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김남 KimNam Architects 정리 & 편집. 전종현 편집위원
서울의 일반주거지역에 다세대 주택을 짓는 일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일조사선을 적용하고, 주차 대수와 임대면적을 확보하다 보면 건물을 하나의 일관성 있는 기하학적 볼륨으로 완결 짓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우리는 높이에 따라 변화하는 현실적인 조건을 건축적인 표현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건물은 외부의 형태(massing) 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의 구성 논리, 재료, 창을 내는 방식과 디테일 등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는 4가지 공간이 수직적으로 쌓아 올려진 형태로 만들어졌다.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주거로 사용되는 부분은 최소한으로 허용하는 1층은 구조체가 띄엄띄엄 분포하는 섬과 같은 평면을 가지게 되었다. 구조적인 성능을 유지하면서 좁은 전면도로를 통해 드나드는 자동차가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기둥들은 앞면이 좁아지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일조사선과 주차의 영향을 덜 받는 9m 이하의 공간, 즉 2~3층은 최대 면적을 확보하도록 대지 경계를 따라 외벽선을 결정하고, 이를 직교하는 내벽들로 분할하여 임대 세대를 배치하게 되었다.
4층은 일조사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3층보다 작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는 직사각형 방들을 붙여가면서 더욱 실용적인 공간을 가진 세대들로 구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단형의 선들은 곧 외벽이 되었고, 모든 세대는 테라스를 갖게 되었다. 다세대 주택의 마지막 층으로 높이에 큰 제약이 없는 5층은 층고가 높은 주인 세대로 구성했다. 일조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경사의 외벽과 곡선의 내벽이 만나는 주인 세대는 특유의 공간감을 가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외장재를 적용해 4가지 공간이 지니는 차이점을 더욱 강조하려 했다. 5층에는 금속 시트가 경사진 벽의 코너를 따라 돌게 하여 면에 따라 기울기가 다른 줄무늬가 만들어졌다. 가장 많은 코너가 있는 4층은 어두운색의 스타코를 적용하여 무늬와 두께가 없이 형태만 남은 외벽을 구축했다. 건물 앞을 거니는 사람들에게 가장 거대하게 다가올 2~3층 외벽에는 포천석을 사용했다. 인근 건물에도 많이 사용된 재료이지만 아주 얕은 줄다듬으로 가공하고, 좁고 긴 비례로 자르는 등 섬세하게 변용함으로써 주변 건물과 닮은 듯하지만 낯선 모습을 부여했다. 1층의 기둥들은 별도의 외장재 없이 구조체인 콘크리트를 노출하여 묵직하고 날카로운 형태를 강조했다.
서울의 여느 필지처럼 건물로 빽빽이 둘러싸인 이곳에 어떻게 창을 내어 주변의 빛과 풍경을 받아들일지 수없이 고민했다. 1층의 경우, 구조체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유리를 사용하고 바닥을 반 층 낮춰 층고가 시원하며 눈높이 부분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2~3층은 주변 건물의 창과 마주 보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건물들 사이의 틈새 공간과 조경을 향해 창을 배치했다. 4층에서는 창이 테라스로 나가는 문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5층은 외벽의 형태를 닮은 큰 창을 정면에 내어 지붕이 모여 있는 주변 풍경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옥상에 만든 중정에 하늘을 끌어들이는 창을 배치했다.
4가지 각기 다른 공간의 묘미가 관통하는 곳은 엘리베이터실과 계단실로 이루어진 공용공간이다. 여기는 노출 콘크리트 벽체와 화강석 바닥재를 일관되게 적용했는데, 정상부의 높은 층고, 4층 테라스로부터 들어오는 자연광, 세대 수가 많은 2~3층의 넓은 공용부, 주출입구에 담긴 거리의 모습과 만나면서 연속적인 변화가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