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지랩 Z_Lab 정리 & 편집. 이현준 에디터
서촌
누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 중 하나인 서촌 누하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북촌과 함께 가장 오래된 동네이며 조선시대부터 왕족과 사대부, 중인들의 거주지였다. 일제 시대 이후에는 다양한 분야의 문인과 예술인 들이 살던 마을이다. 추사 김정희, 정선,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등의 화가와 이상, 서정주, 김동리, 윤동주 등의 시인가 소설가들이 거주하던 동네이다. 우리는 이러한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서촌에 작은 스테이를 기반으로 누릴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풍류에 대해 고민했다.
와유
누워서 유람한다는 의미의 와유는 풍류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다. 자연으로 갈 수 없는 시간에도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과 책을 보거나 작은 정원을 감사하는 등의 행위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남한강편의 머리말에서 와유를 이렇게 말한다. “ 이 책이 꼭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한강의 산수를 누워서 즐기는 와유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우리는 이곳에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속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을 꿈꿨다. 현대적인 해석과 의미를 담은 와유가 이곳의 프로그램이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이곳을 사색을 위한 프라이빗 스테이로 디자인하고 작지만 생기있는 정원을 가꾼다. 이 정원을 바라보며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낮게 놓아진 침대와 작은 조명들, 벽에 걸린 족자와 병풍, 긴 좌식 테이블에 놓인 다기와 차, 따뜻한 욕조에서 바라보는 작은 정원. 누와에 맞게 디자인된 안내서와 방명록, 작은 소품 하나까지 온전한 사색을 즐기기 위한 모든 것을 마련해 두었다.
골목
구불구불한 자연 발생적인 골목은 서울의 원도심의 매력이자 서촌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 특히 한 사람의 어깨보다 약간 더 넓은 누와의 골목은 신비로움과 기대감을 극대화하게 된다. 작은 골목의 징검다리, 골목이 꺾여 들어가며 변화되는 시퀀스와 마지막의 오래된 대문까지 일상의 동네에서 와유의 공간으로 전환을 위한 전위 공간이 된다.
연출
내부 공간 곳곳의 의도된 공간적 연출은 사용자들에게 이 공간의 사용을 유도하고 강한 장소적 인지를 유도하려고 한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공간 디자인은 연출 속에서도 사용자의 변수와 자유도를 고려해 열어 놓았다면, 누와는 더욱 적극적으로 공간의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사용자가 경험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전략은 실내 면적이 7평 밖에 되지 않은 작은 공간인 누와에서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여타의 큰 스테이 공간을 뛰어 넘는 임팩트를 줄 수 있다고 봤다.
마감재
관리되지 않고 건물의 노후가 심각했던 누와는 전통적인 의미의 한옥의 이미지를 부활시키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오히려 건축사적인 중요도가 낮은 건물인 만큼 더욱 실험적인 디자인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와의 마감 재료는 작은 공간의 공간감을 넓혀주고 요소요소의 섬세한 프로그램을 부각시킬 수 있어야 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보다 한 가지 마감재료로 바닥과 벽 몇몇의 붙박이 가구를 함께 마감하도록 고려했다.
가구와 소품
결국 섬세한 와유의 프로그램에 공간 디자인은 배경과 분위기를 만든다면, 머무는 이의 몸에 닿고 눈길에 닿는 가구와 소품, 브랜딩이 중요한 과제였다. 책 한권, 작은 다기 하나까지도 그 크기와 위치를 고려해 배치될 가구와 함께 디자인했다. 누와는 우리 과거의 멋을 담지만 전기 쿡탑, 싱크대, 냉장고 등의 현대적인 편리함을 주는 최소한의 요소를 다시 디자인하거나 적절히 매립해 시각적인 어색함을 줄였다.
브랜딩
모든 누와의 디자인은 브랜딩에서 방점을 찍는다. 스테이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기에 어쩌면 머무는 이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고 프로그램의 사용을 안내하는 기능에서부터 일상 생활 속에 기억될 로고의 이미지를 염두했다. 처마 밑 풍경이 걸리는 자리에 천천히 흔들리는 누와의 로고는 지랩이 생각하는 공간과 브랜딩의 토탈디자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