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녹색섬’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고 있나요?

[Zoom] 도시의 이기심 아래 사라진 나무들의 이름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글. 석정화  자료. 별도 첨부

 

“가랑비에 옷 젖듯 나무를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콘크리트 녹색섬> 이성민 감독

 

영화 속 개포주공1단지의 마지막 풍경. 사람이 떠난 아파트 단지는 현실이라기보다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이성민 감독은 이를 두고 ‘우주 속 아무도 없는 행성을 걷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과정에서 베어지고 있는 약 6만 그루의 나무.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재건축의 속도에 멈춘 40년

영화의 배경인 서울 강남구의 개포주공1단지는 1982년 준공된 총 5,040세대 규모의 대단지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본래 비옥한 농경지였던 만큼, 40년 동안 수목들이 아파트 층수를 훌쩍 넘길 정도로 울창하게 자라나 도심 속 숲을 이루고 있었다. 과거 주공아파트는 집 앞에 빨래를 널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우리 집’이라는 감각을 함께 만들어가던 삶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노후한 주거 환경과 치솟는 집값, 신속통합법¹과 같은 효율 중심의 개발 정책이 맞물리면서 재건축은 불가피한 과제가 되었다. 강남의 대규모 부지를 새 주거 단지로 바꾸는 정비사업은 ‘헌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다’라는 명분 아래 빠르게 추진됐다. 물론 재개발의 찬반 논란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40년을 버텨온 나무들은 개발의 장애물로 취급됐고, 대부분 벌목됐다. 

 

¹ 신속통합법: 서울특별시가 추진하는 정비사업 지원 정책. 민간 주도의 재개발 및 재건축 과정에서 공공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다. 기존 정비구역 지정 등에 소요되던 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여,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 기간을 5년 이상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를 다시 찾은 이성민 감독과 옛 주민들. <이미지 출처=영화사 진진>

 

영화 속 인물들은 오래된 나무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이식을 제안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국 비용이라는 문제와 마주한다. 수십 년간 뿌리 내린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관리한 뒤 다시 심는 일에는 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다 자란 나무를 베어내고 현장에서 폐기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다. 재건축 현장에서 나무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생명의 가치보다 사업성이었다. 결국 오래된 나무들은 개발의 과정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수령 200년 은행나무의 회복을 바라며 모인 서울 부암동 주민들과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 <이미지 출처=서울환경연합>

 

문득 최근 부암동 환기미술관 앞 은행나무 사건이 머릿속을 스친다. 약 200년 된 고목의 밑동에 미술관 측 직원이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라나는 뿌리가 담장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동네와 함께해 온 나무가 내 공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벌인 일이었다.

개포동에서는 비용 문제가 나무의 운명을 결정했다. 부암동에서는 사유지의 편의가 오래된 생명보다 앞섰다. 이유는 달랐지만, 공공의 풍경을 개인의 이해관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이미지 출처=TAKASHI KURIBAYASHI>

 

끊어진 뿌리가 묻는 질문

이러한 상황들을 떠올리던 중 우연히 SNS에서 일본의 예술가 타카시 쿠리바야시Takashi Kuribayashi의 ‘Trees’(2015)를 발견했다. 작가는 재개발 과정에서 베어진 나무들에 주목했다. 잘려 나간 뿌리를 여러 개의 유리 상자에 나눠 담고, 빈 공간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채집한 잎과 식물들로 채웠다. 흩어진 유리 상자들은 특정 각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하나의 나무 형상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을 보며 나무를 기억하는 방식은 꼭 이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건축 과정에서 사라진 나무를 기록하고 애도하는 방식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개포주공1단지의 나무 역시 개발의 과정에서는 장애물로 여겨졌지만, 오랫동안 주민들의 일상과 동네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온 존재였다. 쿠리바야시의 작업은 잘려 나간 뿌리를 다시 하나의 나무로 이어 붙이며,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조용히 되묻는다.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나무에 집착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을 향할수록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필자가 25년 정도 살던 아파트와 동네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선 신축 아파트와 도로가 들어선다면, 고향은 어디에 남게 될까. 그제야 나무를 붙잡고 있던 이성민 감독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개포동은 다시 거대한 공사장이 되고 있다. 재건축을 앞둔 5단지에는 200년 된 상수리나무가, 개포고등학교 뒤편에는 수령 깊은 은행나무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은 채 언제든 개발 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공존을 이야기할 때 거창한 보존 대책부터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GV에서 만난 이성민 감독은 “가랑비에 옷 젖듯 나무를 인식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변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나무를 우리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재건축이 끝난 뒤에도 5단지의 상수리나무 그늘과 은행나무의 계절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 풍경이야말로 재건축 이후에도 이어져야 할 도시의 기억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주)영화사 진진>

 


영화명.
콘크리트 녹색섬 (Green Concrete)

제작.
스튜디오시옷㈜

배급/투자.
(주)영화사 진진

감독.
이성민

출연.
이성민, 우종영

장르.
다큐멘터리

러닝타임.
103분

개봉일.
2026년 8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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