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조희진 글 & 자료. 비유에스아키텍츠
대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상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운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아주 가파른 경사의 도로, 그리고 땅을 평탄화하기 위해 조성된 위압적인 보강토옹벽들. 완벽하게 구비된 기반 시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태롭게 조성된 토목공사의 결과물은 이 지역을 척박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도 대지에서 바라보는 먼 곳의 풍경은 주위의 상황을 잊게 할 정도로 근사했다.
설계의 주안점은 이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었고, 건축물 내부에서 주변의 보강토옹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 척박한 풍경을 잊을 수 있도록 먼 전망을 몰입하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거실과 다이닝룸 앞에 배치된 처마이자 회랑인 공간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했다.
마당은 외부의 풍경을 흡수하는 공간이다. 옹벽이 보이는 주도로면이 아닌, 먼 전망이 보이는 곳에 좁고 긴 마당을 배치했다. 그리고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비와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처마를 계획했다. 원래 처마란 깊이가 깊어질수록 존재의 의미가 더 뚜렷해진다. 사람이 처마 밑의 공간을 이용하며 머무를 수 있도록 깊고 두꺼워져 덕분에 기둥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기둥은 깊은 처마를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물 내부에 어떤 의도를 만들어 준다. 전망을 바라보는 것이 더 깊은 풍경으로 보이도록 기둥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비율이 됐다. 처마 아래 기둥의 의도가 반영되면서 처마는 회랑이 됐다. 회랑 중간에 생긴 동그란 구멍은 환경의 변화를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엄숙해 보일 수 있는 회랑에 작은 변화를 준 것이다. 낮게 파인 거실에 앉으면 비와 햇빛, 눈, 그리고 바람에 날려온 낙엽 등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
건축물의 겉모습은 옹벽의 풍경이 드리우는 척박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해준다. 마당은 총 6미터의 두 단으로 조성된 옹벽을 접하고 있는데, 1층 높이의 회랑과 거실이 마중 나와 옹벽의 위압감을 완화해 준다. 주도로에서 보이는 건축물의 외관은 최소한의 개구부 계획과 단정한 재료의 조합으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테라코트로 마감한 슬래브를 전벽돌이 지지하며, 슬래브와 벽 사이의 개구부는 불에 그을린 적삼목인 방재로 연결했다. 적삼목인 방재는 이 검은 집에 쓰인 재료 중 가장 어두운 재료이다. 무게감이 보이는 벽돌로 이루어진 벽과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테라코트 슬래브를 사이좋게 만들어 주는 열정적인 중재자의 역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