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정화 자료. 개별 표시
[브리크 아카이브 큐레이션] 브리크에는 1,400개가 넘는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에디터는 하루에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과거에 다뤘던 작업을 다시 찾아 참고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공통점과 흐름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브리크 아카이브 큐레이션’은 이러한 발견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져 있던 프로젝트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고,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맥락을 따라가며 건축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하려 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작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축, 파빌리온

파빌리온은 박람회와 전시를 위해 만들어지던 임시 구조물에서 출발했다. 오늘날에는 예술과 결합한 하나의 독립적인 건축 형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를 지니지만, 구조와 재료, 공간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핵심적인 질문들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이 된다.
파빌리온의 수명은 반드시 일회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부는 해체 이후 다른 장소로 옮겨져 다시 설치되기도 한다. 임시성과 이동성을 바탕으로 파빌리온이 어떻게 변화하고 지속되는 지를 살펴보려 한다.
1. 자연과 사람 사이 ‘틈막 Teummak’
- 디자인: 원애프터 one-aftr
- 위치: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707번길 30, 소다미술관
- 설치 시기: 2025년 (현재 철거)
- 주요구조: 철골구조 Steel Frame
- 시공: 원애프터 one-aftr
- 사진가: 장미 Jang Mi

움막은 인간이 만든 가장 원초적인 집의 형태다. 벽 없이 지붕과 땅만으로 구성된 움막은 대지 내의 물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늘날의 건축은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설계되고 있으며, 도시는 점점 더 밀도 높고 단절된 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삭막한 도심 안에서 자연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는 ‘틈’이다.
‘틈막’은 움막의 원형적 개념을 바탕으로 도시 속에서 자연과 사람 사이의 틈에 머무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는 구조적 장치다.

틈막은 기존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과 지붕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구조는 최소한으로 제한되며 사용되는 재료는 목재, 금속, 메탈 메시, 아크릴 패널 등 주변의 물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들로 구성했다. 기능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재료 구성은 공간과 사용자 사이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자연의 흐름 속에 놓인 이 구조는 우연히 들리는 소리, 공기의 흐름, 주변 생명의 기척과 같은 요소들이 공간의 중요한 일부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틈막은 공간을 정의하기보다 그 자리에 어떻게 머물 수 있을 지를 조용히 제안한다.
>> ‘틈막’ 원문 읽으러 가기


2. 하얀 날개가 펼쳐지는 ‘산본 파빌리온 Sanbon Pavilion’
- 디자인: 드로잉웍스
- 위치: 경기도 군포시 금산로 47
- 설치 기간: 2022년 ~ 현재
- 주요구조: 철골구조 Steel Frame
- 시공: 공정도가 GJDG
- 사진가: 윤준환 Yoon, Joonhwan


이 프로젝트는 아파트 단지의 문주(주출입 게이트) 제작으로 시작됐다. 단지는 6차선 도로에 인접해 있지만, 배치상 대로에 주출입구를 내지 못하고 마을 길을 돌아 들어가야 했다. 여러 차례 아파트 입주민 대표단과 미팅을 하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상징성을 담아내는 동시에, 주변의 마을 경관을 고려하면서도 다중이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했다. 모서리 땅의 소유주는 아파트 입주민이지만, 이웃하는 마을 주민에게도 열린 공간이 되고 행인에게는 사적 소유물로 비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주요 파사드는 북동 측 도로변에 있어 오전에만 빛과 그림자가 내부 마당으로 들어온다. 표면에 깊이를 더하기 위하여 제작된 곡면의 루버는 빛에 따라 음영이 달라지고, 풍성하게 자라난 소나무의 그림자들이 담기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풍경은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한다. 내부 마당에서는 구조물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며 그늘을 편안하게 감싸 안고 내려오는 빛을 감상할 수 있다.
거주, 소비, 여가를 위해 빈틈없이 채워지고 규정되는 도시공간에서 아파트 모퉁이의 유휴지에 무목적으로 세워진 파빌리온은 사람들의 숨통을 틔우는 여백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 ‘산본 파빌리온’ 원문 읽으러 가기


3. 세운광장 위 등장한 ‘파빌리온 오솔 Pavilion OSOL’
- 건축 설계: 박태원
- 주최/주관: 팀서화
- 위치: 세운광장 (서울 종로구 장사동 2-1)
- 설치 기간: 2025년 10월 10일 ~ 11월 9일 (*현재 철거)
- 시공/감리: 김태균


‘파빌리온 오솔’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억을 간직한 세운상가와 조선왕조 500년의 시간을 품은 종묘 사이에 위치한다. 공존하면서도 단절된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위치에 설치된 이 건축물은 긴 통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과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내부는 수직 경량목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반대편 파사드는 반원·삼각형·사각형의 포켓 공간을 통해 빛의 기하학적 순간을 드러낸다. 이번 프로젝트는 도시의 감정과 빛의 물성을 구조적으로 직조하는 작업을 통해 세운 종묘 축선의 상징성을 건축적으로 풀어냈다.


사운드 아티스트 윌 볼튼은 세운상가와 종묘 일대의 현장음을 직접 채집해, 새소리·기계음·신디사이저의 저음을 교차시킨 8채널 공간 사운드 설치작품 ‘Courtyards and Arcades’로 완성했다.
팀서화는 “도시의 시간과 감정이 교차하는 축 위에서 예술과 건축이 서로의 언어로 대화하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며, “세운상가와 종묘 사이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건축과 사운드가 매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 예술을 선보인다”라고 전했다.
>> ‘파빌리온 오솔’ 원문 읽으러 가기

4. 빛을 머금은 구조, 제주의 감각을 감각을 짓다 ‘빛 파빌리온 (Light Pavilion)’
- 디자인: 드로잉웍스
-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이동 2341-1 *유동룡미술관에서 2026년 2월 이전, 위 주소로 이전됨
- 설치 시기: 2025년 ~ 현재
- 주요구조: 목조구조 Wood Frame
- 시공: 공정도가 (이은혁)
- 사진가: 윤준환 Yoon, Joonhwan


‘빛 파빌리온Light Pavilion’은 유동룡미술관의 주진입로 초입에 놓여 있었다. 관람자는 전시를 보기 전에 먼저 이 덩어리와 마주한다. 정제된 미술관 건축과 대비되는 이 구조는 비스듬히 기울어 서 있다. 전시 동선 중 ‘먹의 공간’에서는 측면이 드러나 또 하나의 시선 대상이 된다. 외부에서는 오브제로 작동하고 내부에서는 감각을 유도하는 장치로 전환된다.
이 작업은 이타미 준이 제주에서 구축한 건축 언어를 해체하고 다시 엮는다. 그가 다뤘던 수, 풍, 석의 개념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요소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빛 자체를 다룬다. 전나무 통목은 반복되는 구조로서 ‘석’의 물성을 환기한다. 틈을 따라 흐르는 빛은 ‘수’의 투과성과 움직임을 암시한다.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풍’의 감각을 불러온다. 닫힌 구조지만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며 살아 움직인다. 이는 그가 말한 ‘살아 있는 건축’에 대한 절제된 응답이다.


제주의 빛은 일정하지 않다. 바람과 구름, 비와 안개 사이를 통과하며 순간마다 다른 표정을 만든다. ‘빛 파빌리온’은 이 변화하는 빛을 건축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다. 자연을 형태로 재현하기보다 감각을 구조 안에 스며들게 한다.
목재 사이 12mm의 틈은 단순한 이음이 아니다. 빛과 바람이 스며드는 필터다. 거친 결과 그을린 표면, 스며드는 빛이 만나 제주의 바람과 습도, 냄새와 시간을 압축한다. 관람자는 자연의 형상을 직접 인식하지 않는다. 대신 빛의 떨림과 목재의 숨결을 통해 외부가 내부로 스며드는 과정을 체감한다.
전나무는 강한 햇빛과 습기, 빠르게 변하는 기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가공된 표면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결과 향을 지닌 재료다. 통목을 겹쳐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들게 한다. 관람자는 이 작은 구조 안에서 제주의 바람과 냄새, 밝기와 시간의 흐름을 응축된 감각으로 경험한다.
>> ‘빛 파빌리온’ 원문 읽으러 가기

5. 전통 건축과 다도가 만난 ‘차시츠&포터리 파빌리온 Chashitsu & Pottery Pavilion’
- 디자인: 토브 스튜디오
- 위치: 베트남, 호치민
- 설치 시기: 2025년
- 사진가: Trieu Chien


‘차시츠 & 포터리 파빌리온Chashitsu & Pottery Pavilion’은 고대 베트남 도자기 전시와 일본 다도茶道 문화 체험을 위해 조성되었다. 베트남 소수민족인 에데족의 전통 롱하우스(장가옥)에서 영감받아 설계되었다. 롱하우스의 중심에는 ‘끄판 벤치라 불리는 신성한 가구가 자리한다. 이 상징은 파빌리온 내부의 ‘복도형 통로’로 재해석되어, 단순한 이동 동선을 넘어 머무르고 차를 즐기는 체험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실내 디자인은 산업용 목재 패널을 검은색 마감 처리로 간결하게 마감하였다. 상부와 하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틈은 700년 이상의 도자 제작 역사를 지닌 푸랑 마을의 가마 이미지를 모티프로 삼았다. 통로 천장 아래에는 점토가 완성된 도자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일련의 이미지가 매달려 있다.


이 파빌리온은 ‘전통 수공예 마을의 소멸에 무관심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전시와 다도 체험이라는 형식을 빌려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현대 관객에게 다시 연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도자기와 깊이 연결된 문화 행위로서, 일본과 베트남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해 온 ‘차茶’라는 매개를 통한 문화적 대화의 장을 다시 여는 것이다.
>> ‘차시츠&포터리 파빌리온’ 원문 읽으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