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정리 & 편집. 정지연 에디터
‘판교 ㄷ자 집’은 도시주택의 전형을 제안한 작업이다. 21세기 신도시의 단독주택이 무릇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과거 ‘도시 한옥’이 그랬듯이 생활이 투영된 공간 조직, 융통성 있는 구조 체계, 조형의 생성 문법을 담고자 한 노력이 담겨 있다.
이 시대에 집을 짓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주거 공간을 통한 ‘자아의 실현’이다. 집은 단순히 방과 거실, 부엌의 조합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관심사, 서로 다른 기호를 주거 공간이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고유한 특성을 갖는 여러 공간들이 집의 윤곽 속에서 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교 ㄷ자 주택 역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관심과 취미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텃밭을 일굴 수 있는 옥상정원, 오르간 연주 공간과 서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테라스, 요리를 맘껏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 등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한 측에서는 특별함을 원하는 개인의 요구가 있다면, 다른 측에서는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 있다. 70평 내외로 공급되는 필지의 한계를 생각하고, 요구되는 설비와 가구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공간들이 알뜰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또한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 폭우와 태풍 등 매우 혹독한 한국의 기후에 대한 고려를 하면서 집의 배치를 정하고 처마의 단면과 외벽의 디테일을 고안해야 했다. 이와 더불어 주변과 어울리는 집의 적절한 크기와 높이, 이웃 간 시선의 간섭을 고려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주인공은 중정, 가운데 마당이다. 도시 주택이 중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좁은 대지에 가장 효율적으로 내밀한 외부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ㄷ’자 집은 중정을 중심으로 공간이 전개되면서 모든 공간은 마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중정의 한쪽 벽이 가변적이어서 중정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며 도시와의 관계를 필요에 따라 조절한다.
또한 중정에 면한 처마와 발코니, 창과 벽, 테라스와 옥상 정원 등 다양한 건축적 장치를 통해 기후에 반응하고, 각 공간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며, 경험의 서사를 조직한다. 마당이 오랜 역사동안, 전통건축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듯, 이 집에서도 마당은 전체 공간의 중심을 이룬다.
주택에 전형 속에는 각 시대의 삶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삶의 양식이 담겨있다. 판교 ㄷ자 주택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형식의 삶을 위한 그릇이자 오래된 지혜의 현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