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
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브리크brique>가 그동안 기록해 온 1000여 곳의 공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공간을 지탱하고 있을까? 아카이브에 쌓인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꺼내 다시금 살펴보는 과정에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사진 속 공간은 티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웠지만 시간이 멈춘 듯했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은 지금까지 브리크가 기록했던 공간을 다시 찾아 안녕을 묻고, 기획자인 건축주와 실제 공간 사용자를 만나 시간의 켜가 쌓이면서 가져다준 지혜를 담고자 하는 기획이다. 공간에서 누적한 시간이 건축주 또는 사용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당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 발견하게 된 공간의 보물 같은 쓸모가 있었는지, 만약 다시 공간을 만든다면 줄이고 싶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등 솔직한 사용자 경험을 담아볼 예정이다.

이 기록이 각자가 사용하는, 나아가 미래에 꿈꾸는 공간을 조금 더 입체적이고 밀도 높게 바라보고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조금의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나와 닮은 상업 공간을 연출하는 일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손발이 맞는 공간 디자이너를 만나야 하고, 내가 구현하려는 업종에 맞는 설비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간과 사용자에게 제공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구분해내고, 그것을 디자이너에게 전달해 함께 접점을 찾아나갈 줄 알아야 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콤파일Compile’은 차분하고 정적인 황지원 대표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스무고개를 풀어내고서야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확신은 곧바로 부동산 계약이라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이후 스무 번에 가깝게 디자인 스튜디오와의 미팅을 해야 했고, 끝내 자신의 뜻을 읽어주는 ‘공간지훈 GGJH’을 만나 자신과 닮은 공간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간의 과정에서 그는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직접 만나 들어봤다. 

 

*공간지훈GGJH의 프로젝트, ‘콤파일Compile’ 살펴보기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행인들은 콤파일이 어떤 공간인지 한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의도된 것인데, 이러한 의도 덕분에 행인들은 공간의 호기심을 품게 된다. ©BRIQUE Magazine
카페 ‘콤파일’ 황지원 대표 ©BRIQUE Magazine

 

공간에 필요한 것은 단연 콘텐츠

 

어떤 과정을 거쳐 콤파일을 오픈하시게 되었나요?

음악을 전공했었어요.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솔로로 활동하는 보컬이었죠. 하지만 군대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는데, 쟁쟁한 실력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분명 음악을 시작했을 땐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다른 길을 고민했어요.

제가 가진 경험을 되돌아봤고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보컬 활동 시기에 병행했던 카페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로 다음 방향을 틀었죠. 전역한 뒤 곧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2개월 만에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프렌차이즈는 그로부터 6년간 운영했어요. 그 과정에서 노하우를 얻었지만 한계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저만의 공간을 그리게 했어요. 돌이켜보면 지금의 콤파일의 콘셉트를 구상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2022년 10월 매장 양도를 마치고 2개월 뒤,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부동산 계약을 마무리했습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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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구상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느껴져요.

제가 풀어지면 계속 풀어져 있는 성격이라 일을 벌여 놓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무모한 시도였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해보고 싶은 일도 많은 편이고, 음악을 전공하며 다양한 예술을 접했던지라 미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프렌차이즈가 편하기도 하고 배울 것이 많다지만, 아무래도 갖춰진 매뉴얼이 많아서인지 저만의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 갈증을 해소한 공간이 바로 콤파일이죠.

 

프렌차이즈와 개인 매장을 둘 다 경험해보셨는데, 둘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프렌차이즈와 개인 매장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 들 정도로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프렌차이즈는 매뉴얼이 전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제 능력이 부족해도 본사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첫 카페라면 프렌차이즈를 추천하는 편입니다. 본사로부터 상권분석 등 혼자서는 배우기 어려운 실무적인 조언도 받아볼 수 있죠.

반대로 개인 매장은 100% 저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만의 확고한 색깔과 구상이 필요해요. 무엇을 어필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합니다. 콘셉트에 따라 브랜드 정체성, 메뉴까지 함께 움직여야 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 훨씬 많아지죠.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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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콤파일은 어필하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이었나요?

콤파일은 사람이 이해하는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주는 과정을 뜻해요. 저희는 고객의 취향을 번역할 줄 알아야 하고 우리의 방식대로 추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스페셜티 커피 라인업이 많은 카페에 가면 바리스타가 나의 취향을 먼저 물어보고 그에 따라 원두를 추천하는 방식에 매료되어 있기도 했고요. 다시 말해 고객이 취향을 입력하시면 그에 맞춘 커피를 출력해드리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한번 다녀가면 그만인 공간보다 매일 찾아오고 싶은 ‘일상성’을 갖추고자 했어요. 공간지훈과 함께하면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져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콤파일이 주목받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확실히 공간에 담겨있는 실제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예쁘다고 해서 무작정 매일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손님이 한 번만 다녀가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방문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죠. 저희에게 그 콘텐츠는 단연 커피입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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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

 

디자이너와 바리스타,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다를텐데 소통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공간지훈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첫 대화에서부터 그들이 제가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공간과 사람이 어울려야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고, 꼭 저와 작업해보고 싶다는 어필이 강한 자신감으로 느껴졌어요.

사실 공간지훈과 계약하기 전, 열군데가 넘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미팅을 했었어요. 모두들 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는 했지만 마음이 맞는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맡겨만 주시면 잘 해보겠다’라는 다소 의욕에 앞선 어필도 많았고, 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작업 방향을 제시한 업체도 있었죠. 

 

여러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작업을 망설이게 된 이유를 자세히 들려주세요.

개인적으로 너무 소극적인 업체와 저의 의견에 지나치게 반감을 드러내는 업체는 조금 어렵더라고요. 부동산을 계약하고 업체들과의 미팅을 모두 이 공간에서 했었어요. 미팅하면서 공간별로 생각해둔 저의 구상을 이야기 드렸을 때,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케이스로 나타나더라고요. 저는 일할 때는 자기 주장이 확실한 사람과 일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공간지훈은 확실한 자기주장이 있어서 함께 일하기 좋았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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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파일의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레일입니다. 레일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레일은 원래 저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간지훈의 아이디어였어요. 제가 원했던 공간의 톤앤매너와 무드는 커피와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이었거든요. 이를 듣고는 공간지훈 측에서 레일을 제안해 주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레일 설치를 반대했습니다. 사람들이 커피보다 레일에 집중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음료를 손님 앞으로 가져다주는 레일 덕분에 진동벨 소음이나 손님을 호명하는 직원들의 목소리, 혹은 서빙하는 직원들의 발소리가 없어질 거라고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그 지점에 설득되어서 레일을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콤파일을 살펴보면 손님이 주문하고 자리에 앉거나 자리를 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란스러울 일이 없습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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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을 둘러싼 손님들의 반응이 다양했을 것 같아요.

손님들이 자리 앞으로 커피가 도착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에 담아가려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흥미로워하시는 것 같아요. 레일이 커피를 손님 앞으로 운반하는 모습이 저희가 최초이거나 유일한 곳은 아니지만, 워낙 개성 있는 요소이다 보니 만족감을 드린다고 생각해요. 다만 손님들이 다시 콤파일을 찾아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커피가 중요하죠.

종종 레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주문을 마치고 레일을 따라 자리 앞에 도착한 커피를 보고 놀라는 분들도 가끔 봐요. 그럴 땐 ‘레일을 보고 오신 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방문하신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오히려 좋더라고요. 
사실 손님들이 커피보다 레일에 더 시선을 뺏기는 일은 일어나긴 했어도, 지금의 콤파일이 있기까지 이 레일이 없었으면 이만큼 자리 잡는 게 가능했을까 싶어요.

 

기존의 커피의 서브 방식과 다른 레일 탓에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나요?

레일의 작동 방식은 손님의 좌석을 기억하고 있다가 상부 레일에 달린 조명을 따라 수동으로 멈추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초기에는 흘러가도록 두었는데 손님들이 촬영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발생했어요. 때때로 손님이 나가는 길에 다 드신 음료 잔을 레일 위에 올려두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만약 그 모습을 놓치고 레일을 조작했다가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죠. 그래서 작동 방식을 수동으로 변경했고, 새로운 팀원이 오면 레일 작동법 교육에 신경을 씁니다. 안전한 서브를 우선시하다 보니 아직 큰 사고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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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아닌 완성의 과정

 

완성된 공간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한동안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생기더라고요. 최근에는 평일과 주말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다 보니 자리가 부족해요. 좌석을 조금 더 늘렸으면 하는데, 이 부분은 공간지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좌석을 늘리자면 공간의 구조와 규모가 변할 테고, 그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도 많이 바뀔 거예요. 이 부분은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갈 수도 있고, 보수적인 변화를 가져갈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자리를 늘리되 공간의 콘셉트를 잃지 않을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가 다소 젊은 분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방문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한계가 있어요. 개인적인 욕심에서는 연령대가 조금 더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모두를 품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아쉬운 포인트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이 부분은 스페셜티 커피를 하시는 분들도 공감하실 텐데, 순수하게 커피를 즐기러 오신 분과 바리스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그리며 바bar 테이블을 세팅했는데, 결국 대기석처럼 되어버렸어요. 아무래도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보통 조용히 작업을 하러 오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장소에 곁들일 요소로 커피를 생각하시다 보니 바 테이블의 활용도가 변했어요. 그래도 가끔 업계 관련하신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도 활용 중이에요.

 

의도치 않게 대기석이 되어버린 바bar 자리. 현재는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러 온 관계자들을 응대할 수 있는 자리로 변모하였다. ©BRIQUE Magazine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간지훈과 일을 함께 한 사이 그 이상의 관계를 다져가고 계신 것 같아요.

공간지훈의 사무실이 연희동에 위치해있는데, 저도 자주 가는 동네이다 보니 두세 달에 한번씩 사무실에 방문해요. 꼭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두 세 시간은 금방 흐를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물론 친구처럼 막역한 관계는 아니지만 멋진 작업을 해주셨기 때문에 저로서는 연락을 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쪽에서도 콤파일 덕분에 작업이 늘었다고 해주시니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밖에 없더라고요. 주변에서 들어보면 작업 과정에서 많이 다툰다고 하던데 저는 운이 좋았나봐요.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있지만, 2호점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나요?

주변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오는 4월이면 1년차에 접어드는데 이 매장이 제가 바에 없어도 운영이 될 때 즈음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제 공간에 앉아 집중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 무언가 쾌감을 느껴요. 좋은 방문 후기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제 공간을 운영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로스터리가 아닌 손님들을 만날 수 있는 카페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콤파일처럼 자신의 색깔이 담긴 공간을 꿈꾸고 있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지역마다 그 매장에서 갖춰야 할 시스템이 달라져야 하더라고요. 그 동네의 특성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맞춰 시스템을 갖춰야 하죠. 즉 상권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안에 일상성은 무조건 녹아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손님들이 두 번 세 번 찾아오게 하고, 찾아온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려오게 하려면 그 안에 담겨있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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