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헤어질 결심

[김성아의 기술 이후의 건축가] ⑩ 인공지능 시대, 판단과 책임의 재배치 (끝)
글. 김성아  에디터. 정지연

 

[김성아의 기술 이후의 건축가] 기술은 최적화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듭니다. AI는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고르고, 인간은 가능성이 없어도 마음이 끌리는 길을 택합니다. 이같은 비합리성은 결함이 아니라 창조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은 이 감정적 필연 위에서 태어나기에 기술의 시대에도 건축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연재는 건축을 둘러싼 기술적 변화의 과정에서 건축가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 지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도구를 넘어 사유로 – 건축가의 새로운 손
② 창조자에서 조율자로 – 건축가의 초상
③ 보이는 공간에서 작동하는 공간으로 – 가상성 시대의 건축가
④ 세계를 감당할 방식을 작곡하는 건축가 – 저자성(authorship)의 재배치
⑤ 흐름과 환상, 그리고 스캔되는 실존 – 공간 이후의 건축 
⑥ 시스템의 하얀 방에서 인간의 먼지를 찾아서 – 인간 이후의 건축
⑦ 시공간의 오케스트레이터로 – 건축과 기억: 기술 이후의 서사
⑧ 완료되지 않는 세계의 거주 – 버전version 1.0으로서의 건축
⑨ 낡은 정의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 건축가의 재정의
⑩ 건축과 헤어질 결심 – 인공지능 시대, 판단과 책임의 재배치 (끝)


건축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 말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몸담아온 업을 떠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헤어짐은 직업적 전향이 아니다. 너무 가까워져 서로를 규정해버린 관계에서, 다시 보기 위해 한 발 물러서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건축을 믿어왔다. 건축은 단순한 건물의 생산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사회와 개인, 기능과 감각을 동시에 매개하는 종합적 행위라고. 이 믿음은 건축가라는 직업을 매력적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짊어지게 했다. 도시 문제에 답하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환경 위기를 해결하고, 기술 혁신까지 선도해야 하는 자리. 어느 순간 건축은 거의 모든 질문의 종착지처럼 취급되었다.

질문이 많아질수록 건축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종합 보고서가 되어갔다. 도시계획서, 환경영향평가서, 기술 백서가 한 장의 도면 위에 겹쳐졌다.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건축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잃어갔다. 왜 이런 공간이어야 하는가, 왜 이 불편함은 제거되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은 “기준에 맞는가”라는 더 안전한 질문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세계는 보고서로 작동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논리보다 먼저 흔들리고, 공간은 설명되기 전에 체험된다.

그 틈으로 인공지능과 자동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스며들어 건축의 중심부를 차지한다. 이 기술들은 처음엔 구원처럼 보였다. 더 빠른 계산, 더 적은 오류. 그러나 이 개선의 이면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손의 기억이었다. 연필로 그린 선이 종이의 질감에 미세하게 흔들리던 경험, 모형을 만들다 재료의 저항을 몸으로 느끼던 순간, 현장에서 도면과 다른 상황을 마주하며 즉흥적으로 판단하던 장면들. 이 기억은 오랫동안 설계자의 몸 안에 축적되었지만, 디지털 도구는 그것을 외부화했고, 그 외부화는 효율을 가져오는 대신 기억의 성격 자체를 바꿔 놓았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점점 수치로 결정되었고, 설명되지 않는 감각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생성형 도구가 만들어낸 수십 개의 안, 그리고 그 옆에 매겨진 점수. 점수는 답을 주지만, 누가 그 기준을 정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미지=저자 작성(AI 이미지)>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공공발주 제도와 설계공모, 각종 인증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방향을 가리켜왔다. 왜 좋은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충족하는가. 이 전환은 공정성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판단을 위험한 것으로, 근거를 안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근거는 문서화되고 숫자로 환원되지만, 판단은 그렇지 않다. 판단은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은 책임을 요구한다. 인공지능은 이 경향을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구조 위에 정확히 들어맞았을 뿐이다. 생성형 도구와 최적화 알고리즘은 판단을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를 재구성한다. 무엇을 최적화할 것인가, 무엇을 최적화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지만, 알고리즘의 얼굴을 하고 등장할 때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건축가는 결정자가 아니라 선택자가 되어간다. 주어진 옵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책임을 분산시키지만, 왜 이 기준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설명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이 변화는 설계실을 넘어 시공 현장과 운영 단계까지 이어진다. BIM 모델과 디지털 트윈, 자동화된 시공 공정은 설계와 제작, 시공과 운영을 하나의 연속된 데이터 흐름으로 묶는다. 그러나 제도와 관행은 여전히 분절을 전제로 작동한다. 책임은 단계별로 나뉘고, 판단은 다음 단계로 미뤄진다. 기술은 연결을 요구하지만 제도는 절연을 유지한다. 이 불일치 속에서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

기술은 판단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을 미리 굳혀놓는다.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질문들이 있고, 그 질문을 누가 고르느냐는 대개 제도와 시장, 리스크 관리의 논리에 달려 있다. 설계자는 그 질문을 다시 설계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에 답하는 역할만 떠맡는다. 이때 건축가는 결정자가 아니라 응답자가 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을 바꾸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판단과 책임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건축이 어디까지를 기술에 맡기고 어디부터를 다시 인간의 몫으로 돌려받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건축은 근거는 많고 판단은 없는 상태에 계속 머물 것이다. 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동했을 뿐이다.

오랫동안 건축의 판단은 설계자의 몸에 있었다. 스케치를 하다 멈칫하는 순간, 모형을 돌려보다 느끼는 불안, 현장에서 도면을 들고 서서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는 시간. 판단은 대개 즉각적이지 않았고 설명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판단은 개인의 책임으로 남았고, 그 책임의 무게가 곧 건축가라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도구가 이 지연의 시간을 압축하면서, 판단은 계산으로, 다음엔 기준으로, 이제는 알고리즘으로 옮겨갔다. 판단이 위험해질수록 판단은 분산된다. 여러 기준, 여러 위원회, 여러 검토 단계가 등장하고 그 사이에서 판단은 익명화된다. 인공지능은 이 익명화를 극적으로 완성한다. 알고리즘은 언제나 중립적인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누구의 결정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판단은 더 이상 몸 안에서 숙성되지 않는다. 미리 설정된 질문과 가중치의 형태로, 시스템의 외곽에서 작동한다.

설계 회의에서 흔히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생성형 도구가 수십 개의 안을 만들고, 일조와 조망, 에너지 성능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이 안이 제일 좋네요.” 이 말에는 주어가 없다. 누가 좋다고 판단했는지, 왜 이 항목들이 중요한지는 말해지지 않는다. 점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점수가 전제한 세계관을 아무도 다시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꺼내는 순간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지고 계단을 내려오는 로봇. 균형은 계산해냈지만, 그 계산에 책임질 사람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미지=저자 작성(AI 이미지)>

 

그러나 판단이 처음부터 이렇게 설명을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사를 가던 날, 좁은 계단에서 냉장고가 내려오지 못한 채 멈춰 선 적이 있다. 계단은 좁았고 냉장고는 컸다. 어른들이 치수와 각도를 재며 방법을 찾았지만, 그 계산은 하나의 경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때 시장에서 짐을 나르던 늙은 지게꾼이 다가와 잠시 냉장고를 바라보더니, 그것을 등에 지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이미 경사를 알고 있는 듯 기울어졌고,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판단은 이미 몸 안에서 끝나 있었고, 계산은 더 이상 의식되지 않았다. 그날 계단 위에서 부족했던 것은 힘이 아니라 그런 종류의 판단이었다.

지게꾼의 판단에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 판단은 그의 몸에서 시작해 그의 몸에서 끝났고, 책임도 그 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나 건축의 판단은 여러 사람의 삶과 자원과 시간을 건드리기 때문에, 누군가 물으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지게꾼처럼 침묵 속에서 판단을 끝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 감각을 말로 꺼내 다른 사람 앞에 세우는 능력이다.

여기 머무는 일은 편하지 않다. 걸음은 느려지고, 해명할 말은 늘어나고, 가끔은 틀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껄끄러움 속에서만 건축은 다시 인간의 일이 된다.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판단을 하지 않는 것만큼 확실한 실패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옵션을 생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옵션을 끝내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이동은 시공 현장에서 더 분명해진다. 자동 타공 로봇과 프리패브 시스템은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였다. 안전사고는 줄었지만, 도면과 다른 상황을 마주해 기술자와 설계자가 머리를 맞대던 즉흥적 판단의 순간도 함께 줄었다. 건축은 오랫동안 실패를 통해 진화해왔다. 실패는 비용이 들고 위험했지만, 동시에 판단을 요구했다. 자동화는 오류를 줄이지만, 판단의 근육도 함께 위축시킨다. 이 위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환경 전체가 만들어내는 구조다.

이 구조는 교육에서 가장 먼저 재현된다. AI는 모호함을 싫어한다. 알고리즘은 명확한 질문과 목표를 요구하고, 그 요구는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생성형 모델과 자동 검토 앞에서 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왜 이렇게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도구의 결과를 설명하는 데서 말이 멈춘다. 결과가 좋으면 질문은 줄어들고, 결과가 나쁘면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온다. 학생들은 판단은 위험하고 근거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교과과정이 아니라 스튜디오의 공기를 통해 배운다. 이 교육을 통과한 젊은 건축가들은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루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정작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로젝트는 끝났는데, 그 공간에 대해 말할 언어가 남아 있지 않다. 졸업과 동시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 건 아이러니하다. 교육이 판단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축은 낯선 얼굴을 하게 된다.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해졌는데, 그만큼 윤리는 텅 비어간다. 이 공백은 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또렷해진다. 설계자는 기준을 따랐고, 시공자는 모델을 따랐으며,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아무도 틀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건축의 위기는 흔히 기술의 문제로 설명된다. 인공지능이 너무 빨리 발전했고, 자동화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식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 진단은 현상을 설명할 뿐 원인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언제나 도구였고, 도구는 스스로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위기를 만드는 것은 도구를 둘러싼 관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임을 어떻게 나눠놓았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가장 먼저 교육에서 드러나고, 제도를 통해 굳어지며, 결국 세대가 자리를 옮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건축교육은 오랫동안 ‘전문직업인 양성’과 ‘예술가 교육’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그 모호함은 나름의 생산성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정해지지 않은 기준 속에서 스스로의 언어를 찾으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건축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아도 괜찮은 자리였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를 요구하는 기술 앞에서, 이 모호함은 더 이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제도를 통해 더 단단히 굳는다. 공공발주와 인증 시스템은 설명 가능성과 비교 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는 공정성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건축가를 “왜 이렇게 했는가”를 말하는 사람에서 “기준을 충족했는가”를 증명하는 사람으로 바꾼다.

이 증명은 책임을 분산시키고 판단을 익명화한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반 사전 검토 시스템까지 결합되면, 이 익명화는 거의 완벽해진다. 건축가는 결정자가 아니라 설명자, 데이터를 해석해주는 중개자가 된다. 이 간극을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젊은 세대다. 그들의 이탈은 흔히 워라밸이나 개인주의의 문제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고생이 아니라 의미 없는 책임이다. 결정은 이미 위에서 내려왔고, 아래에서는 실행만 요구된다. 이 구조에서 노동은 수련이 아니라 소모가 된다.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시스템으로 충분하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사람의 역할을 점점 주변부로 밀어낸다. 그러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스템은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이 불균형을 젊은 세대는 직감적으로 안다. 그래서 그들은 건축을 떠나거나, 건축을 유지한 채 기획과 UX, 데이터와 플랫폼이라는 다른 언어를 찾는다. 이것을 배신이나 도망으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이들이 실제로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지를 놓친다. 이것은 탈주가 아니라 경계 이동이다.

다시, 오래된 물음 하나. 왜 건축은 여전히 ‘아이폰’이 되지 못했는가. 이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폰은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업데이트, 책임과 권한이 하나의 판단 체계로 묶인 결과물이다. 반면 건축은 설계와 시공, 운영이 분절되어 있고 각 단계는 책임을 다음 단계로 넘긴다. 이 구조에서 혁신은 늘 중간에서 사라진다. AI와 로보틱스는 이 분절을 기술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제도와 관행은 여전히 분절을 전제로 움직인다. 그래서 기술은 도입되지만 건축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해 질 무렵의 미완의 현장.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 아니라, 다음 판단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리다. <이미지=저자 작성(AI 이미지)>

 

그럼에도 우리는 왜 건축과 완전히 헤어지지 못하는가. 이유는 허무할 만큼 간단하다. 건축은 아직 완전히 자동화되지 않았다. 사람은 공간을 기능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빛의 방향, 소리의 잔향, 머무는 동안의 시간감. 이 감각은 아직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AI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이 왜 마음에 남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건축가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은 낭만적인 저항이 아니라 기술 시대에 남은 가장 현실적인 역할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 모든 의미를 담아내는 건축과는 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감각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남는지를 묻는 건축과는 아직 헤어질 수 없다.

다만 그 자리는 기계가 아직 하지 못하는 일의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불가능은 내일의 기능이 된다. 인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언가를 마지막까지 독점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기억하며 감당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답을 알고도 다른 가치를 위해 덜 효율적인 길을 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결정 앞에서 잠시 멈출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해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한 채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기억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건축과 헤어질 결심’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 관계의 재배치다. 이 거리는 후퇴가 아니라 재정렬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이 판단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태도, 근거만 있으면 판단은 필요 없다고 믿었던 그 믿음과 헤어지는 일이다. 그 믿음과 헤어진 자리에서 건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역할에서 풀려나, 판단과 책임이라는 오래된 핵심으로 돌아간다.

앞서 완공을 준공이 아니라 버전 1.0이라 부르자고 했을 때, 그리고 미래의 건축가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건축가는 최종 형태의 저자에서 수탁자로 이동한다. 변화의 조건을 만들고, 서로 다른 판단을 연결하며, 그 결과를 끝까지 돌보는 사람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자동화는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판단만큼은 외주화될 수 없다. 그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건축가에게 남은 마지막 특권일지도 모른다.

건축이 죽었다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건축 하나가 끝났을 뿐이다. 그 자리에 남는 건 텅 빈 폐허가 아니라, 다음 판단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동안 ‘김성아의 기술 이후의 건축가’ 연재를 위해 애써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김성아 Sung-Ah Kim
성균관대학교 교수로서 건축 설계와 컴퓨팅을 접목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미국(Harvard University)과 스위스(ETH)를 오가며 1990년대에 무르익던 설계 자동화와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영화, 음악, 전쟁사와 지리, 언어 등의 잡학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2021)’, ‘건축학과 교수의 클래식 음악 수첩(202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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