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준건축사사무소 | 조한준 대표

"소통으로 가치를 더하고 나눕니다."
ⓒMAGAZINE BRIQUE
에디터. 정지연  사진. 김영욱  자료. 조한준 건축사사무소 JoHanjun Architects

 

‘17평 작은 땅에 40평의 틈을 낸 건축가.’
당분간 이 문장은 좋든 싫든 그를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될 것 같다. 조한준건축사사무소 JoHanjun Architects를 이끌고 있는 조한준 소장 얘기다.

 

조한준 소장 ⓒBRIQUE Magazine

 

그는 최근 서울 천연동에 들어선 단독주택 ‘틈1740’을 완공하면서 여러 조각의 생각들을 정리해냈다. ‘고이 키운 딸을 출가시키는 아버지 마음’이라고하면 엇비슷할까. 건축주가 입주한 당일 저녁 조 소장은 비로소 불이 켜진 틈의 주위를 한참이나 배회했다고한다.

“건축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습니다. 좁은 땅에서 갖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해준 시공사와 작업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겹쳤고, 고생 끝에 첫 집을 갖게 된 건축주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등등, 복잡했죠.”

조 소장은 머쓱해하며 소회를 전했다. 이처럼 조 소장에게 복합 감정(?)을 안겨다준 틈은 흔히 말하는 ‘협소주택’의 범주에 있다. 20평 미만의 땅에 5평 남짓의 원룸을 겹쳐 위로 하나씩 쌓아올린 듯한 구조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조 소장은 협소주택이라는 용어에 상당한 불편함을 표했다. 이 용어가 갖는 왜곡된 프레임이 현장에서 빚어내는 여러 모순 때문이었다.

 

“협소주택이라고해서 결코 그 과정이 간단하거나 공사비가 저렴하지 않습니다. 좁은 땅에 공간을 만들어내다보니 설계도 복잡하고 현장 작업자들의 애로도 많고, 때론 위험하기도 합니다. ‘집이 작으니 돈도 적게 들겠지’라며 예산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조 소장은 건축주들이 집을 왜 지으려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집을 지을지 등에 대해 미리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더욱이 협소주택은 좁은 면적에 계단으로 위아래를 연결하는 구조가 대부분이다보니 ‘수직적인 생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찾아오는 고객에게 미리 이런 불편한 점까지 설명한다는 조 소장은 “건축은 건축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다양한 경우를 생각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소통하고 돕는 역할을 하고, 건축주는 건축가를 파트너로 생각해 존중한다면 시공사까지 그 기조가 유지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며 나름의 건축관을 풀어냈다.

 

최근 완공해 입주한 천연동 단독주택 ‘틈’은 층과 층을 뚫어 답답함을 줄이고 넓은 공간감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BRIQUE Magazine
 

원칙을 지키는 고집스러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원활하게 소통을 해내는 조 소장이지만 건축작업에서만큼은 원칙적이고 고집스런 면을 보인다. 건축주가 규정을 어긴 편법을 요구하거나 상황을 고려하지않고 이기적인 요구를 하면 그는 직설 화법을 동원해 반대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시공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설계를 흐트릴 상황이면 현장 바닥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시키고 관철시킨다. 시공자가 아닌 그가 설계 현장을 자주 찾는 이유기도 하다.
디자인적 접근법도 마찬가지다. 그는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꾸미거나 덧대지 않는다. 내부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확보하기 위한 스킵 플로어(Skip Floor)와 채광과 환기, 사생활 보호를 고려한 쪽창, 흰색의 외벽 처리 등은 그가 최근 완공한 건축물들에 일관성있게 적용된다. 작은 건물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대신 틈은 사람이 거주하는 만큼 공간이 협소해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을 줄이기 위해 층과 층 사이를 뚫린 채로 연결하는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크기와 배치, 마감 등이 조화를 이뤄 심미성도 높였다.

 

©Inkeun Ryoo
©Inkeun Ryoo

 

목수의 아들, 신진건축사가 되다
조 소장의 부친은 목공소를 운영했다. 어릴 때 직접 살 집을 짓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렴풋이 건축을 업으로 삼는 비전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지만 대학진학은 당시 인기를 모았던 전산과를 택했다. 그러나 군대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결국 전공을 바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남들보다 건축을 공부하게 된 시기가 좀 늦었죠.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건축이라는 분야가 다른 학문이나 분야에 비해 굉장히 더디 진행됩니다. 수련 기간도 길고 각 자 역량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시기도 다르죠. 때문에 시작이 늦었다는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한준 소장이 틈의 모형을 보며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조 소장은 지난해 ‘신진건축사 대상’과 ‘서울시건축상’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했다. 19평 땅에 60평 공간을 만들어낸 독립출판사 사옥 ‘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협소 대지 활용에 대한 재해석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소장에게 “협소 기록 갱신에 계속 도전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딱히 정해놓은 건 없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 애로가 있겠지만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건축주가 나타난다면 해야되지 않겠냐”며 웃었다.

서울 도심을 걷다가 괴의한 외관에 무심한 듯 우뚝 선 흰 건물을 만나게 되면 도심 한 가운데서 건축주가 살아갈 해법을 머리맞대고 고민해주는 건축가들의 수고를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Inkeun R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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