥 해요. 그냥 할 뿐이죠.

그러다 에디터님처럼 제 활동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 ‘아, 이게 의미가 있구나’ 하고 다시금 새기며 힘을 내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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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께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의미가 되었다니 기쁘네요. 하셨던 프로젝트 중에 정책 제안을 하신 과정도 궁금해요. 재개발 현장을 정말 많이 다니셨던 걸로 아는데 특별히 보광동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이태원에서 8년 정도 살았거든요. 이태원이라는 동네를 정말 좋아해요. 어느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그 특유의 문화와 다국적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풍경이 너무 좋았거든요.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있고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문화를 일구고 있어요. 클럽이나 음식도 정말 다양하잖아요.

보광동은 친구들이 살고 있으니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그래서인지 보광동 재개발 소식을 접했을 때 느끼는 우려의 마음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랑하는 이태원 문화의 뿌리가 사실은 그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비싼 아파트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요? 그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사람들이 유입되고 기존에 살던 다양한 사람들은 떠날 텐데 그 문화가 계속 남을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가 알던 이태원이라는 멋진 동네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우려가 한 순간에 몰려왔어요.

 

단순히 낡은 건물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던 ‘문화의 토양’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군요.

맞아요. 마침 그때 지하철 조사를 병행하고 있었거든요. 2호선 순환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걸어서 쉽게 오갈 수 있는 반경 500m를 역마다 전부 찍어봤어요. 그런데 그 결과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아파트 위주로 재개발된 동네는 역 주변 500m 안에 내세울 만한 문화가 아예 없더라고요.

다양한 상권과 주택이 밀집한 동네는 ‘이 역 근처에는 이런 분위기가 있고, 이런 동네입니다’라고 설명할 거리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곳은 정말 설명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충격적인 리서치 결과와 재개발 소식이 머리 속에서 딱 겹쳐지면서 결심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요. 그렇게 정책 제안까지 이어지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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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너머의 공존을 설계하다

 

정책을 제안한다는 건 일종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이잖아요. 평소보다 훨씬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공부하며 준비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제안한 내용들은 이주 먼 예전부터 전문가들이 꾸준히 해왔던 이야기들이에요. 하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죠. 저도 어릴 때부터 재개발에 반대하는 활동가나 기획자분들의 글을 읽으며 컸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한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마음 한구석엔 늘 절망이 있었어요. ‘내가 뭔가를 더 보탠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한동안은 아예 외면하고 살기도 했죠. ‘리슨투더시티’ 같은 분들은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활동하는데, 그저 활동하시는 분들 SNS에 ‘좋아요’ 누르고 굿즈를 사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직접 발 벗고 나설 용기까지는 없었거든요.

보광동 사례는 제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며 마음속에 고여 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올린 셈이죠. 그동안 많은 분이 쌓아온 이야기들을 제가 다시 한번 꺼내 놓은 거예요.

 

그런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직접 정책 제안을 하게 된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정책 제안이라고 하면 시의원을 알거나 활동 단체의 장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높은 문턱처럼 느껴졌잖아요. 신문고 같은 곳도 조회수가 엄청나게 높아야 겨우 어필이 되곤 했고요. 특히 건축이나 도시 문제는 대중적인 정치 이슈에 밀려 늘 뒷전이기 마련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더라고요. 타운홀 미팅도 자주 열리고, 무엇보다 ‘소통 24’ 같은 플랫폼을 보니 시민 30명의 ‘좋아요’만 받아도 정책 관련자들이 검토를 시작한다는 거예요. 문턱이 정말 낮아진 거죠.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시대적 배경이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보니까 현재 ‘검토 중’인 것 같더라고요. 이후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저도 궁금해서 수시로 들어가 보는데 계속 ‘검토 중’이라고만 떠요. (웃음) 이게 전문가 전용 채널이 아니라 일반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과정마다 일일이 통보가 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으로선 그저 제 제안이 잘 전달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제 친구 중에 69년생인 친구가 있는데 어릴 적 인천에 처음 생긴 아파트에 살았대요. 그런데 그때도 단지 내 놀이터에 다른 동네 애들이 못 들어오게 경비 아저씨가 막았다는 거예요. 제 친구는 동네 친구들이랑 놀고 싶으니까 아파트 놀이터를 놔두고 단지 밖으로 나가서 놀았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 아파트의 담벼락과 고립은 정말 오래된 역사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아파트가 이 땅에 생겨날 때부터 이미 그런 배제의 힘이 작동하고 있었던 거죠.

 

저도 어릴 적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갈 때 느껴지던 묘한 위약감이 기억나요. 입구에 쇠사슬이 쳐져 있고 경비 아저씨 눈치를 봐야 했던 풍경들이요.

공간이 주는 그 위약감이라는 게 참 무섭죠. 한번은 정릉천 근처를 조사하다가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목격했어요. 예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정릉천을 건너 주거지로 갈 수 있게 이어주던 다리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옆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아파트 측에서 그 다리를 아예 없애버린 거예요.

외부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다니는 게 싫다는 이유였죠. 아파트 단지라는 사유지의 권한을 이용해 공적인 통로를 지워버린 거예요. 결국 다리가 없어진 탓에 주민들은 정릉천의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해치며 힘들게 올라가야만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어요. 논문을 쓰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됐는데, 정말 충격이었고 화가 났어요.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밀어내고 고립시키는지 보여주는 아주 슬픈 단면이었죠.

 

가설 건물의 생김새를 살피며 그 이면의 사연을 유추하는 모습 ©BRIQUE Magazine

 

건축만큼 중요한 것

 

건축가는 어쨌든 도시 안에 무언가를 디자인 해 짓는 사람들이잖아요. 무너진 도시의 맥락을 회복하기 위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소장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사실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웃음) 에디터님은 정말로 건축가가 공공을 위해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사실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개인이 가진 사적인 소유도 결국 공적인 토대 위에 기반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건축가라면, 겉으로는 건축주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디자인을 하더라도 내심 ‘이게 도시 전체에 좋은 방향이다’라는 설득의 기술을 품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바람은 있어요.

저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그랬으면 참 좋겠는데, 현실에서 건축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작아요. 저는 오히려 건축가보다 그 사업을 처음 설계하고 의도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건축 프로젝트를 하는데, 기획을 맡은 분이 설계가 들어가기 전 거의 반년 동안 공간 사용자들과 워크숍을 하더라고요. 관리직의 요구가 아니라 실제로 그 공간을 쓸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는 데 6개월을 쏟은 거죠. 그렇게 탄탄하게 정리된 기획이 바탕이 되어야 건축가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거든요. 결국 판을 짜는 건 기획자니까요.

 

건축가에게 도면을 맡기기 전, 그 안을 채울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지금 수십 수백 억 원의 세금을 들여 지은 공공 건축물들을 한번 보세요. 당인리 발전소나 문화비축기지 같은 곳들, 건물은 정말 으리으리하게 잘 지어놨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짓고 보니까 활용도가 떨어져요. 돈도 공간도 너무 아까워요.

이게 건축가의 공적 의식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까요? 저는 기획의 부재라고 봐요. 문화 기획이 중심이어야 할 텐데 건축 건설이 주인공이 되는, 충분한 고민 없이 랜드마크 하나 짓는 식이니까, 정작 지역에 가보면 그 큰 건물에 관람객이 저 한 명뿐인 곳도 자주 경험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과연 여기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겨요. 어쩌면 학교에서 건축가를 너무 대단한 존재로 가르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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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며 만난 건축가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학교에서는 건축가를 지나치게 ‘작가’로 바라보고 모두가 ‘거장’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거죠. 소장님이 겪은 교육 과정은 어떠셨나요?

정말 공감해요. 학교에서는 거장들의 작품을 아주 집요하게 탐구하게 하거든요. 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서양 건축사는 몇 학기나 배웠는데, 정작 한국 건축사는 딱 한 학기만 배웠어요. 그마저도 조선 시대 이야기에서 딱 끝나버렸죠. 학문적 시스템이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보니 그걸 공부하는 데 치중했던 것 같고 우리 현대건축에 대해서는 마땅히 정돈된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교육에서 배운 거장의 모습과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건축가의 모습 사이에는 꽤 큰 괴리가 있을 것 같아요.

네, 현실로 나오면 그 괴리가 참 커요. 건축가가 공공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거든요. 실제로는 건축주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허다하죠.

물론 작은 부분에서 고군분투하긴 해요. 단적인 예를 들면 건물을 대지 경계선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뒤로 물려보려고 애쓰면서 공적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식이죠.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조금씩 애를 써보는 거죠.

 

그래도 최근에는 그런 교육의 빈틈을 채우려는 움직임들이 보이지 않나요?

다행히 요즘은 학교에서 동네 리서치도 하고 연구자분들이 아카이빙과 연구를 열심히 해주셔서 그 빈 공간이 많이 채워졌어요.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한국 건축의 역사가 ‘조선’에서 멈춰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큰 변화죠. 그런 기록들이 쌓이고 정보 접근이 쉬워지면서 우리 곁의 진짜 공간들을 제대로 바라볼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소장님은 근린생활시설을 지을 때 유독 ‘계단’에 자신의 건축 철학을 쏟아붓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건축주들이 다른 건 간섭해도 계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내버려 두는 유일한 ‘틈새’라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귀한 고군분투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거예요. 현실에서는 건축가가 가진 권한이 그리 많지 않은데 밖에서 볼 때는 거창한 기대를 하니 부담스러울 때가 있죠. 제가 너무 냉소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에디터님 말씀처럼 건축가들도 각자 처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을 거예요. 건축주 혹은 발주처에서 간섭하지 않는 그 작은 ‘틈새’들을 지켜내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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