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늪을 건너 물성의 건축으로, 위진복이 그리는 공공 주차장

[사사로운 공공건축] ⑤ UIA의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에디터. 김태진  자료. UIA

 

[사사로운 공공건축]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나름의 다름을 추구한 공공건축물을 소개합니다. 공익과 합리라는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낭만과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건축가들. 이로써 전에 없던 공공건축물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이야기. ‘공공건축’과 ‘좋은 건축’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엿보는 일은 우리를 더 깊은 공간 경험,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흔한 도서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변화 – 푸하하하프렌즈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② ‘유스Youth’를 위한 복합문화공간 – 신아키텍츠가 말하는 ‘펀그라운드 진접’
③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퀴 놀이터 – SOAP의 ‘여의롤장’
④ 잘 지을 수 없는 구조에서, 잘 지으려는 노력까지 – 구보건축의 ‘연의생태학습관’
⑤ 관념의 늪을 건너 물성의 건축으로, 위진복이 그리는 공공 주차장화 – UIA의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⑥ 건축 이어달리기 – 임영배, 김광수&김아영, 임태희의 ‘광주시민회관’


 

©BRIQUE Magazine

 

1925년, 러시아 건축가 콘스탄틴 멜니코프Konstantin Melnikov는 파리 센 강 위에 1,000대의 차량이 건물을 ‘관통’하는 파격적인 주차장을 제안했다. 도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이 급진적인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한 채 ‘종이 건축(Paper Architecture)’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100년 후, 그의 아이디어는 신도시 동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UIA 건축사사무소의 위진복 소장은 멜니코프가 차량을 관통시키고자 했던 그 구상 속에 사람과 자연의 소통을 채워 넣었다. 멜니코프의 비전이 도시의 효율을 증대하려 했다면, 동탄호수공원 주차장은 보행의 리듬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조명한다.

동탄호수공원 주차장은 화성시의 전략적인 기획과 지원 아래 안착한 공공 프로젝트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행정이 디자이너의 권한을 지켜준 결과, 거대한 아치형 철골 구조의 주차장을 세울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주차장이라는 본래의 기능과 공원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중첩적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지형의 단차를 이용한 스탠드는 시민들을 위한 야외 공연장으로 변모한다. 유모차를 끄는 양육자들은 지름길 대신 지그재그 경사로를 택해 느릿하게 풍경을 즐긴다. 이 풍경은 디자인이 도시의 인프라를 넘어 시민의 일상을 닦아줄 수 있는 장치임을 보여준다.

관념적 수사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물성’과 ‘구조’라는 정공법으로 주차장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위진복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00년 전, 차량의 ‘관통’을 꿈꿨던 멜니코프의 급진적인 제안. 파리 센강 위에 떠 있는 이 주차장은 당시 기술적 한계로 실현되지 못한 채 ‘종이 건축’으로 남았다. ©Konstantin Melnikov

 

똑똑한 구조는 자연의 흐름을 타고

 

국내에서 실무를 경험한 후 서른 무렵 떠난 AA에서의 시간이 소장님의 건축 인생을 바꿨면서요. 그곳에서 마주한 ‘디자인’은 무엇이었나요?

AA(The Architectural Association, 영국건축협회 건축학교)는 제 건축 인생의 완벽한 전환점이었어요. 국내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크리에이터로서 무언가 더 기획하고, 그것을 실체로 구축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거든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갈증을 안고 영국으로 떠났죠. AA에서 ‘디자인이 이런 거구나’라는 본질을 깨달았죠. 건축도 디자인의 일부잖아요.

우리나라 건축 교육은 다분히 관념적인 면이 있어요. 땅의 조건이나 실제 재료보다는 ‘집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처럼 추상적인 수사에서 출발하곤 하니까요. 반면 AA는 철저히 물성(Materiality)에서 시작해요. 비닐이나 벽돌, 콘크리트를 어떻게 다루고 타설할지, 유리를 통해 빛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같은 실체적인 고민이 곧 디자인이었거든요.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이해하고 그것을 구조와 엔지니어링이라는 논리로 단단하게 엮어내는 과정이더라고요. 재료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한 결과물들이 모여 비로소 도시가 구축되는 과정을 배웠어요.

 

위진복 UIA 대표 ©BRIQUE Magazine

 

그 ‘물성적 사고’가 이번 동탄 프로젝트의 아치Arch 구조로 이어진 건가요?

저는 구조가 없으면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에게 휴머니티가 없으면 인간이 아닌 것처럼 건축 역시 구조적인 해결이 기본이 되어야 하죠. 그래서 제 설계에는 늘 명확한 구조적 솔루션을 두려고 해요.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외벽의 패턴들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모양을 낸 게 아니라 쌓았을 때 하중을 정직하게 버텨낼 수 있는 재료(Material)의 논리를 담은 것이거든요.

처음 대지를 마주했을 때 제게 든 의문은 하나였어요. ‘시야를 가릴 만큼 거대한 주차장을 짓는 게 맞는가’였어요. 호수가 아름다운 곳인데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상자가 사이를 가로막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이 건물을 무조건 뚫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해법으로 아치 구조를 떠올렸어요.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정광량 사장님(CNP동양) 같은 구조 엔지니어와 긴밀하게 협업했어요. 1925년 멜니코프가 자동차의 관통을 위해 주차장을 위로 띄웠다면, 저희는 그 대상을 ‘사람’으로 바꾼 거예요. 호수로 향하는 보행의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한 맥락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거대한 아치를 세워 건물을 브릿지처럼 들어 올린 거죠.

 

동탄호수공원 주차장은 사람과 차량의 하중을 오직 아치만으로 지탱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시공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치를 세우면 위에서 누르는 무게 때문에 아치 다리가 양옆으로 벌어지려는 힘이 발생해요. 이를 추력(Thrust)이라고 하는 데 그 힘이 정말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서 이 힘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고정 작업에 공을 들였어요.

구스타프 에펠이 에펠탑을 지을 때 지하수의 부력과 아치의 추력을 동시에 제어하며 사투를 벌였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결국 건축은 중력, 지진, 바람 같은 거대한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거든요. 이 건물은 아치 외에는 구조를 지탱할 다른 요소가 없어요. 구조가 곧 마감인 건물이라 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정직한 구조체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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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을 이용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처럼 힘이 흐르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 구조화하는 게 중요해요. 자연의 힘에 오직 인간의 힘으로만 맞서려고 하면 건물은 끝도 없이 무거워지는데, 전 그걸 ‘똑똑하지 않은 건물’이라고 불러요.

인간의 손가락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현명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나요? 이 유연함이 자연의 힘을 다루는 핵심 같아요. 지진이나 바람을 이겨내겠다고 물량을 쏟아부어 둔탁하게 짓는 건 자연에 역행하는 일이죠. 반대로 자연의 논리를 이해하고 흐름을 타면 훨씬 다이내믹하면서도 가벼운 구조를 만들 수 있어요. 똑똑한 구조는 힘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니까요.

 

평일 늦은 오후, 동탄호수공원 주차장의 지그재그 램프를 따라 공원으로 진입하는 주민들. 이곳에서 주차장은 차를 위한 창고가 아닌, 사람을 위한 입체적인 산책로가 된다. ©BRIQUE Magazine
“나무 패널을 좀 깔았어야 했는데….” 위진복 소장은 설계 당시 반영하지 못한 소재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그는 이곳에 언젠가 나무의 온기가 더해져 시민들의 보행감이 한층 따뜻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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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 경사로를 따라 느릿하게 내려가는 유모차 행렬은 동탄호수공원 주차장에서 마주한 아주 인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동탄은 아이가 많은 도시예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풍경 중 하나가 유모차였어요. 물론 편의를 위해 공원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끊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갈지자(之)’ 형태의 램프Ramp가 생겨난 것이죠.

계단과 램프는 걷는 경험 자체가 달라요. 계단은 발밑을 계속 확인하며 긴장하고 걸어야 하지만 램프는 시선을 호수에 둔 채 편안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죠. 긴장 없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 길은 시민들에게 심리적 여유를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그재그 경사로를 따라 호수로 향하는 유모차들의 느릿한 행렬. 설계 단계부터 위진복 소장이 상상했던 풍경이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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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박스를 보며 “상추를 심어볼까”라며 농담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정겹더군요. 건물과 식물의 공존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갖고 계신가요?

참 재미있는 풍경이네요. 사실 예산 문제로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플랜트 박스 규모를 절반 정도로 줄여야 했던 게 못내 아쉬웠거든요.

건물이라는 인공적인 환경으로 들어온 식물은 결국 사람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존재가 되잖아요. 자연환경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됐으니까요. 그래서 수종 선택부터 자동 관수시스템, 겨울철 관리까지 신경 쓸 게 정말 많죠. 지금도 파이프라인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깔려 있긴 하지만 제 욕심 같아서는 건물 전체가 공원 속에 툭 던져진 것처럼 보일 만큼 식물이 아주 풍성해졌으면 좋겠어요.

결국 건축이 자연을 완벽히 차단하는 ‘셀프존Self-zone’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물질인데 요즘 건축은 흙을 거부하고 기계 환기에만 의존하잖아요. 건축가마다 자연을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일지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야 우리의 환경도 더 풍요로운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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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건축의 동반자들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프로젝트의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성시와 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런 결과물은 발주처인 화성시의 영리한 기획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설계 공모 단계부터 ‘전담건축가(MA)’ 제도를 도입해 건축가의 의도를 끝까지 지탱해 주었거든요. 심의 과정에서도 오히려 제게 디자인 권한을 당당히 지키라고 독려할 만큼 행정의 신뢰가 두터웠어요.

실제로 예산 문제로 벽면 녹화를 포기할 뻔했을 때 시에서 추가 예산을 따로 마련해주며 원안 구현을 끝까지 도와주기도 했어요. 덕분에 어떤 외부 압박도 없이 오직 좋은 설계를 만드는 데만 몰입할 수 있었죠.

저는 이 프로젝트에 큰 애착을 느껴요. 지난해부터 꾸준히 수상을 노크했던 이유도 저 자신보다 함께 고생한 담당 공무원들께 자부심이라는 보상을 드리고 싶었어요. 행정이 건축가의 디자인을 믿어준 결과가 옳았음을 상을 통해 증명하고 싶어요.

 

많은 공모전 당선작들이 실제 완공 후에는 초기 디자인 방향을 잃고 평범해지거나, 관리가 부실해 방치되곤 합니다. 계획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건축가의 역할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할까요?

제가 사랑하는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는 “건축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라고 강조했어요. 저 역시 ‘디자인한다’는 행위는 건물을 완공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까지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디자인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할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역과 환경에 어떤 역할을 하고 공헌하는지 고민하며 마침표를 찍어야 하죠. 제가 기대했던 만큼 사용자들이 그 공간을 잘 누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수적이고요.

어찌 보면 신흥시장의 ‘CLOUD’*프로젝트도 디자이너로서 책임감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디자인을 완수한다는 관점에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결국 끝까지 해냈죠.

 

*편집자 주: 2024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안겨준 신흥시장 프로젝트. 설계안 변경과 각종 민원 등 치열했던 사투 끝에 완공할 수 있었다. 위 소장은 수상소감에서 “다시는 시장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는 웃음 섞인 선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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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도 그렇고 공공 프로젝트에서 자주 뵙게 됩니다. 특별히 공공 분야에 집중하시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도 루이뷔통 같은 멋진 상업 건축물도 하고 싶어요(웃음). 다만 이쪽에 기회가 열려 있었을 뿐이죠. 그런데 사실 모든 건축은 근본적으로 공공을 면하고 있어요. 건축가에게는 클라이언트가 두 명이라고 하잖아요. 하나는 돈을 주는 사람, 또 하나는 건축물 앞을 지나가는 보행자죠.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이 두 클라이언트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해요.

 

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과 현장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관철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 같습니다. 현실적인 제약과 타협의 유혹 앞에서도 설계를 밀어붙이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공적인 사명감도 있지만 사실은 이 과정 자체가 저에겐 참 재미있어요. 복잡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데서 오는 일종의 ‘쾌감’이 있거든요. 신흥시장 때도 그랬죠. 나중엔 공무원들도 “이걸 진짜로 해내셨네요”라며 놀라시더라고요.

물론 저라고 왜 힘들지 않았겠어요. 입버릇처럼 “안 하겠다”라고 말한 적도 많고, 제 마음에 차지 않거나 구조적으로 타이트해서 결과물이 걱정될 때는 “차라리 안 짓겠다”라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죠.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건축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제 마음에 안 드는 작업을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결국 부딪힌 문제에 직면하고 그걸 끝까지 파고들어 답을 찾아내는 그 해결의 재미가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해요.

 

5년의 사투 끝에 완성된 신흥시장 아케이드 ‘CLOUD’. 비를 막으면서도 채광과 환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옥상 위로 지붕을 들어 올린 뒤, 공기충전 방식의 ETFE 막구조를 적용했다. 관념이 아닌 기술로 재래시장의 환경을 혁신한 결과물이다. ©Dongha Kim

 

건축가의 권위는 무엇으로부터 나올까

 

동탄 주차장 사례를 보면, 건축가가 내놓은 정교한 솔루션이 결국 행정을 설득하고 도시의 풍경을 바꿨습니다. 건축가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힘, 즉 ‘권위(Authority)’는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적확한 디자인을 해냈을 때 비로소 건축가에게 권위, 즉 ‘어소리티(Authority)’가 생겨요. 하지만 국내 환경에서는 엔지니어링이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권위를 갖기가 무척 어려워요. 건물을 만드는 본질보다 땅의 위치나 자금 투자 같은 논리가 훨씬 크기 때문에 디자인이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기 힘든 구조예요.

 

현장에서 건축가의 권한은 제한적이고 책임만 막중한 것이 현실입니다. 시공사가 임의로 뽑히거나 감리 등에 건축가의 권한이 축소되어 있죠. 소장님이 보시기에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여전히 ‘관념’에 빠져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요즘 건축 수업에서는 공유 주거를 관계 회복을 위한 ‘착한 건축’이나 사회 운동으로만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공유 주거는 공유 오피스와 마찬가지로 임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인 경우가 많아요.

공유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비즈니스의 작동 원리가 감성적인 수사 뒤로 숨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죠. 공유 주거가 ‘착하다’라는 관념에 갇히는 순간, 독점 주거는 어떻게 될까요.

제게는 AI가 그런 관념적 프레임을 깨준 선물 같은 존재예요. 데이터와 실체를 직시하게 하니까요. 저는 누군가에게 설교하는 사회 운동가가 아니라 건축가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행복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어요.

 

©BRIQUE Magazine 

 

‘사회적 운동’으로서의 건축이 아닌, ‘기술적 해결’로서의 공공성을 강조하시는군요.

건축가의 공공성은 텍토닉Tectonic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확장될 때 발생해요. 관념에만 빠지면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정치나 후원, 혹은 계몽주의적인 사회 운동에 머무르게 돼요. 건축가의 본업은 수술을 잘해서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처럼 당면한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일이에요.

제 졸업 설계였던 에콰도르 빈민촌 프로젝트가 그 지점을 명확히 보여줬어요. 그곳에서 필요한 건 ‘함께 잘 살자’라는 구호가 아니라 산사태를 물리적으로 막아줄 옹벽 시스템을 설계했어요. 건축가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기반(Infrastructure)을 설계해 주면, 주민들은 그 위에서 자신의 방식대로(DIY) 집을 지으며 삶을 일궈 나갈 수 있거든요.

건축가가 사람과 자연 사이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한 거죠. 자연에 개입은 최소화하면서도 거주자의 편의성과 안전은 극대화하는 것이죠. 

 

주차장에서 내려다 본 동탄호수공원 ©BRIQUE Magazine

 

말씀하신 대로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건축’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오히려 건축의 본질을 가리는 위험한 족쇄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많은 이들이 ‘연결하는 것은 착하고, 막는 것은 나쁘다’라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관념에 매몰되어 있어요. 하지만 건축적 판단은 도덕이 아니라 상황에 근거해야 해요. 실체적인 구조와 구현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에 기반해야 하죠. 상황에 따라 연결이 필요할 때도, 확실한 차단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관념에만 머물면 실질적인 해결책 하나 내놓지 못한 채 공허한 사회 운동 수준에서 멈춰버리고 말 테니까요.

건축은 결국 전문가의 비즈니스입니다. 비즈니스로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때 그 전문성도 비로소 증명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거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은 복지의 영역이지 건축가의 영역이 아니죠. 하지만 기술을 이용해 그들의 거점과 환경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공간적 배려’를 기술적으로 구현해 낸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전문가의 비즈니스가 될 수 있죠.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관념적인 관심에만 머문다면 건축가는 결국 전문가로서의 정당한 권위를 찾을 수 없어요. 건축이 도시 환경의 변화를 견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디자인은 엔지니어링이고, 엔지니어링이 곧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겨요. 그 변화된 세상이 다시 인간을 디자인하는 선순환이라 믿습니다. 

 

©BRIQUE Magazine

 


프로젝트.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대로5길 12

준공연도.
2025

대지면적.
3,510.90

건축면적.
2,806.36

연면적.
14,307.62

설계.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UIA

구조.
CNP동양

시공.
신동아건설

조경.
한설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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