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은 집에 살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게 담아낸 모두의 집, ‘화운원’
ⓒKyung Roh
에디터. 김현경  자료. 건축사사무소 서가 Seoga Architects

 

혼자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4평의 작은 공간, 옆 세대의 작은 소음도 들릴 만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 ‘화운원’의 건축주는 그런 집들을 계속 만드는 것은 세입자에게도, 본인에게도 서로 힘들어지는 공간을 더 늘릴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함께 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축주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줄 건축사무소를 찾는데 꽤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만난 것이 서가 건축사사무소. 간결하고 단단한 서가의 작업들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한다.

 

ⓒKyung Roh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 젊은 동네로 변했습니다.”

 

고향집에서 토박이가 사는 법
건축주는 봉천동 토박이였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봉천동이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이전의 노후화된 달동네의 이미지를 벗은 지는 오래였다. 대학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 젊은 세대의 이동이 많아진 바쁜 동네가 되었다. 그러나 건축주에게는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어온 정든 동네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건물인 동시에 부모님과 자녀, 3대가 같이 계속해서 이어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노후화된 상가주택의 대지에 다른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Kyung Roh

 

“모든 세대에 충분한 개별 공간과 공용 공간을 제공할 방안을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한 기본원칙
건축주는 세대 수를 늘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제안한 기본 원칙들, 무리하게 세대 수를 늘리지 않고 가능한 여유 있는 세대별 전용면적을 가져야 했다. 다양한 평면을 세입자들에게 제공해 층 수뿐 아니라 집의 구조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 덕에 건축주가 살 공간을 포함, 총 25세대가 각양각색을 평면을 갖게 되었다.

 

3층 평면도 ⓒSeoga Architects
5층 평면도 ⓒSeoga Architects
8층 평면도 ⓒSeoga Architects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된 데에는 동네 토박이로서 오랜 시간 봐온 관찰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임대세대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실제 인근 지하철 역세권 오피스텔에서도 공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 같은 게임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임차인도 힘들고, 임대인도 원하지 않는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임대 또한 서비스이고 거주하는 사람들의 만족을 위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판단한 건축주의 원칙은 건축가에게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세대 수의 여유를 주었기 때문에 다양한 공간을 구상할 수 있었다.

 

ⓒKyung Roh
ⓒKyung Roh

 

테라스가 있는 임대 세대
고층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지면을 밟을 일이 적어진다. 창문을 열지 않는 이상은 외기를 접할 일도 없다. 건축가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외부 공간을 제공한다면 주거의 다양성, 삶의 패턴 같은 것들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부 공간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세입자들에게 충분히 소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었다.

 

ⓒKyung Roh

 

그래서 건축가가 제안한 평면은 일반적인 집들의 평면과는 달랐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건축주가 이전에 경험했던 주거의 유형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옥탑의 공간에 마당을 두고 살았었다. 화초를 키우고, 빨래를 널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었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주는 이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축주 또한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Kyung Roh

 

그렇게 테라스를 만들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모습을 구상해 나갔다. 설계를 시작할 때 옆의 건물 또한 비슷한 규모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좁은 도로에 저층 건물이 많은 동네에 두 개의 높은 건물이 나란히 들어서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층이 올라갈 수록 세대가 점점 뒤로 물러나 앉혀지는 외관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면서 생기는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개별 세대의 테라스가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집의 입면은 시간에 따라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 얼굴이 되었다.

 

ⓒKyung Roh

 

벽돌이 주는 따뜻함
고층 건물에서 벽돌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고층의 건물에 벽돌을 쌓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벽돌을 사용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봉천동에는 옛 건물이 많고, 벽돌을 사용한 건물이 많았다. 벽돌을 멀리서 봤을 때 주는 단단한 느낌과 가까이서 봤을 때 주는 겹겹이 쌓인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벽돌이 주는 따뜻함이 동네의 분위기와 맞다고 생각을 했다.
옆에서 올라가고 있는 건물도 고려했다. 비슷한 색상의 고층 건물이 나란히 들어서게 된다면 이웃들에게 답답함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옆 건물보다 밝은 색으로 개방감을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색의 작은 벽돌이 마감재로 사용하게 된 이유다.

 

ⓒKyung Roh

 

“예산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할 과제라는 걸 깨달았다.” 

 

벽돌을 선택하게 되면서 예상한 예산을 훨씬 넘는 시공비가 나왔다. 사실 이 부분은 건축주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건축가가 의도하는 바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건물에 대해 잘 아는 건축가이고, 다 이유가 있어서 디자인했는데 이것을 바꾸는 것이 괜찮은지 건축주는 고민을 했다. 거대해진 공사비를 해결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관내의 시공사와 진행하게 되었지만, 건축가의 의도를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건축가에 대한 믿음으로 공사를 진행해 나갔다.

 

ⓒKyung Roh

 

삼면에 창을 내다
우리나라 기후에서 남향이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남향을 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평면에 따라 각자의 방마다 특성이 필요했다. 옆에 올라오는 건물을 의식해 동쪽은 코어를 배치해 막고, 남서 쪽으로 최대한 열어주면서 다양한 테라스와 평면, 창을 배치했다.
다양한 세대원들을 위한 다양한 평면을 구성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세대를 구성하면서 아무래도 임대 또한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한세대가 더 나오는지 마는지에 대한 논의들도 이어졌다. 그렇지만 건축주 또한 빠르게 결정을 내려주었고, 예상보다 짧은 7개월 동안에 설계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Kyung Roh
ⓒKyung Roh

 

높아질수록 커지는 세대
내부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아무래도 원룸에 사는 사람은 1인 가구인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었고, 주간에 생활하기보다는 밤에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드나듦이 많을 것으로 생각을 했기에 저층부에 배치했다.
반대로 위로 올라가면서 투룸, 쓰리룸으로 가면서는 신혼부부 혹은 자녀가 한 명 있는 젊은 부부가 들어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될 경우 누군가 한 명은 집에 상주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층으로 배치해 조망을 제공하면서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작은 세대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큰 세대가 되는 구조로 구성하게 되었다.

단면도 ⓒSeoga Architects

 

“구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을 했습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법
다양한 평면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 방법이 문제였다. 아파트와 같이 같은 평면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벽이 구조체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공간의 변화를 주기 힘들다. 반대로 다양한 평면의 구성은 구조를 지탱해줄 수 있는 벽이 많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찾은 많은 구조사무실 중에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전이보의 사용은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맨 마지막 층에서 두꺼운 전이보를 만들어서 해결하는 방법인데, 그만큼 아래층의 공간은 층고가 낮아져 괴로워지는 상황이 된다. 그것보다는 다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맞다고 했고, 그 생각에 동의했다. 그렇게 찾은 방법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했다.
안에 있던 벽체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었다. 구조역할을 하는 벽 외의 나머지 벽들은 조적벽나 건식벽으로 하면서 더 가벼워지는 방법으로 해결을 했다. 전이보의 사용도 공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를 해결했다. 그 덕에 공사하면서도 좋았고, 잘 풀어낼 수 있었다.

 

ⓒKyung Roh
ⓒKyung Roh

 

“임대인들도 처음 마음으로 이 집에서 만족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 이름처럼 편안한 곳이 되기를
화운원은 건축주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함을 따서 완성한 이름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어머니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그리운 존재다. 임대인들이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고 오래 거주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붙였다.
건축주는 이 집을 지으면서 누구나 좋은 공간에 살고 싶어하는 것을 느꼈다 한다. 단기적인 수익만 생각해 똑같은 공간만 만들어내면, 결국 사랑을 받을 수도, 오래갈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주도, 건물도 늙어갈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쌓여도 변함 없이 고풍스럽게 한 번씩 눈길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 어떨까. 건축주가 바라듯 자신이 자라난 동네에서 자녀들도 이어 살고, 임대인들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두의 집이 되길 기대해 본다.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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