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이 이솝인 이유

[Scent in Space] ⑧정제된 뉘앙스와 일관성의 결정, 이솝의 시적 공간
ⓒBRIQUE Magazine
에디터. 이현준  자료. 이솝코리아

 

‘이솝Aesop’은 1987년에 설립된 스킨 및 헤어케어 브랜드다. 호주 멜버른에 본사를 두고 세계 20여 개국 다양한 지역에 사무실과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이솝은 브랜드 특유의 아로마, 매력적인 매장 공간 및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솝은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기능주의와 탐미주의 사이를 줄 탄다. 아울러 바르고 뿌리는 행위, 맡고 감각하는 행위, 리테일 공간에서의 구매 행위 등 사용자의 ‘경험’을 새롭고 섬세하게 매만지는 브랜드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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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이솝의 제품 개발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요소다. 효능, 안정성, 지속력 등이 결정되기도 훨씬 이전에 실험실 연구원들의 즉각적인 심리적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향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제품이 얼마나 적합한지,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는 결국 어떤 향이 나느냐일 수 있다. 인상 깊은 후각적 경험이야말로 제품을 사용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어떤 목적으로 디자인되었는지를 모두 앞서는 제품 평이 된다. 이솝의 제품 배합은 다양한 식물 추출 구성요소로 인해 꽃 향, 풀 향, 약초 향 등 강렬한 아로마를 발산한다. 섬세하게 제조된 세 가지 향수 제품 이외에도 공간 속 풍부한 향을 위한 4종의 아로마 오일 블렌드가 제품군을 구성한다. 또 이솝은 조향 업계의 거장, 프랑스 출신 바나베 피용Barnabé Fillion, 셀린 바렐Céline Barel 등과의 협업으로 감각적인 향과 아이덴티티를 간직한 향수 및 룸 스프레이 3종을 선보인 바 있다. 

 

룸스프레이 ⓒBRIQUE Magazine
아로마 오일 블렌드 ⓒBRIQUE Magazine
핸드워시 ⓒBRIQUE Magazine

 

전 세계 도처에 200개를 훌쩍 웃도는 이솝 스토어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중 어느 하나 동일한 공간은 없다. 나무, 돌, 철제, 특수자재 등 매장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재료의 차이가 역설적이게도 이솝의 깊고도 풍부한 미적 일관성이 된다. 제품의 테스트 방법과 제조 원리부터 이솝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문구류(검은 노트와 검은 펜만을 고수한다)까지 이솝은 스스로 정한 규제와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브랜드가 점차 성숙하고,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을 파고들면서 이런 이솝의 원칙은 브랜드가 견고하게 뿌리내리도록 돕는 하나의 체계이자 코드가 됐다. 

 

가로수길 시그니처 스토어 ⓒAesop Korea
롯데월드몰 시그니처 스토어 ⓒAesop Korea

 

공간의 형태, 재료, 컬러 팔레트 등 모든 요소를 달리할지라도, 한국 내의 스토어를 포함한 전 세계 이솝 매장은 두 가지 핵심요소에 기반하여 동일한 미적 철학을 공유한다. 첫째, 시각적 과잉을 피한다 –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남아있는 것들에 더 힘 있는 정의가 부여된다. 둘째, ‘배열과 반복’이라는 시각적 콘셉트를 유지한다 – 이솝 스토어와 사무실, 온라인 공간과 물류 창고를 막론하고 미색 라벨이 붙은 앰버 컬러의 유리병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이제 이솝의 상징적인 시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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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op, the Book> 중 ⓒBRIQUE Magazine

 

처음부터 이솝이 화장품을 제조, 판매하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1987년 당시 이솝은 ‘헤어 살롱’으로 출발했다. 2003년 이솝의 첫 시그니처 스토어를 준비할 무렵, 이솝은 친근하면서도 감각적으로도 기분 좋은 자극이 되는 공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과거 초창기의 이솝에게 자문自問 하기로 한다. 고객의 필요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고객에게 편안함과 환대받는 느낌을 선사할 수 있을까. 살롱 시절 레트로 이솝이 모던 이솝에 일러줄 것들이다. 공간 속에 부드럽고 그윽한 불빛이 사람의 인상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앉았을 때 의자 최적의 높이와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공들여 선정한 공간의 음향이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건축적 재료와 그 질감이 어떻게 공간 내부에 친밀감과 진실성을 더해가는지….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 사운즈 한남 ⓒAesop Korea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처음 꺼내든 ‘시적 공간Poetic Space’이라는 개념은, 숙고한 의도와 관찰이 고스란히 녹아든 이솝의 공간과도 통한다. 그곳엔 ‘일관됨’이 있고, ‘뉘앙스’가 있다. 가장 순수한 디자인 해법이란 많은 경우 매우 민감한 탐사 과정을 전제로 한다.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솝에게 있어 고급스러움이란 진귀한 재료나 묘기에 가까운 디자인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제자리를 지키는 공간은 ‘제약과 규제’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공간이다. 가장 보통의 재료가 본성을 간직하면서도 도발을 감행하는 공간이 바로 그렇다. 

 

<Aesop, the Book> 중 ⓒBRIQUE Magazine
<Aesop, the Book> ⓒBRIQUE Magazine

 

최근 국내에 탄생한 이솝 스토어 세 곳을 소개한다. 기존 근처의 매장을 닫고 디자인 스튜디오 MLKK와의 협업으로 새롭게 오픈한 가로수길의 시그니처 스토어, 역시 디자인 스튜디오 MLKK와 협업하고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위한 전용공간이 마련된 사운즈 한남 시그니처 스토어,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아키텍스SUH Architects와의 협업으로 오픈한 잠실 롯데월드몰 시그니처 스토어다. 이솝이라는 브랜드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 가운데에도 심사숙고를 거친 세심한 디자인은 모든 이솝 공간의 창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로수길 시그니처 스토어 
새롭게 단장한 이솝 가로수길 시그니처 스토어는 언제나 활기찬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MLKK 와의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에서 재탄생한 스토어는 두 개 층의 공간과 루프탑 가든을 통해 쉽게 지나쳤던 태양, 하늘, 은행나무, 고요함과 같은 주변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디자인에 담아내어 가로수길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Aesop Korea

 

파사드의 블랙 스틸은 이솝의 첫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였던 기존 가로수길 스토어를 연상시키며, 그레이 컬러의 마감재는 풍성한 질감을 보여준다. 다섯 개의 눈에 띄는 투명한 창은 추상적으로 배열되어 있고, 1층의 가느다란 창은 예상치 못한 공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시멘트 마감으로 이루어진 루버는 자연광과 만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고 스토어 내부로 빛을 퍼트리는 역할도 한다. 스토어 입구는 바쁜 가로수길에서 한 발 물러난 모퉁이 너머에 있다. 블랙 스틸과 함께 한국의 식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화강석을 싱크대와 카운터에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재질감을 표현했다. 

 

@Aesop Korea
@Aesop Korea

 

루프탑으로 이어지는 계단 통로에는 비스듬한 창을 통해 풍성한 빛이 들어오고, 리듬감 있게 배치한 다년생의 핑크 뮬리 그라스가 있는 루프탑은 계절의 변화와 가로수길 주변 은행나무의 다채로운 컬러를 감상하기 좋은 장소다. 

 

@Aesop Korea

 

사운즈 한남 시그니처 스토어
이솝의 아홉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는 언덕길과 좁다란 골목으로 이루어진, 다채로우면서도 국제적인 분위기의 한남동에 자리 잡았다. 디자인 스튜디오 MLKK와의 컬래버레이을 통해 탄생한 이 공간에는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는 이솝의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위한 전용 룸도 마련되어 있다. 

 

ⓒAesop Korea
ⓒAesop Korea

 

거리에서 바라본 이솝 사운즈 한남은 사원의 회랑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창문을 통해 매장 내부의 따뜻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벽돌을 활용한 안락한 인테리어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매장 중앙에 자리 잡은 제품 시연을 위한 묵직한 싱크대와 POS는 벽돌로 이루어진 바닥 및 벽면과 소재적인 통일을 이룬다. 

 

ⓒAesop Korea

 

한국의 전통 가마인, 반원형의 ‘망댕이 가마’를 연상시키는 벽돌로 둘러싸인 아치형 벽면 공간에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동 선반과 세부 장식이 전반적인 흙의 질감과 보기 좋은 대조를 이룬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아래층의 리테일 공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톤으로 이루어진 트리트먼트 룸, 라운지, 직원 전용 공간을 만날 수 있으며 휴식을 위한 야외 테라스도 마련되어 있다. 

 

ⓒAesop Korea

 

롯데월드몰 시그니처 스토어
이솝 롯데월드몰 스토어를 디자인 한 서아키텍스는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 요소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마루를 상징적으로 확장해 기분 좋은 안식처와 같은 공간을 조성했다. 입구의 깊은 처마는 재생 목재와 거칠게 다듬은 석재로 이루어진, 친숙한 안마당으로 방문객들을 이끈다. 목제 슬레이트는 천장에 비스듬한 각도로 매달려 아늑한 효과를 주며 수직의 리브가 지그재그 배열의 선반을 표현한다. 반대편에 위치한 낮은 높이의 벤치는 사람들이 모여 앉는 친숙한 평상을 연상시킨다.

 

ⓒAesop Korea
ⓒAesop Korea

 

대형 석재 싱크에서 고객들은 좋은 품질의 식물성 성분과 실험실에서 입증된 재료를 사용해 제작된 차별화된 스킨, 헤어, 바디 케어 제품의 전체 레인지를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다. 스토어에는 숙련된 컨설턴트가 상주해 개별적인 니즈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제공한다. 

 

ⓒAesop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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