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미더운 사람들

[Life in greenery] ①플로리스트, 원예가, 보태니컬 디자이너 등 7인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풀과 꽃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글 & 사진. 이현준 에디터

 

서울 한복판의 낡은 오피스텔로 독립했다. 이국에서 겪었던 집을 떠올리며 내 공간을 주물러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틈만 나면 도매시장에서, 꽃집에서, 길거리 트럭에서 풀과 꽃, 화기를 사 모았다. 박완서 선생님이 텃밭을 가다듬 듯, 타자를 두드리다 말고 일어나 손바닥만한 방을 누볐다. 물을 뿌리고 가지를 치고 서로 자리도 바꿔가며 해와 바람을 나눠줬다. 먼지로 뒤덮인 하늘, 답답한 일터, 속고 패고 죽였다는 소식 뿐인 삶터에서도 풀과 꽃은 어김없이 자기 색을 하고 섰다. 그냥 거기 있다. 한시름 앓다가도 또 다시 말갛게 피었다. 이깟 미물들이 마치 나 같다.

이제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식물을 빼놓지 않는다. 기후가 받쳐준다면 집 안팎을 정원처럼 설계해 사는 것도 꿈이 된 시대다. <브리크 brique>가 지난 4월 베트남으로 VTN Architects의 ‘수목을 위한 집’을 찾아 나선 것도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자면 ‘혼라이프’가 불가피하다. 결혼도 육아도 보류한 이들은 좁은 방 한 뙈기를 초록으로 밝힌다. 오로지 한 명으로 분한 삶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은 당연지사 천차만별. 그러다보니 식물을 대하는 시선도, 오브제로서의 식물을 바라보는 미감도, 공간과 식물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에도 가지치듯 갈래가 생겼다. 이 모든 게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풀과 꽃을 헤아려 온 사람들에게 수소문하기로 했다.

 

 

심기순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KFDA) 초대 이사장 ⓒBRIQUE Magazine

 

심기순 초대 이사장
|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 KFDA

 

찾아 나서는 김에 조금 먼 길까지 발품을 팔기로 했다. 꽃꽂이나 원예를 ‘사치’로 여기던 1980년대, 한국 땅에 최초로 ‘서양꽃꽂이’를 소개하며 꽃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을 개척한 심기순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KFDA  초대 이사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박춘화 꾸까 대표 ⓒBRIQUE Magazine

 

박춘화 대표
| 꾸까 KUKKA

 

사치였던 풀과 꽃이 2019년의 한국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 최초로 꽃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며 우리 일상 한가운데에 꽃을 심는 중인 꾸까Kukka의 박춘화 대표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하수민 그로브 대표 ⓒBRIQUE Magazine

 

하수민 대표
| 그로브 GROVE

 

하이엔드 트렌드의 최전선에는 그로브Grove의 하수민 대표가 있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보그 Vogue> <더블유 W> 등 수 많은 패션 매거진 화보 속 꽃을 연출해 왔다. 날카로운 감성과 손재주에서 비롯된 대담하고 때로 청초한 꽃들. 어쩌면 미끈한 재즈를 닮아 있다. 그녀가 연주해 온 즉흥과 열정의 시간들은. 

 

오주원 틸테이블 대표 ⓒBRIQUE Magazine

 

오주원 대표
| 틸테이블 TEAL TABLE

 

서울 성수동을 근거로 ‘보태니컬 디자인botanical design’을 말하는 틸테이블Teal Table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겉보기에 남자답고 투박스러운 면이 있는 오주원 대표는 ‘반려식물’이라는 개념을 가장 처음 이야기한 따뜻하고 섬세한 인물이다. 식물의 힘을 빌린 인테리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등장한 ‘플랜테리어planterior’라는 신조어의 탄생에 한 몫을 거들기도 했다.

 

임지숙 쎄종플레리 대표 ⓒBRIQUE Magazine

 

임지숙 대표
| 쎄종플레리 SAISON FLEURIE

 

임지숙 쎄종플레리Saison Fleurie 대표는 꽃 앞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좁은 무대에서 꽃으로 엮여야 할 사람들의 관계가 경쟁과 시기심으로 점철되길 원치 않았다. 런던 유학시절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로 해외 유수의 플로리스트들을 국내 초빙해 워크숍을 열어온 것도 꽤 시간이 지났다. 눈을 맞추고 웃는 그녀 미소는 ‘흐드러진다’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꽃피는 계절은 달리 오지 않는다.

 

박기철 원예가 ⓒBRIQUE Magazine

 

박기철 원예가
| 식물의 취향 TASTE OF PLANT

 

종로구 운니동에 옛 서울의 호젓함을 간직한 건물이 있다. 그 이름도 무려 ‘가든 타워’. 박기철 식물의 취향 대표는 줄기와 가지, 잎의 형상과 색으로 어쩌면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믿기지 않지만 식물에겐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그 존재만이 가진 취향이 있더라.

 

이현주 무구 대표 ⓒBRIQUE Magazine

 

이현주 대표
| 무구 MUGU

 

그녀의 꽃에선 묘하도록 서정적인 서사가 읽힌다. 예쁘다, 세련되다 치부하고 싶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 이런건 대체 무슨 스타일이냐 묻자 ‘파주 스타일’이라 답하는 그녀의 꽃은 차라리 ‘힙’하다. 힙스터가 되고 싶어 그녀의 꽃사진에 글을 얹었다. 유전자를 조작해 머리를 키운 꽃, 특수합금으로 재현한 강아지풀이 기다렸던 ‘미래’일까? 순박한 자연 그대로의 얼굴. 요란한 누구 스타일 말고 철따라 길따라 난 모습대로 그러쥔, 파주 돌곶이길 스타일. 어쩌면 ‘내일’은 눈부신 첨단이 아니라 흐리터분한 ‘무구’에 있는지 모른다.

 

‘Life in greenery: 꽃과 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야기’ 일곱 편은 순차적으로 <브리크 brique> 웹사이트와 SNS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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