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만, 건축의 선은 남는다

[브리크 아카이브 큐레이션] ② 선으로 남은 건축, 드로잉 기록으로 이어지다
©Atelier ITCH
글. 석정화  자료. 개별 표시

 

[브리크 아카이브 큐레이션] 브리크에는 1,400개가 넘는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에디터는 하루에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과거에 다뤘던 작업을 다시 찾아 참고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공통점과 흐름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브리크 아카이브 큐레이션’은 이러한 발견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져 있던 프로젝트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고,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맥락을 따라가며 건축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하려 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작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축, 파빌리온
② 선으로 남은 건축, 드로잉 기록으로 이어지다

 

©Atelier ITCH

 

건축은 완성되기 전에 먼저 선으로 존재한다. 시대가 변화하며 디지털 도면(CAD)과 3D 프로그램은 건축가와 엔지니어, 건축주가 건물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단축키와 명령어로 구성된 디지털 매체와 달리 드로잉에는 정해진 툴이나 형식이 없다. 건축가는 초기 단계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와 공간적 의도를 종이 위에 빠르고 거친 선으로 풀어낸다. 선의 두께와 질감, 반복과 생략의 방식은 모두 다 다르다. 이렇게 다르게 모인 드로잉을 바라보면 건축가마다 다른 건축을 만드는 만큼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그려낸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1. 조천욕장: 제주 조천 바닷가에서 푸는 여독

  • 디자인 및 시공: 아틀리에 이치 Atelier ITCH
  • 사진가: 조엘 모리츠 Joel Moritz
  • 위치: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의 바닷가를 향한 창의 방향을 통해 이 집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말해준다. ©Atelier ITCH

 

조천의 바닷가는 ‘물’이라는 요소에 집중한다. 이 프로젝트의 스케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움직임과 그 흐름이 공간을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제주 북동쪽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조천朝天. 해 돋는 아침을 맞이하는 바닷가에 위치해 갯마을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다. 이들은 조천의 바닷가가 품고 있는 ‘물’이라는 요소에 집중했다.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비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다. ‘몸을 씻는 것’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몸을 재정비하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를 풀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행위라 생각했다.

목욕할 욕浴이라는 한자어는 쏟아지는 물을 형상화한 한자어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힘과 세정력으로 노폐물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녔다. 쏟아지는 물, 솟아나는 물, 담겨있는 물, 바라보는 물 그리고 수증기로 피어나는 물로 가득한 공간에서 씻어냄과 닦아냄이라는 행위에 집중하도록 해 휴식과 재정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Joel Mo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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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소비가: 작아서 소중하고 비울 수 있어 가치로운 집

  • 디자인 및 시공: 건축사사무소 공백 OIOO ARCHITECTS
  • 사진가: 최진보 Jinbo Choi
  • 위치: 강원도 정선군 남평리

 

비움을 중심에 둔 배치는 건축주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OIOO ARCHITECTS

 

‘작소비가作小卑家’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작고 낮게 지은 집. 의미 그대로 작아서 소중하고, 비울 수 있어서 가치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움’이라는 것은 서로 각기 개별적인 사유와 실천의 차이에 따라 중정, 마당, 아뜨리움, 회랑, 광장 등 다양한 어휘로 적절히 발전하고 변용돼 왔다. 이 시대의 건축적 ‘비움’이라는 개념은 조금은 상투적이고 따분하고 지루한 개념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공백’이라 칭하고, 우리의 건축적 철학으로 잡은 것은 이 ‘비움’이라는 개념이 그만큼 가치 있고, 또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Jinbo Choi
©Jinbo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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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서작업실: 한옥의 숨결을 품은 하이브리드 구조

  • 디자인: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seearchitects
  • 시공: 시공작
  • 사진가: 김용성 mongsang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130
 
균일한 형태보다 서로 다른 방향의 지붕이 가진 차이를 먼저 기록한다. ©seearchitects

 

다섯 개의 지붕을 평지붕을 중심으로 둘러 모아 하나의 군집을 형성했고, 이 지붕들이 하나둘 모여 작은 원서 마을이 되기를 상상했다. 다섯 개의 지붕은 크기뿐 아니라, 용마루 선의 방향과 처마선의 경사 또한 서로 다르다.

 

북촌과 원서동의 오랜 역사를 지닌 한옥들은 그 규모가 작다. 이번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그러한 북촌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에 따라 크지 않은 다섯 개의 지붕을 평지붕을 중심으로 둘러 모아 하나의 군집을 형성했고, 이 지붕들이 하나둘 모여 작은 원서 마을이 되기를 상상했다. 다섯 개의 지붕은 크기뿐 아니라, 용마루 선의 방향과 처마선의 경사 또한 서로 다르다. 이는 부정형의 대지에 자연스럽게 건물을 앉히기 위한 의도였다.

 

©mong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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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윤두오창 아트센터: 꿈의 지형에 새긴 빛의 건축

  • 디자인 및 시공: 아틀리에 시
  • 조경: So boring company, Zhao Xiong
  • 사진가: Zhang Chao
  • 위치: 중국 구이저우 성 구이양 시 

 

둥근 아치는 구조와 함께 빛과 내부의 깊이를 보여준다. ©ATELIER XI

 

공간과 빛의 힘에 의해 내부에서부터 침식되듯 파여져, 동굴처럼 매달린 뾰족한 아치를 이루며, 균형과 긴장감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2022년, 건축가는 중국 구이양시에 위치한 ‘AYDC 아윤두오창(阿云朵仓)’에서 종합 공공 예술 건축을 설계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AYDC는 구이저우(贵州) 지역의 이족(彝族) 언어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 이상(理想)의 땅’을 의미한다. 이곳은 문화에 기반한 실험적 브랜드 지구이자, 집단적 표현, 창의적 발전, 자연과의 공생이 융합된 영감의 거리이며, 구이저우 산수의 영성을 따르며 사람과 사유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하는 커뮤니티와 마을이다.

 

©Zhang Ch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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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페 M: 가구가 만든 광장, 공간이 된 풍경

  • 디자인: 오헤제 건축설계사무소 o.heje architecture
  • 조경: 도감
  • 사진가: 황우섭 Wooseop Hwang
  • 위치: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이화1길 33-4 

 

평면 스케치는 공간 속 가구와 구조를 통해 사람의 움직임이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o.heje architecture
 

 

하나의 커다란 직사각형 평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 개의 중정과 크고 단단한 콘크리트 가구들이다. 중정 주위로 공간이 생기고 콘크리트 가구와 이를 둘러싼 벽은 건물 속의 또 다른 건물처럼 작동한다. 이런 구조는 다양한 길을 만들고 이야기의 흐름을 만든다.

사람은 자극을 덜어내고 하늘과 물 풀과 나무 햇빛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각을 열어둔다. 이 카페는 그렇게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이 된다.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오솔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숲이 따라 내려온 듯한 정원을 만난다. 작고 둥근 정원에서 출발한 방문자는 주문 공간을 지나 큰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천창에서 빛이 스며드는 중정 공간에 도달한다. 눈앞에 펼쳐진 외부 공간과 숲을 지나 중정을 옆으로 돌아나가면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 공간이 열린다.

천창에서 내려오는 빛과 저수지의 반사된 빛은 돌과 콘크리트 가구를 타고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저수지와 하늘 외부의 숲과 내부의 정원 콘크리트 벽과 소나무 숲 나무와 유리 자연과 건축이 서로 다르면서도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이 땅과 물과 숲이 전하는 이야기를 장소의 경험으로 바꾸고자 했다.

 

©Wooseop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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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굴과 달의 중첩: 빛과 어둠이 맞물린 두 개의 볼트

  • 디자인: 스튜디오 코아 부 Studio KHOA VU
  • 사진가: Chuong Nguyen
  • 위치: 베트남 호찌민시 

 

내부의 곡선은 콘셉트인 동굴과 달의 키워드를 상상하게 만든다. ©Studio KHOA VU

 

‘집’이라는 개념을 동굴에 대한 은유로 재해석했다. 동굴이 지닌 보호와 고립을 제공하면서도 외부를 향한 시선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달이 지닌 밝음과 어둠의 성질과 맞닿아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있는 ‘동굴과 달의 중첩(TS LUNAR CARVEN)’는 약 150㎡ 규모의 복층 주거 공간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음악가인 클라이언트를 위해 계획된 이 공간은 ‘집’이라는 개념을 동굴에 대한 은유로 재해석했다. 동굴이 지닌 보호와 고립을 제공하면서도 외부를 향한 시선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달이 지닌 밝음과 어둠의 성질과 맞닿아 있다. 

공간의 중심에는 두 개의 볼트Vault* 공간이 서로 맞물려 배치한다. 각각의 공간은 고유한 성격을 지닌다. 하나는 밝게 열린 개방감을, 다른 하나는 깊고 밀도 있게 닫혀 있다. 이러한 구성은 빛과 그림자, 개방과 밀도를 만들어 전체 공간을 유기적으로 풀어낸다. 

두 개의 볼트 사이에는 절개와 관통을 통해 시각적·공간적 연결이 형성된다. 이 틈을 통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공간은 느슨하게 이어진다. 일부 개구부는 사이공 강 방향으로 시선을 열어주는 동시에 수납과 기능을 담는 요소로도 작동한다. 

 

©Chuong Nguyen
©Chuong Ngu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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