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태진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가가호호 gagahoho archi
주거지역과 공장 사이
이패동 사옥은 일본 술(酒)을 무역하는 회사의 의뢰로 시작됐다. 부지는 경기도 남양주 이패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은 일반주거지역이지만 공장과 창고 군집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지가 가진 특이점은 도시계획시설 내에 있으면서도 현황도로가 맞물려 있어 계획하는 데 매우 불리했으며, 주거지역이기 때문에 일조권 제한과 도로와의 레벨을 해결해야 하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또한 주변이 공장지대인 까닭에 소음과 비산먼지가 많아 사옥 건물로서 위치하기엔 다소 불편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에 방문했을 당시, 기존 건물은 이미 철거되어 있었고 주변이 공장과 창고로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면서 사옥이라는 이미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건물 규모는 지상 3층으로, 1층은 술을 저장하는 저장 공간과 2, 3층은 직원의 업무 공간으로 각각 구성하기로 했다. 건물은 그 특성에 맞는 공간 구성을 가져야 하면서도 외부 환경에 각기 다른 관계도 맺어야 한다. 술을 저장하는 1층 저장 공간은 밖으로는 접근성, 안으로는 이동 지게차를 고려한 동선계획이 필요했다.
저장 공간은 저온과 상온 공간으로 나뉘어 술을 보관하는 공간을 분리해야 해 내부에서 별도로 특수 제작한 단열시스템 벽체를 설치해야 했다. 또한 많은 저장 물품을 고려해 층고가 약 6m에 이르는 높은 공간을 계획해야 했다.
2층 업무 공간은 되도록 차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내부에서 외부 테라스를 바라보면서 업무가 가능한 공간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이유이다. 건축주 개인 공간인 3층은 외부로부터 시선이 차단되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자주 행사를 주최하는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해 외부 정원으로 열린 공간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외부 창호는 접이식 문을 설치해 내부 공간이 외부로 확장, 연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재료의 새로운 접근
외관에 대한 아이디어는 건물이 저장 창고이면서 업무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부지 주변 공장과 창고에서 얻었다. 공장 건물이 가지는 매스의 단순함과 철재 패턴이 가지는 기하학적 느낌을 외관에 차용했다. 또한 다양한 외장재를 사용하는 것보다 여러 성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단일 외피를 계획했다. 이에 따라 신축 건물이지만 주변 풍경과 조화로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노출콘크리트와 타공판의 외관을 가진 건물은 기본적으로 저장 시설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견고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전체적으로 노출콘크리트 매스로 계획했다. 콘크리트가 가지는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을 표현함과 동시에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오피스 섹션은 업무 공간이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분위기 연출이 필요했다. 외장은 이중벽으로 계획해 외피를 통해 내부에 깊이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채광을 만들고자 했다. 시간에 따라 다양한 빛의 변화를 느끼고자 하는 의도다. 또한 타공판 파사드는 외부에서는 잘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비교적 내다보기 수월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동시에 바람을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사비를 고려해 알루미늄 대신 갈바륨 강판에 구멍을 뚫고 절곡해 이어 붙임으로써, 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외장재를 계획했다. 외피의 원형 구멍들은 균등하게 수직 방향으로 계획해 적정한 개구율을 택했다. 타공 외피는 열림과 닫힘을 균등하게 계획해 업무공간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최대한 고민을 했다.
타공판의 접힘으로 개별마다 구조적 강성을 가지게 되면서 타공판을 지지하는 고정 부속 자재의 양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한 타공판의 접힌 면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점과 선 그리고 면으로 다양한 반응을 끌어내는 입면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건축물은 위치에 따른 시각적 변화와 육중한 매스가 중첩되면서 시시각각 다채로운 깊이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