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틔움건축
전망을 가진 땅
도시의 끝자락, 경사를 따라 공원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대지는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가졌다. 남측으로는 도시 전망을, 북측으로는 자연환경을 가까이 담을 수 있는 공원을 마주하고 있다. 도시 생활과 자연환경을 함께 누리는 장점이 있는 한편,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는 단점을 가졌다. 즉 거주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땅이다.
맹지 또는 두 개의 출입구
대지 기준 약 3m 높이에 위치한 북측도로와, 골목의 끝 (대지 높낮이차로 인해) 계단으로 연결되는 서측도로에 접해 있다. 두 개의 도로에 접해 있지만 어쩌면 두 도로에 모두 접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측도로의 경우, 대지 경계의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에 경계 지점이 어느 높이에 연결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지 경계가 높이가 낮은 현재 대지에 있는 경우 도로 연결이 어려운 맹지로 볼 수 있다. 한편 서측도로는 낮은 도로에서 높은 도로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차량 통행이 불가한 보행 통로 역할만 가능한 대지라면 막다른 도로로 인한 도로 확폭으로 대지 면적이 축소된다.
설계에 앞서 도로 관계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경계 복원 측량과 현황 측량을 진행, 대지 현황을 파악한 후 자료를 정리해 지자체 관련 부서와 사전 협의를 진행했다. 협의 결과, 북측 도로는 대지 경계선이 높은 레벨에 형성되어 도로와 연결이 가능한 상태였고, 서측도로는 막다른 도로이지만 지자체 내규에 따라 4m의 현황도로를 확폭 없이 사용 가능했다. 즉 계단이 시작되기 전 도로와 접하는 구간으로 차량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동선의 시작
1층과 2층에 서로 다른 출입구를 두어 두 층에서 각각 접근이 가능하도록 했다. 두 층을 두 가구가 분리해 사용할 수도 있고, 한 가구인 경우 거주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관은 2층에 배치해 2~4층을 하나의 연속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층은 별도의 공간으로 계획했다.
전망 좋은 주방과 테라스
계획 초반부터 건축주는 전망 좋은 루프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상층에 주방을 둔 배치를 원했다. 이에 따라 4층 프로그램은 테라스와 주방, 식당으로 고정했고, 1층은 건축주가 별도로 사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계획했다. 또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는 점을 고려해 공용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곧 성인이 될 자녀와 부모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각각의 침실을 2층과 3층으로 분리한 후 중간 지대인 3층에 (소)거실을 배치했다. 건축면적이 여유로웠다면 좀 더 유연한 구성이 가능했겠지만, 13평 면적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내부 공간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층: 출입 + 다목적 공간
2층: 출입 + 두 자녀를 위한 룸2 + 화장실
3층: (소)거실 + 마스터룸 + 욕실(드레스, 세탁, 건조기 포함)
4층: 주방, 식당 + 테라스
테라스 자리 잡기; 도시 관계 맺기, 공간 파기, 잘라내기, 도려내기, 빗각치기
테라스의 위치는 계단과 주방, 식당의 관계에 따라 동남측 방향으로 설정했다. 남측과 동측 두 도로로 열린 배치를 통해 계단 앞 (남측 자투리)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효율적인 동선 구현도 가능해졌다. 나아가 테라스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 공간을 모색했다. 테라스가 자리한 만큼 내부 공간에서는 주방과 식당이 축소되기 때문에 네모반듯하게 한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보다는 삼각 형태로 빗각치듯 공간을 잘라내는 방식을 택했다. 계단의 방향 또한 비스듬히 빗각에 평행하게 돌려주었다. 이로써 식탁이 놓일 내부 공간을 확보하고, 넓은 하나의 창문으로 내외부가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북측에 위치한 창문과 테라스 창문이 가까워진 만큼 계단과 보이드에 채광 및 개방감이 확대된다.
두 개의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에는 건물의 모서리 대신 면을 만들었다. 생성된 면을 통해 도시에 대응하는 다채로운 입면을 구현했다. 정면과 측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연속된 입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체감 있는 3차원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시점마다 다른 입면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태평동 주택에서 테라스는 일조사선에 의해 생긴 부산물이 아니라, 건축주의 요청에 의해 처음부터 계획된 공간이다. 일조사선에 의해 북측에 생성되는 테라스는 북측에 위치해 채광이 불리한 반면, 남측에 위치한 테라스는 채광 확보는 물론 도시를 전망할 수 있는 조망권도 확보된다.
계단으로 수직 공간 숨구멍 만들기
수평 공간이 작아 원하는 공간을 하나의 레벨에 담지 못하는 경우, 계단을 이용해 연속된 생활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공간의 크기와 향을 고려할 때, 주요 공간을 남측에 배치하고 부속 공간과 동선을 북측에 배치하는 편이 유리했다. 2층 주출입구(현관)에서 시작된 동선은 북동측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수직으로 연속되며, 남측에 위치한 각각의 주요 공간을 연결한다. 2층의 전실과 3층 거실이 연결되고, 3층 거실과 4층 테라스 및 식당이 연결된다.
연결이라는 기능에 충실하게 적층된 공간들 사이에서 오는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숨구멍을 더했다. 수직으로 설치된 보이드(void)를 통해 채광을 유입시키고, 내부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도록 했다. 4층에 설치된 남,북측 창호는 채광과 환기를 위한 보이드의 기능적 활동을 배가시킨다.
슴슴한 집
도시 풍경에서 조금은 심심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풍경에 자연스레 묻어가는 담백한 집을 그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매스를 두 개로 분할했다. 박공지붕과 삼각형 테라스가 있는 4층과 사각형 백색으로 보이는 1~3층이 그것이다. 네모, 세모와 같이 하나의 도형으로 읽을 수 있는 형상으로 구분한 이유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건축 어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가로 환경과 함께하는 저층부는 백색 스토 마감을 적용해 담백한 바탕으로 표현했고, 박공지붕으로 처리된 상층부는 이웃한 건물과 함께 에이징aging된 모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적색 스무스 벽돌로 마감했다.
시점에 따라 두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경사지를 따라 오르면 1층부터 4층까지 전체 건물을 볼 수 있고, 이와 반대로 길을 따라 걸으면 담담한 3층 집으로 보인다.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그 자리에 슴슴하게 자리하기를 바란다. 하얀색 네모 위에 불그스레한 삼각형이 ‘슴’ 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