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 Archihood WxY
2년여 전 성남시 고등지구의 한 필지를 구입하신 사이좋은 부부가 첫 주택 설계를 의뢰하러 찾아왔다. 부부는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이번 건축을 계기로 퇴사 후 카페를 운영하는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었다.
부부와 함께 방문한 고등동은 전형적인 신도시 개발지구 내에 있는 다가구주택용 택지로, 여타 신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필지는 근생과 다가구주택이 조합된 4층짜리 건물을 아슬아슬하게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폭과 넓이를 가지고 있었고, 6미터 폭의 도로는 머지않아 주차장처럼 변할 것이 쉽게 예상되었다.
설계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몇몇 필지에 아주 빠른 속도로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우리가 착공을 의논할 시점에는 벌써 다 지어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최대한의 용적률을 위해 도로 앞에 바싹 붙어 앉았고, 창의적인 다락방 창조 기술들은 이 동네의 스카이라인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동네는 방금 시작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완성된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땅에서 이미 건축을 해봤던 경험이 있고, 틈틈집에서는 이런 동네의 해결책으로 중정과 좁고 긴 발코니를 제시했다. 건축주도 그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했으나, 고등동의 필지는 폭이 약 12미터로 중정은커녕 주차장 넣기에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좁고 긴 발코니와 도로로부터 멀어지기가 유일했다.
대지 전면의 6미터 도로는 이 집의 내부를 건너편 집의 시선으로부터 지켜주기에는 많이 모자랐기에, 건물의 전면을 최대한 도로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동시에 건물 전면의 큰 발코니 대신 좁고 긴 발코니를 집의 중심에 두고 전면으로의 창도 좁고 긴 형태로 내 시선이 들어올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그런데 설계를 시작하자마자 큰 난관이 닥쳤다. 대지의 12미터 폭으로 인해 일조권 적용을 하면 4층의 절반을 고스란히 날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집들은 대체로 1층은 상가, 2, 3층은 임대용 주택, 4층은 주인집이 암묵적인 공식이다. 그런데 4층의 절반을 못 쓰게 됐으니, 건축주분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3층의 절반과 4층을 건축주를 위한 집으로 만들기로 했다. 3층은 침실 영역, 4층은 거실 등의 생활 영역으로, 4층의 절반쯤 되는 넓은 옥상 정원을 만들어 복층형 단독주택에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다.
대략적인 구성이 끝났으니, 건물의 재료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처음 집을 짓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재료가 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하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이 동네의 미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남들과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기보다는 남들이 사용 안 할 재료, 대신 차분하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기를 추천했다.
그래서 제안한 재료가 유로폼 노출콘크리트와 원목의 조합이었고, 이대로만 하면 임대가 빨리 나갈 것이라는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두 분을 설득했다.
다행히도 결과는 예상과 맞았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집들 사이에서 유독 이 집은 차분한 듯 보였고, 전체를 아코야로 감싸 나무 박스 같아 보이는 4층은 이 집의 차별화된 상징이 되었다. 1층 입구의 벽과 천장에는 유광의 스테인레스 스틸을 사용해 낮은 층고를 역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 주신 건축주 부부와 혹한의 겨울에도 천막을 덮고 증기 보일러를 가동시켜가면서까지 콘크리트 작업을 해 준 시공자들이 있었기에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고,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 담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선도하거나 기념비적인 성격을 갖지는 않아도 이 작은 건물이 더해짐으로써 많은 이들이 도시의 풍경을 조금 더 즐겁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