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나우 NAAU LAB ARCHITECTS 정리 & 편집. 김윤선 에디터
숨고 싶은 사람의 집, 비원(秘院)
건축주 김 씨는 온라인 게임 기획자다. 오랜 시간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 소음과 이웃집의 담배연기에 시달려온 그는 아파트 노이로제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가 찾은 탈출구는 단독주택을 짓는 것이었다. 첫 설계 미팅에서 그는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벽을 높게 쳐서 막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것도 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요.”
집을 짓기 위해 김 씨가 선택한 땅은 용인의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으로, 그 안에서도 섬처럼 존재하는 단독주택 전용 필지였다. 대개 50~80평 규모의 필지로, 법적으로 요구하는 주차 2대를 해결하면 외부공간으로 쓸만한 공간이 별로 남지 않는 작은 땅들이다. 게다가 옆집과 불과 50cm 정도 떨어져 집이 지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지는 남북으로 좁고 긴 형태로, 남쪽으로 5m의 좁은 골목에 접해 있고 옆집과도 바짝 붙어있는 상태라 채광과 조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몇 개의 크고 작은 외부공간을 담 안에 숨기는 전략을 사용했다. 지하 작업실의 작은 선큰 가든(Sunken Garden), 1층 거실과 연결되는 큰 테라스, 주방과 연결되는 떠있는 발코니, 밖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2층의 중정, 중정과 연결된 옥상 테라스가 그것이다.
이 다양한 외부공간들은 날씨와 계절을 알게 하는 동시에 집 내부로 태양 빛과 바람을 끌어들여 집의 거주 환경을 조율한다. 정교하게 배치한 외부공간들은 지속적으로 실내에 특별한 자극을 준다.
이 집은 빡빡한 예산과 비좁은 대지 조건 속에서, 심리적 숙제를 안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을 위해 만든 은신처다. 은신처 같은 집답게, 집의 이름 비원(秘院)은 ‘숨겨진 정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밖에서 보면 집인지 담인지 형태적으로 애매하다. 공사하는 내내 높게 둘러쳐진 담장에 주변 이웃들의 냉소적인 눈총이 따가웠을 정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집이 지어진 후 그 담장이 이웃들의 마당에도 예상치 못한 아늑함과 프라이버시를 제공하게 됐다. 위압적으로 느껴졌던 담장이 오히려 거주자의 개성뿐만 아니라 이웃의 심리적 상태를 담는 장치가 된 것이다.
동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이웃집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