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김태진 자료. 광주광역시
[사사로운 공공건축]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나름의 다름을 추구한 공공건축물을 소개합니다. 공익과 합리라는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낭만과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건축가들. 이로써 전에 없던 공공건축물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이야기. ‘공공건축’과 ‘좋은 건축’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엿보는 일은 우리를 더 깊은 공간 경험,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흔한 도서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변화 – 푸하하하프렌즈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② ‘유스Youth’를 위한 복합문화공간 – 신아키텍츠가 말하는 ‘펀그라운드 진접’
③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 SOAP의 ‘여의롤장’
④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 구보건축의 ‘연의생태학습관’
⑤ 관념의 늪을 건너 물성의 건축으로, 위진복이 그리는 공공 주차장화 – UIA의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⑥ 건축 이어달리기 – 임영배, 김광수&김아영, 임태희의 ‘광주시민회관’

무등산은 알고 있는 이야기
광주에 빚이 있다. 고향이 광주인 어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군용 헬기가 밤하늘을 가르던 그해 5월의 밤, 그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집안 기둥에 묶어두었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군인들이 붙잡아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었다.
무등산에 오르면 광주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무색한 말이 되었다. 산 주변을 에워싼 고층 빌딩 숲 때문에 정작 ‘무등산도 모르는’ 일들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던 날, 나는 광주로 향했다. 2024년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던 때였다. 소설이 남긴 아릿한 상흔을 안고 내린 광주송정역 플랫폼에서 시민들은 마치 모든 상처가 아문 듯 평온해 보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입구에는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얼마만큼의 무덤을 파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축복과 방치 사이, 멈춰버린 건축의 이어달리기
광주시민회관은 1971년 전남대학교 임영배 교수의 설계로 탄생했다. 초기에는 결혼식장과 영화관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며 연간 300여 건의 예식이 열릴 만큼 시민들의 축복이 가득한 장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노후화된 시민회관은 2010년 철거 논의에 휩싸였다. 그해 3월 실제 철거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시민들과 각계인사들이 보존을 위해 힘을 모은 끝에 12월 건물을 지키는 쪽으로 극적인 방향 선회가 이뤄졌다.

2011년 8월, 광주시는 리노베이션을 위한 지명현상공모전을 개최했다. 건축가와 조경가로 구성된 5개 팀이 참여했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심사위원단이 평가에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최종 당선작은 김아연 조경가와 김광수 건축가의 ‘광주의 판, 그린 콘서트’였다. 그들은 구도심에서 광주공원과 사직공원을 잇는 도시 축 형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리노베이션은 반쪽짜리로 진행되었다. 불명확한 활용 계획 탓에 건물은 다시 수년간 방치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후 2020년 다시 한번 재조성 사업 공모가 진행되었고,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안이 최종 당선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공간을 사용하기로 계획된 청년몰 ‘포레스트971’은 현재 운영을 멈춘 상태다. 다만 1층은 현재 카페로 운영 중이며 주말마다 공원 방문객들이 찾는 공간이다.
광주시민회관의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해 광주광역시 도시공원관리사무소 양철완 운영팀장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공간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공연 시즌이면 청년들뿐만 아니라 광주시 문화 관련 부서들이 활발히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며, 광주여성재단의 북카페도 운영 중”이라며, “건물 사용에 있어 지금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공간을 특정 사업으로 억지로 채우려 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운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축의 ‘애도와 멜랑콜리’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저서 ‘애도와 멜랑콜리(Trauer und Melancholie)’에서 애도되지 못한 죽음은 전복의 힘을 갖는다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묻고 현재의 체제에 균열을 내도록 한다는 의미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시민회관 앞 광장에는 스스로를 나라를 지키는 ‘시민군’이라 부르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회관 일대에 시민군 본부가 들어섰다. 5월 19일부터 이어진 격렬한 충돌 속에 시민들은 이곳을 항전의 근거지로 삼았다. 결국 5월 20일 계엄군은 제11공수여단 제12지역대를 광주공원에 배치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집단 폭력의 피해자 윤소희가 등장한다. 주인공 문동은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안고 소희를 가슴에 품은 채 복수의 길을 걷는다. 극 중 주병원의 원장은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소희의 시신을 안치실에서 끝까지 지켜낸다.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의 진실이 증명될 때까지 자리를 비워둔 것이다.

무등산이 광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듯, 건물도 그 땅의 기억을 기억한다. 지금 이 건물이 비어 있는 것이 어찌 건물의 잘못이겠나. 도시의 청년 인구가 줄어들고, 상권이 옮겨가고, 돈을 따라 흐르는 욕망이 공간을 휘젓는 현실을 탓할 수 있을까.
때로는 비워진 채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건축은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건축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깃들었던 진실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민회관의 이어 달리기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건물은 아직 풀리지 않은 광주의 상흔을 보호하고 있는 안치실로서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