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지 않는 만족

[The True MZ's House] ③ 마포구 성산동 박우진
에디터. 현자연 인턴  사진. 윤현기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크고 멋진 집, 경제적 관점으로만 다뤄지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와닿을까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상적인 집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보고자 저만의 방식으로 살 곳을 마련한 20~30대를 만나 집에 관한 생각을 듣습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MZ세대의 실제 생활 공간은 어떠한지, 이들이 꿈꾸는 삶과 집은 어떤 모양인지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은 집을 살펴보는 것일 테다. 경제적 여건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집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집, 미래에 꿈꾸는 집은 저마다 다르다. 우리는 얼마나 비슷하고도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95년생 에디터이자 마케터인 박우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를 결심했다. 평생을 대구에서 자라 대구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현재 그가 사는 곳은 마포구다. 마포구청역 근처에 빽빽하게 들어선 주상복합 오피스텔 건물들, 같은 창문이 나란한 벽들 사이에 그의 집이 있다. 

동선이라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하나밖에 없는 공간. 그곳에 선반을 두고 침실과 책상 공간으로 나눈 것도, 초록색 가구를 나무 무늬 시트지로 마감한 것도 현재에 충실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작은 집이 비좁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짐이 적은데도 선물 받은 물건들은 보이는 곳에 잘 정돈해 두고 언제 누구에게서 받았는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지 일일이 설명해 주는 모습에서 특유의 다정함이 묻어났다. 구석구석 그를 닮은 집을 보니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 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Hyeonki Yoon
취미는 러닝이다. 집 주변에 한강과 큰 공원이 있어 언제든지 뛸 수 있다.  ©Hyeonki Yoon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여행 OTA 플랫폼에서 에디터이자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박우진입니다. 이전에는 건축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공간 기획사에서 공간 기획부터 브랜딩까지 총괄하는 콘텐츠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취업을 계기로 서울에 올라와 이제 2년차가 된 사회초년생입니다. 

 

2년 동안 직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네요. 

단순하게 회사의 이름값은 많이 올렸다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어요. 연차도 낮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입장이니까요. 아직 갈 길도 멀고 능숙하게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업무 능력이 단계적으로 성장했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운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어떤 목표를 갖고 일하고 있나요? 

제 최종 목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정리해 편집할 줄 알고, 브랜드까지 기획할 줄 아는 사람이요. ‘이거 하나는 배울 수 있겠다’ 는 마음으로 회사를 선택해 왔어요. 건축 잡지사에서는 글쓰기를 배웠고, 공간 기획사에서는 공간과 브랜딩에 대해 배웠어요. 데이터를 보는 눈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 다니는 여행 OTA 플랫폼에서 입사했습니다.

 

©Hyeonki Yoon

 

업무를 바꾸며 성장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꿈을 구체적으로 꾸는 거예요. 제 목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말씀드렸는데, 과거에 동네 기반의 사업을 하고 싶어서 친구와 창업 준비를 했었어요. 마침 친구가 목공을 할 수 있어서 나무와 CNC 기계를 이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네모난 나무 하나를 지속가능하게 수선하는 것이었어요. 결국 자본 문제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치열하게 준비했습니다. 지금도 동네 주민들이 언제든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고집이 있어요. 그런 문화를 도시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하고는 합니다. 

 

지금 우진 님은 ‘잘’ 살고 있나요? 이상적인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요?

©Hyeonki Yoon

 

©Hyeonki Yoon

 

공릉에 살다 마포구로 왔죠. 처음 서울에 자리 잡을 땐 어땠나요?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요, 학부생 때부터 그래픽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 결정하고 편집하는 걸 더 중요히 여겼어요. 졸업작품으로 텍스트로 꽉 찬 인터뷰집을 만들었죠. 다양한 걸 경험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니 서울 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더라고요. 공릉에 집을 구한 건 약간 충동적인 선택이었는데요. 고등학교 친구가 공릉에 살아서 놀러 갔다가 동네 분위기가 좋아 보여 다음 날 바로 부동산에 갔어요. 마침 소개받은 집도 월세가 저렴해서 바로 계약했습니다. 

 

공릉에서의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던 것 같은데, 어쩌다 마포구에 집을 구하게 됐나요?  

사실 이 집은 아버지 소유예요. 저희 집이 부자인 건 아니고요. (웃음) 2016년에 근처 오피스텔에서 누나가 1년 정도 살았거든요. 대학생이 타지에서 커피를 배운다니 부모님이 이 동네를 와 봤었죠. 그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어머니가 당시에 지어지고 있던 오피스텔 방 하나를 덜컥 계약했어요. 당시 저는 의아하게 여겼는데, 지금 보면 미래를 내다보고 어머니가 선물을 남기신 것 같아요. 그때부터 세입자를 받다 제가 들어오게 된 거예요. 매달 월세를 내기가 부담스러워 은행 대출금을 제가 상환하는 조건으로 집을 옮겼어요. 근데 변동금리라서 원금과 이자를 합하면 요즘엔 주변 월세보다도 더 많이 나오더라고요.

 

선반을 두어 책상과 침대 공간을 분리했다. ©Hyeonki Yoon
소중한 물건을 모아둔 선반 ©Hyeonki Yoon

 

살아본 두 집과 동네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공릉은 사람 사는 냄새 나는 동네였어요. 주변에 공원도 있고, 겹겹이 놓인 집들이 만드는 레이아웃도 마음에 들었어요. 학생도 있고 가족도 있어서 정겹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어요. 동네 산책이 취미라서 따뜻한 동네 전경이 큰 위로가 됐죠. 동네 주민끼리 대화도 많이 하고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니까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반면 마포구는 뭐랄까, 다들 바빠요. 일할 시간이 되면 빠져나갔다가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죠. 그래도 근처에 한강이랑 큰 공원이 있어서 뛰기 좋다는 장점은 있어요.

 

왜 이 집을 도피처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똑같은 문 안에 같은 공간, 같은 위치에 난 창문들··· 기계 속 부품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일하기 위해 사는 집.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출근 준비하고 퇴근 후, 주말 정도죠. 주중에는 퇴근 후 저녁 해 먹고 정리한 다음 한바탕 뛰고 오면 하루가 끝나요. 주말엔 대부분 밖에 있고요. 그나마 집에 있을 때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영상을 봅니다. 적막한 게 싫어서 항상 노래나 영상을  틀어 놓는 편이에요.

 

블라인드 살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Hyeonki Yoon

 

그래도 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 이곳에서 행복한 순간도 있었을 테죠.

아침에 비스듬하게 빛이 드는 시간이 있어요. 눈을 뜨고 그 빛을 보고 있으면 나른하기도 하고 퍽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기분이랄까요. 빛을 완전히 막는 커튼이 아니라 틈이 있는 블라인드를 달아둔 이유예요. 창이 넓은 건 이 집의 장점이죠. 물론 앞에 사는 분이랑 마주칠 때가 있지만. (창밖을 가르키며) 보세요. 저 빼고 다 커튼을 달아 놓았죠? 

 

정말 그렇네요. (웃음) 이 집에서 특별히 아끼는 장소나 물건이 있다면요?

사실 집이 너무 작아서 장소라고 할만한 곳도 없는데요. 그나마 구역을 나눈다면 이 책상이죠. 이곳에서 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거든요.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영상을 보고, 친구들이 오면 다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요. 아끼는 물건은 선물 받은 모든 거예요. 올리브 나무, 이름 모를 식물, 모빌, 스누피 피규어, 각종 편지까지 모두 서울에서 만난 선물이죠. 단순히 물건이 좋다기보다 서울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요.

 

화장대에 있는 올리브 나무는 첫 직장에서 만난 첫 사수에게 받은 것으로, 2년째 잘 살아있다. ‘올리브야 핫세’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주었다고. 선반과 화장대는 모두 박우진이 직접 시트지로 마감한 것. ©Hyeonki Yoon

 

우진 님에게 분수에 맞는 집과 이상적인 집은 어떻게 다른가요? 

분수에 맞는 집은 일 하고 돌아와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면 만족이에요. ‘내가 정말 구차하게 살고 있진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정도요. 그래서 여기 들어올 때도 집은 키울 수 없지만 최대한 가구나 인테리어에 신경을 써서 살림을 꾸렸어요. 선반이나 틈새도 원래 초록색이었는데 제가 다 시트지로 마감한 거예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의 노력을 한 거죠. 욕심을 내 이상적인 집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와서 대화하고 모임할 수 있는 규모와 구조이면 좋겠어요. 마당이나 서재도 갖추고 있다면 좋겠네요. 사실 당장 이렇게까지 큰 집을 바라지는 않고요, 가까운 시일 내에 더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는 다이닝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꿈꿔요. 

 

서재에서는 뭘 하고 싶어요?

책에 파묻혀서 아무것도 안 해보고 싶어요. 가질 거 다 가졌는데 아무것도 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서재는 개인적으로 정말 부자들만 가질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재가 있다는 것은 제가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다는 것일 테고, 큰 고민 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겠죠. 심심하면 책 한 줄 읽어보는 저를 상상하곤 해요.  

 

직접 그린 미래에 살고 싶은 집 ©Woojin Park

 

집 주변 환경은 어땠으면 해요?

제일 중요한 건 공원이에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큰 공원이 있으면 좋겠고요. 또 제가 혼자 커피 마시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프랜차이즈 카페 말고 커피에 진지한 관념을 가진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가 집 근처에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 이야기한 집엔 언제쯤 갈 수 있을까요?

요즘 읽는 책 <서울이 아니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서 본 “살기 싫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할 것인가?”라는 문장이 떠올라요. 제가 크게 성공해서 대구에 브랜드를 차리지 않는 한, 살기 싫은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살고 싶은 대구에는 워낙 일자리가 없어서요. 제가 상상하는 것들이 워낙 구체적이다 보니까 10년은 족히 더 걸릴 것 같아요. 10년 안에만 가능하다면 엄청나게 큰 성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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