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비유에스아키텍츠 B.U.S Architecture
양옥이 있던 자리
‘빗살무늬의 집’은 망원동의 주택가에 위치한다. 처음 땅을 방문했을 때 단정한 모습의 양옥이 자리 잡고 있었고 마당에는 집의 역사와 함께해온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오래된 집의 모습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평범함 속에 집을 잘 관리해온 정성이 곳곳에 느껴져서 신축보다는 잘 고쳐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존 건축물의 지상 1층이 지하층으로 등록되어 법적인 증축과 수선이 어려웠다. 이에 건축의 방향은 신축으로 전환됐다.
망리단길 뒷골목
집의 주변을 둘러보면 유사한 규모의 단독주택들이 서로 이웃하고, 그 너머로는 4~5층 규모의 다가구주택, 또 그 너머로는 그보다 높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밀도 있게 들어서 있다. 그리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망리단길’과 망원동의 번화한 거리로 이어진다. 서울의 일반주거지역들이 그러하듯 작게 지어진 오래된 집들과 법정 최대치로 지어진 신축 빌라들이 서로 혼재하여 어느 것이 이 동네의 분위기라고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남은 옛 집들도 곧 4, 5층의 빌라형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어 갈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여백을 품은 집
건축주 부부는 집을 최대한으로 짓기보다 조금 손해가 생기더라도 집 곳곳에 여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기존의 마당과 감나무를 최대한 살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설계를 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내적으로는 편안함을 주고 외적으로는 번잡한 동네 분위기 속에서 따뜻하고 섬세한 질감을 드러내길 바랐다. 설계를 하는 동안 남편이 취미로 하는 도예 작업물과 아내가 미팅마다 그려오던 수채화가 집의 질감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고 벽돌을 사용하되 그 벽돌의 결이 빛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외벽을 그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생활에 따른 구성
집은 크게 1층의 부부 공용 공간, 2층 남편의 공간 그리고 3층 아내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식당과 거실 그리고 작은 게스트룸이 있고, 2층에는 남편의 방과 취미실이 있다. 3층은 아내의 작업실과 침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연결하는 외부 중정으로 이루어진다. 노년을 앞둔 건축주 부부가 앞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를 반영했다. 두 사람은 부부이기 이전에 하나의 개인으로서 매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며 여기서 생기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할 목적으로 집을 지었다. 따라서 수평적 분리보다 수직적 공간 구분은 무척 적절하고 흥미로운 요구사항이었다. 2층과 3층은 공간 분위기와 질감 또한 뚜렷하게 다르다. 2층 남편의 취미실은 음악 감상과 도예 작업을 위해 음향학적 스피커 배치를 고려하며 서구적이고 모던하게 완성된 반면 3층 아내의 작업 공간은 한지와 중정, 그리고 툇마루가 형성된 한국적 공간 구성을 따른다. 특히 3층은 아내의 사용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수정하며 사용하도록 고정된 조명을 설치하지 않고 원하는 위치로 옮길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빗살무늬를 드러내는 벽돌
외벽에는 벽돌이 사용됐다. 오랜 동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로서 망원동 주변에서도 벽돌 건물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벽돌을 사용함으로써 새 건물이 동네의 기존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바랐고,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다른 쌓기 방식에 따라 새롭고 신선한 모습을 연출하고자 했다. 기다란 살구색 벽돌은 가로 세로로 쌓이며 이 집 고유의 질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3층의 숨은 중정에서는 벽돌의 밀도를 조정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외부 환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했다. 남향의 빛을 받아 드러난 벽돌은 빗살무늬를 은은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