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나우랩 건축사사무소 NAAULAB ARCHITECTS
설계 조건
신도시 택지개발지구의 단독주택 지구단위계획 지침은 지역에 상관없이 대체로 유사하다. 이들 필지의 형태는 대부분 반듯하고 면적은 70~80평 내외, 단지 내 도로 폭은 6m 내외로 엇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같은 작은 필지가 이웃한 이유로 신도시 택지에는 유사한 모습의 집들이 연속되는 동네 풍경이 만들어지곤 한다.
‘연주가’가 위치한 용인시 기흥구의 택지도 지붕 경사도, 주요 재료, 집의 색감까지 법령이 정한 기준과 틀을 지켜야만 했다. 아울러 주변 환경에 신선한 자극과 긍정적 환기가 되는 집을 목표로 하는 것 또한 건축가가 달성해야 할 이 프로젝트 설계의 조건이었다.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건축주가 요청한 집의 조건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성처럼 ㅁ자로 둘러쳐진 집은 싫지만, 프라이버시가 최대한 고려된 집이면 좋겠다. 멋진 집이더라도 이웃들에게 불편함과 위압감을 주는 건 곤란하다. 마당이 있지만 늘 그늘져 있는 마당, 길에서 집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배치, 이웃들의 시선 때문에 마당 사용이 불편하거나 외부 형태, 공간이 너무 흔하고 뻔한, 그런 집은 아니길 바란다.
건축주가 원한 집은 ‘어떤 집이 되면 좋겠다’라는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분명한 취향이 있었다. 건축가는 이점을 고려해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의 요구에 반하는 경우를 하나씩 뺄셈하며 설계를 진행했고, 이 과정을 거쳐 하나의 집이 만들어졌다.
내부 공간
먼저 ㄷ자 집의 중정은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인접 대지경계선 담장(높이 0.6m 이하) 규정과 무관하게 건축과 연결되는 높은 벽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필로티와 벽을 적절히 사용해 집 전체를 느슨하게 두르면서 중정을 최대한 열어 집 안으로 볕과 그늘을 끌어들였다.
원지반의 현황 측량 결과에 따라, 50㎝ 정도 대지의 단차를 활용해 일자로 배치된 1층 거실과 식당은 바닥 단차를 두어 천장 높이에 변화를 주었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며 만나는 높은 천장은 식당으로 이어지며 일반적 층고가 되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자형의 단순한 평면이지만 바닥의 단차는 높이에 변화를 주어 실내 규모를 더 크게 느껴지도록 한다.
내부는 간결한 일자형 동선으로 실내 공간이 실제의 면적보다 더 크게 느껴지도록 설계했다. 1층의 거실, 식당은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족의 공용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했고, 2층은 침실은 필요한 만큼의 면적으로, 수납은 가급적 많도록 공간의 분위기는 답답하지 않도록 높은 천장의 시원한 복도와 가족 홀, 외부 테라스 및 다락과의 연결을 활용했다.
주택의 실내를 답답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 중에 ‘높은 천장의 복도’가 있다. 일자형 계단이 만들어낸 2층의 긴 복도를 자연스럽게 다락과 이어지도록 시원한 높이로 연결해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화랑이나 갤러리처럼 느껴지는 높은 천장은 거주자의 일상 공간이 답답하지 않도록 증폭시켜 주는 요소다.
테라스와 루프탑은 자연스럽게 내부 외부를 연결하는 실내의 확장 공간이다. 맨발로 내부와 외부를 드나들 수 있도록 실내 공간의 일부분이 되길 기대했다. 2층 가족 홀에서 다락으로 다락에서 루프탑으로, 루프탑에서 다시 계단식 테라스를 내려가 2층 가족 홀로 연결되는 순환 동선은 이 집의 시그니처 공간이 된다.
외부 공간
외부 공간은 각 쓰임새 맞도록 분할해 조금 더 명료하게 사용되길 기대했다. 집 만들고 남은 땅을 대신해 마당으로 하자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필요한 외부 공간의 크기를 각각 가늠하며 개별적 성격을 부여하고 싶었다.
중정에서 동측 도로에 면한 공간은 주차 필로티와 현관 앞 포치를 배치하고 중정과의 경계는 행인과 눈이 마주치지 않는 높이의 담으로 구획했다. 도로에서 중정까지의 거리는 넉넉하며 담, 필로티는 행인들의 시각적 스크린이 되어 중정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돕는다. 중정 서측면 필로티 공간은 집 바깥에 마련된 외부 키친으로, 2m 높이의 유리 블럭 및 노출콘크리트 벽을 활용해 이웃의 시선을 차단한다. 계절과 날씨 상관 없이 이 집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언제든 즐거운 식사가 가능한 밝고 쾌적한 공간이다.
필로티 주차의 위층은 2층 계단식 테라스이다. 계단식 테라스는 다락에서 연결되는 옥상 루프탑과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저녁노을을 보며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가족만의 힐링 공간으로 계획했다. 이 공간은 거주자에게 종종 비일상적 휴식과 산책의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건축가는 크지 않은 개인 주택으로서 거주 공간에 대한 소박한 욕망과 정체성을 은은히 드러내는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움츠린 듯 펼쳐진 집, 가려진 듯 열려 있는 집, 튀는 듯 동네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집 말이다.
건축주는 이 집의 이름을 ‘연주가’라고 지었다. 입주 후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이웃들의 다양한 반응을 종종 전해오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