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삼간일목 Samganilmok
첫번째 숙제
설계를 맡기로 하면 나는 제일 먼저 건축주에게 숙제를 내어 준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가족의 삶을 꿈꾸며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바라는 것을 차근히 정리해보라고 권한다. 활자가 가진 장점 덕분에 건축주는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집짓기를 위한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고, 나또한 그들의 삶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며 착실히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지으려는 이유
세월이 흐르면서 추억이 쌓이고 집도, 사람도 함께 나이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다.
사계절의 변화, 밤 낮의 변화, 흐리고 맑음의 변화를 좀 더 풍성하게 느끼고 싶다.
나무를 심고 가꾸며 , 숲에 조금더 가까이 살고 싶다.
아이가 층간소음 걱정 없이, 형식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
꽃과 풀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가까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마당 한구석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그네와 미끄럼도 타고, 간이 풀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상추와 블루베리도 따는, 집이 아이의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작은 순간들을 조금 더 풍성하게 누리고 싶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 고기도 구워먹고, 밤늦도록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외출에서 돌아오며 언덕 위에 있는 집을 바라볼 때, “아, 이제 쉴 수 있는 우리집에 다왔구나”라는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
생활공간(주방, 화장실 등)을 우리에게 적합하게 만들어 살고 싶다.
강아지 두 마리가 자유롭게 뛰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건축주가 제출한 숙제는 ‘A+’였다.
작은 집은 어렵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작은 집을 설계하는 일은 늘 어렵다. 그렇지만 늘 재미있다. 집이 작기에 꼭 필요한 것,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을 선택해야하고, 그러한 선택들이 온전히 집에 드러나기에 오히려 좋은 작품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의뢰인이 원하는 공간과 건축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은 차이가 꽤 많이 난다. 건축주가 보내준 잘 정리된 요구사항들과 내가 가진 집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한 번에 맞아 떨어졌다.
특색있는 작은 공간
나는 설계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추려나가고, 효율적이면서도 공간의 특색을 만들려 노력했다. 더불어 25평의 제한된 규모 안에서 1.5평의 별채를 따로 만들었다. 두 명이서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지만, 대지를 한정하고, 삶을 더욱 다채롭고 새롭게 만들어 나가기엔 충분한 크기일 수도 있다. 이곳은 풍성한 과일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어쩌면 삶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작은 집 큰 행복
집의 크기는 눈으로 측정이 가능하지만 행복의 크기는 오직 그 행복을 느끼는 사람만이 측정가능하며 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를 찾고, 그것을 얻으려 힘쓰고 노력한다.
8년 만에 어렵사리 얻은 아들과 두 마리 반려견, 그리고 따뜻한 품성을 가진 건축주 부부의 삶을 온전히 담기엔 이 집이 부족함이 많겠지만 그 적절함 안에는 소중한 가족이 함께 하며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풍성히 채워질 것이다. 집은 작지만 소중한 일상들이 무한의 행복으로 부풀어서 웃음이 늘 팝콘처럼 피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