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석정화 글 & 자료. 제네스스페이스 GENESE SPACE + 제네스건축사사무소 GENESE ARCHITECTS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 있는 단독주택 ‘취향 백함’은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 온 70대 노부부를 위해 자녀들이 마련한 집이다. 건축주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반복하는 노동의 풍경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취향의 시간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래된 소나무는 꼭 살려야 한다’, ‘주방은 넓고 거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평생 가꿔온 배 밭이 보였으면 좋겠다’라는 요구는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방식이자 취향에 대한 이해였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 동의했고, 이 집을 부모님의 취향을 담는 하나의 상자로 계획했다.


이 집의 성격은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서 출발한다. 하얀 벽과 나무 바닥 위에 채워지는 것은 두 사람의 취향이다. 외관은 자개 보석함처럼 담백하지만, 내부에는 삶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인다. 그래서 우리는 ‘화이트 큐브’를 한국적인 언어로 번역해 ‘백함’이라 부르고, 이 집의 이름을 ‘취향 백함’이라 정리했다. 그들의 삶과 취향이 담기고, 앞으로의 시간이 채워질 하나의 보물함이다.



우리는 먼저 풍경을 다시 정의했다. 낙동강이 감싸는 우망리의 황금 들판과 북쪽의 배 밭, 남쪽의 논, 서쪽의 소나무 숲 사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고민했다. 매일 일로 마주하던 과수원의 풍경은 더 이상 삶의 중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남향의 햇살과 새로운 자연의 장면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며, 이 집은 ‘노동의 풍경’을 ‘취향의 풍경’으로 전환하는 장치가 된다. 같은 땅 위에서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삶의 밀도는 달라진다.


공간의 구성은 그들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부모님의 하루는 거실과 주방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1층의 대부분을 LDK*로 구성하고, 두 공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계획했다. 주방은 삶의 중심이 되었고, 거실과 함께 수평적으로 확장되며 공간의 경험을 만든다. 오래된 소나무는 첫 번째 보석으로, 주방은 두 번째 보석으로 자리 잡고, 이 요소들이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LDK: 거실(Living), 식당(Dining), 주방(Kitchen)의 앞 글자를 딴 일본식 부동산 용어. 세 공간이 벽 없이 하나로 이어진 개방형 구조를 뜻함.


집 안의 장면들은 각기 다른 풍경을 담는다. 거실에서는 오래된 소나무를, 식당에서는 중정의 나무를, 주방에서는 뒷마당 너머 배 밭과 산을, 침실에서는 주변을 감싸는 소나무 숲을 바라볼 수 있도록 면과 선을 조율했다.
주택의 입구는 일반적인 진입로 대신,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배 밭과 창고 방향을 향해 있다. 이는 여전히 농사를 이어가는 부모님의 일상을 존중한 선택이며, 이러한 흐름은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거실과 주방 중심으로 이어지도록 만든다.


2층은 종종 찾아오는 자녀와 손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작은 주방과 두 개의 침실이 배치했다. 계단을 오르면 옹벽과 창고 너머로 소나무 숲과 마을의 풍경이 담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시간이 이 집의 마지막 보석이 되기를 바랐다.
이 집은 부모님의 여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이 상자 안에서 그들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담아내며, 삶의 보석들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완성된 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