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세진 에디터. 석정화
[바르셀로나 건축을 오독합니다] 바르셀로나는 건축으로 사랑 받는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덕분에 바르셀로나의 건축물에 관해서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펼쳐 놓은 ‘정답’ 같은 해석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런 정답은 프랑스의 대표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67년 발표한 ‘저자의 죽음’ 이후 문화예술계에 큰 흐름이 된 ‘열린 해석’의 논쟁처럼, 대중으로부터 힘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이번 연재는 바르셀로나에서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필자가 건축적 아이디어가 건물로 변화되는 지점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상상해, 기존과 다르게 건축을 읽는 ‘오독’을 목표로 합니다. 알려진 오래된 건축물을 다루지만, 필자의 글을 따라가보면 현재의 건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들어가며 – 특별해서 특별하다기보다는, 특별해야 해서 특별하다.
냉전 시기 미국의 중앙정보국 CIA는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했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은밀하게 지원했다. 문화가 하나의 무기로 이용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잠시 뒤로 밀어두기로 하자. 이 현상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앞서, 이미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주도권을 갖기 위한 각국의 노력 덕분에, 현대의 문화는 특별해서 특별하다기보다는 특별해야만 해서 특별한 경우가 꽤 있다.
*추상표현주의: 감정과 행위를 중심으로 한 추상회화의 경향으로, 냉전 시기 미국이 ‘자유로운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건축계에서 다소 특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바로 스페인 내 자치 지역인 ‘카탈루냐Catalunya 독립운동’ 때문이다. 스페인은 서로 다른 다양한 왕국이 공존해왔고, 그 정체성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이는 그들의 일상 속 식문화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바스크 스타일의 치즈 케이크Cheese cake,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깔라마레스Calamares, 갈리시아 스타일의 뿔뽀Pulpo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는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도 독립을 시도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건축은 그들에게 하나의 명분, 혹은 무기가 된다.
카탈란 모더니즘Catalan Modernisme**은 이러한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었으며, 이들의 뒤를 이은 카탈루냐 건축가들 또한 이러한 토양에서 성장했다. 바르셀로나파의 대표적 건축가 중 실험적 형태로 유명한 엔릭 미라예스Enric Miralles나 기념비적인 건축으로 알려진 리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의 독특한 포지션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마드리드파의 대표적인 정통 건축가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와 비교해보면, 미라예스나 보필의 스타일적 독특함을 한층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카탈란 모더니즘Catalan Modernisme: 카탈루냐 지역에서 발전한 근대 건축 양식으로, 지역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움직임과 연결된다.


물론 이것이 그들의 건축 전부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폴록을 ‘만들어진 거장’으로 단순하게 보기만은 어려운 것처럼, 바르셀로나의 건축 또한 문화전쟁의 결과물이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이들의 건축은 건축가 개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장인, 기후, 산업의 성장과 쇠퇴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동시에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언어, 지역 축제, 건축물 보존과 연구 발굴 등 문화 전반에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구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축은 자연적으로 발생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의지로 인해 견인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건축가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눈앞의 현상을 그저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다. 건축을 문화가 아닌 건설 산업으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짓기’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건축에서 짓기는 가능한 다양한 결과 중 하나일 뿐, 단일한 목표가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건축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다음의 두 가지 비판적 행동이 가능하다. 먼저 그 의지 자체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본래의 의지를 제거하고 본인의 의지를 통해 건축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즉,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것이다.
서문에도 밝혔듯, 이제 정답을 찾는 일은 너무 쉽고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단 10초 만에 AI를 통해 정보를 찾아낼 수 있고, 설령 그럴싸한 것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진실’인지 머리를 싸매야 한다. 그러나 만약 건축을 읽는 독자가 의도적으로 오독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정답과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본인이 오독을 자처한 이상, 비판에 대한 열린 태도는 필수일 것이다. 이 연재는 바로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회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을 한 회에 하나씩 살펴볼 예정이다.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였던 ‘당연한 것들’에 조금씩 금을 내 볼 예정이다. 이 금이 간 흔적이 전체적으로 어떤 커다란 패턴을 이루는지, 혹은 누군가에게는 금이 아니라 커다란 구멍으로 이어질지를 지켜보는 것은, 읽는 독자뿐 아니라 쓰는 필자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박세진 Sejin Park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원 건축형태분석연구실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카탈로니아 건축학교(IaaC: Institute for Advanced Architecture of Catalonia)’에서 기계와 로봇을 이용한 디지털 패브리케이션과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건축스튜디오 삶것에서 ‘말(로)하는 건축가’를 진행한 후 논문을 게재하고, ‘미로 5호’에 저자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로버트 벤추리의 건축을 존중하며, 건축이 매체로 표현되는 지점과 매체를 바꿔가며 옮겨가는 과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