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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미학과 ‘K-style’

[Life in greenery] ④꽃과 풀로 패션·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만들어 온 하수민 그로브Grove 대표의 공간, 취향, 스타일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이현준  자료. 그로브

 

도시의 도시, 서울. 비범한 컬러 팔레트의 꽃과 다채로운 질감의 초록이 우거진 곳이 있다. 하수민 대표가 머물며 일하는 작은 숲, ‘그로브Grove’다. 지난 12년간 <보그 Vogue>, <더블유 W>, <메종 Maison> 등 패션·라이프스타일 미디어의 비주얼 디렉팅을 맡아 꽃과 풀을 매개로 트렌드의 심장부에서 공간과 인물을 해석해 왔다. 

 

하수민 대표의 플라워 스타일링과 함께 연출된 ‘보그’ 2018년 5월 ⓒVogue Korea
하수민 대표의 플라워 스타일링과 함께 연출된 ‘싱글즈’ 2019년 3월 ⓒSingles Magazine
하수민 대표의 꽃으로 완성도를 더한 이탤리언 슈즈 브랜드 ‘골든 구스’ 스토어. 롯데백화점 인천점(왼쪽)과 갤러리아백화점 본점 ⓒ골든구스코리아

 

꽃과 풀을 구심점 삼아 고객을 마주하는 ‘리테일’, 화보 속 공간을 연출하는 ‘아트’의 경계에서 그는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미팅 스케줄과 날선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작업들 속에서도 중심을 놓치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모든 일정을 미뤄두고 파리와 베를린 여행을 다녀온 하수민 대표를 찾아갔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녀가 새롭게 보고 느낀 점, 더 깊어졌을 ‘K-style’에 관한 그의 고민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가 선물처럼 풀어놓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 본다.

 

하수민 그로브Grove 대표 ⓒBRIQUE Magazine

 

우리가 알던 꽃과 풀이 아니야

 

꽃과 풀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커졌다. ‘나이 드니 꽃이 좋아, 나무가 좋아’는 이제 옛말이다. 실용성을 따지던 젊은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인테리어 업계 종사자나, 관심있는 특정 사람들만 찾았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비하는 금액을 떠나 꽃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전에는 꽃을 한 번 사려고 하면 선물을 고르듯 정말 신중했다. 이제는 꽃을 선물하는 횟수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꽃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또 사적인 공간에 예쁜 나무 한 그루라도 가꾸려는 것, 예전과 달리 꽃과 풀을 곁에 두는 라이프스타일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해외 여행의 기회도 많아지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흐름을 피부로 감지한 건 4~5년 정도 됐다. 

 

그로브 내부 ⓒBRIQUE Magazine

 

꽃뿐 아니라 식물도 취급한다. 소규모의 조경은 우리가 직접 하기도 하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디자인만 맡고 타 업체와 협업을 하기도 한다. 그로브가 조경 전문 브랜드가 아니어서 이 분야 전반을 대변하는 의견은 아닐 수 있지만, 업계 내 감지되는 변화 또한 그 진폭이 큰 것 같다. 예전엔 인테리어가 끝나면 다짜고짜 “나무를 심어달라”고 했더랬다. 그러면 요만한 구멍을 뚫고 홈을 파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식물을 심고 어떻게 유지 관리를 하려나 의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은 경우, 주변에 회양목이라는 죄다 똑같은 품종을 심어 놓지 않았나. 인테리어 자체에만 무게 중심을 두고 식물과 공간을 어우러뜨리는 행위와 작업, 아이디어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공간을 구성하고 설계하는 단계에서 식물을 논의하는 단계 자체가 앞당겨졌다. 초기부터 ‘그린을 이쯤에 배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온다던지, 이전엔 모든 걸 끝내 놓고 어설프게 인테리어 중간에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면 이젠 ‘그린테리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가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활발하게 초록을 주제로 미팅을 하곤 한다. 어디까지나 부차적 조연이었던 그린(green)이 지금은 인테리어의 한 부분으로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주연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라 선 것이다.

 

하수민 대표가 꾸민 편집숍 비이커Beaker 청담점 내부. 초록의 배치와 빛의 흐름, 공기의 순환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공간이다. ⓒGrove
하수민 대표가 꾸민 편집숍 비이커Beaker 청담점 내부. 초록의 배치와 빛의 흐름, 공기의 순환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공간이다. ⓒGrove

 

공간 · 취향 · 스타일

 

보통 그로브를 아는 분들은 화려하다, 컬러풀하다, 큼직하고 임팩트있다, 이렇게 표현 한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그로브는 굉장히 내추럴하고 잔잔한 순간도 있다. 그로브의 작업도 그렇지만 눈에 비치는게 참 다양하다. 내 작업에 대해 어떤 매체에서  “요즘 유행하는 꽃들이 마치 수채화처럼 부드럽다면, 그로브는 텍스쳐가 또렷하게 살아 있는 유화같다”라고 표현했는데, 참 공감이 간다.
내 작업의 성격상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어디까지가 예술이지?’ 이번에 유럽 여행에 다녀온 것도, 그 물음에 대한 질문을 찾는 연장선상이었다. 어쨌든 예술이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확신에 차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꽃으로 장면과 공간을 연출하면서 ‘내가 만드는 꽃은 아름답다’ 라는 확신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전엔 ‘그로브 스타일은 어떤거예요?’라고 물으면 ‘글쎄요, 그냥 그로브 스타일이예요’라며 얼버무렸지만, 이젠 그로브만의 미감과 스타일을 정의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로브의 꽃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아름다움은 ‘다름’으로부터

 

사람들의 꽃과 풀, 식물을 향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건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하나 안타까운게 있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듯 똑같은 스타일, 똑같은 느낌, 똑같은 분위기가 너무 많다는 거다. 
옛날엔 오로지 꽃, 꽃, 꽃만 봤다면 요즘은 전체적인 공간, 그 공기와 무드에 관심이 간다. 조금은 큰 그림을 읽으면서 시야를 넓혀보려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예쁘다고 여겨지는 공간이 하나 생기면 몰려 가 사진을 찍기위해 줄을 서고, 그러고나면 그와 비슷한 공간이 우후죽순 생겨나는게 어떤 수순처럼 돼 있다. 파리나 베를린에서 만난 공간이 멋져 보이는 이유는 빈티지해서, 세월이 묻어서, 디자인이 잘 돼서가 아니다. 제 각기 다른 매력을 지녀서이다. 같은 건물 안에 나누어진 곳에서도 어느 하나 같은 공간이 없다. 아무개가 했다는 예쁜 소파, 전등을 가져다 놓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끊임 없이 고민하고 또 구현해 낸다.

 

하수민 대표가 파리에서 마주친 공간들 ⓒGrove

 

한국에선 무서울만큼 거센 현상이 있다. 어떤 인테리어 스타일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거나, 특정 브랜드의 의자가 매스컴을 타면 어딜 가나 같은 스타일, 같은 의자로 채워진다. 우르르 등장한 비슷한 카페들을 보면 몇 년도인지 유추도 가능하다.(웃음)
꽃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품종이 유행하면 아예 동이 나 버린다. 어느날 찾으러 가면 값이 한참은 올라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을 비롯해서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조차 그런 현상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물론 소비자, 클라이언트가 원하면 그 방향을 따라야만 하는 것도 있겠지만, 창작자의 영역에서 어떤 책임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BRIQUE Magazine

 

취향을 제안하고 미적 관점을 제시하는 크리에이터로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게 뭔지,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 온전한 나의 것은 뭔지, 진지한 고민을 거쳐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해 시야를 넓히고 평소 내가 관심 갖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걸 쌓아두는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 시기에 반짝 예쁜 것들, 유행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제한된 기간 안에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수소문 한들 카피(copy)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고, 결국 너도 나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어려서부터 자꾸만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다. 지금 당장 멋지고 유명한 공간이 아니라 다채로운 관점의 공간들을 보여주면서 자기 취향을 찾고 또 알게되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면 내 것, 내 스타일을 정확히 알게 되고 비로소 꽃 한송이를 꽂아도, 풀 한포기를 둬도, 양초 하나를 밝혀도 무언가 색다른, 느낌 있는 공간이 그려진다.

 

ⓒBRIQUE Magazine

 

한국 스타일그리너리

 

꽃을 꽂는 스타일에도 세계적인 유행이 있다. 구조적인 독일 스타일, 단정한 영국 스타일, 자유 분방한 프랑스 스타일 등등. 요즘 SNS에서는 선이 살아 있는 일본의 이케바나를 유럽 사람들이 응용해 모던하면서도 오브제처럼 구조가 드러나게 꽂은 스타일도 많이 보인다. 

 

왼쪽부터 제인 페커(영국), 카트린 뮐러(프랑스), 클라우스 바그너(독일)의 작업들. 각각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각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계정

 

그런데 알다시피 한국 스타일은 없다. 예전에는 나 또한 그저 내가 보기에 예쁜거, 내가 하기에 즐거운 걸 하면 그대로 만족스러웠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은 ‘한국 스타일은 뭘까’하는 고민과 함께 그것을 향한 사명감 같은 것도 갖게 된다. 전문 분야 사람들을 만나면 늘 의견을 여쭤보고 토의를 하지만 도달하는 합의점은 그렇다. 태극 문양을 넣고 기왓장을 올리는 게 한국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한국 사람들이 만들면 한국 스타일이라는 것. 카페를 만들든, 노래를 만들든, 화장품을 만들든,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고 한국인들이 사랑하면 그게 바로 한국 스타일인 것이다. ‘K-beauty’라고 해서 동백꽃을 짓이겨 넣고 분필을 갈아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웃음)  

 

하수민 대표가 연출한 의류브랜드 ‘구호KUHO’의 서울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 ⓒ삼성물산 KUHO
ⓒBRIQUE Magazine

 

과거에는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내 손이 가는대로 했다면, 지금은 우리 한국인들이 왜 이걸 좋아하는지, 우리 눈엔 왜 이게 예쁜지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단단한 토대 위에 나름의 스타일을 세워 나가는 과정 중에 있지 않나 싶다. 그 일환으로 시그니처 상품이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구호 선생님의 브랜드 ‘구호KUHO’나 편집샵 ‘비이커Beaker’, ‘보그 마켓Vogue Market’에 그로브 나름의 시그니처인 ‘그리너리 백’을 선보인 적 있다.

 

올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보그 마켓’에 참가한 그로브 부스(왼쪽)와 당시 판매했던 ‘네온 그리너리 백’ ⓒVogue Korea ⓒGrove

 

처음 시작은 ‘사람들에게 그린을 팔아 보자’였고, 요즘에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예쁜 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 그린을 둘 곳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장미 한 송이를 결코 심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한송이지만 들고 돌아다니자면 어마어마하게 거추장스울 수 있는게 장미 한송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수팩에 시들지 않게 물처리를 하고 긴 끈을 연결해 갖고 다니며 쇼핑을 계속하기 쉽도록 하자 싶었다. 집에 돌아가면 방수팩 자체로 화병이 될 수도 있고 문고리 등에 매달아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면 식물을 난생 처음 들이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보그 마켓을 비롯해 공개된 곳에서 모두 반응이 좋았고 지금은 우리가 ‘아니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와?’라고 생각할 정도로 멀리서 그리너리 백을 찾아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도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사러 온다. 

 

꽃집 그로브의 시그니처 상품인 ‘그리너리 백’ ⓒGrove

 

K-pop과 K-beauty를 넘어 이제는 K-style 자체에 세계 사람들이 관심 갖는다. 파리 등 유럽 도시에 가면 꼭 꽃을 직접 구매해 본다. 어차피 집에 가져가서 각자 취향대로 꽂아 두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꽂집에서도 그냥 소비자가 고른 대로 묶어서 말아주는게 전부다. 한국은 꽃다발을 하나의 완제품으로 선물하는 문화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이미 한국의 포장법, 꽃 묶음을 세련되게 상품화하는 법을 배우러 많이 찾아온다. 

 

꽃 패키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편지 ⓒBRIQUE Magazine
셀로판지에 꽃을 감싸 코사지를 곁들여 편지를 고정한다. 그로브 라벨이 어우러진 멋드러진 종이 가방에 담아 내면 근사한 선물이 된다. 다름 아닌 한국 스타일이다. ⓒBRIQUE Magazine

 

보통 파리나 런던으로 꽃을 배우러 간다. 반면에 그들이 우리에게 배우러 오거나 우리가 그들을 가르치러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유럽의 선진국은 참 가진 것이 많은 나라들이다. 지역과 도시별로 특색이 있는 것도 분명하고, 유구한 역사와 예술 덕분에 무엇을 어떻게 가져다놔도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공간들이 대부분이다.
얽히고 설킨 전봇대와 오만가지 조화롭지 못한 간판들, 하얗다 못해 퍼런 공업용 페인트가 발린 벽과 형광등. 이런 환경에서 대한민국의 플로리스트들이 그 날카로운 감각으로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도 더 강하게 느꼈다. 우리가 더 큰 세계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어느 날 하수민 대표의 어레인지먼트 ⓒGrove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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