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짓는 내 공간이 어디 있으랴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② 여주시 목공방 ‘수연목서’ 최수연 대표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태진  사진. 김태진

 

<브리크brique>가 그동안 기록해 온 1000여 곳의 공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공간을 지탱하고 있을까? 아카이브에 쌓인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꺼내 다시금 살펴보는 과정에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사진 속 공간은 티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웠지만 시간이 멈춘 듯했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은 지금까지 브리크가 기록했던 공간을 다시 찾아 안녕을 묻고, 기획자인 건축주와 실제 공간 사용자를 만나 시간의 켜가 쌓이면서 가져다준 지혜를 담고자 하는 기획이다. 공간에서 누적한 시간이 건축주 또는 사용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당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 발견하게 된 공간의 보물 같은 쓸모가 있었는지, 만약 다시 공간을 만든다면 줄이고 싶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등 솔직한 사용자 경험을 담아볼 예정이다.

이 기록이 각자가 사용하는, 나아가 미래에 꿈꾸는 공간을 조금 더 입체적이고 밀도 높게 바라보고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조금의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
② 여주시 목공방 ‘수연목서’ 최수연 대표

 


 

자신만의 공간을 지었다는 것은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금고를 두둑이 하는 일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축을 정한 것일 테다. 에디터가 만난 수연목서의 최수연 대표는 후자에 가까우며, 그는 주어진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수연목서’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취향에서 끌어올린 ‘실용’이라는 자신만의 건축 원칙 또한 흔들리지 않았다. 짓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임에도 말이다. 사실 그의 뚝심 뒤에는 주어진 삶의 조건과 욕심 사이에서 고민 끝에 결정하고, 재고하다 시간에 휩쓸려 잠시 잊고 다시 불을 지피기를 반복한 흔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수연 수연목서 대표 ©BRIQUE Magazine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도화지처럼

 

책방과 카페, 작업실과 갤러리가 함께 모인 수연목서는 초기에 작업실로만 계획됐다고 알고 있어요.

맞아요. 처음 계획했을 땐 오로지 목공 작업실만을 위한 공간이었어요. 200평 부지에 120평, 두 채로 구성된 수연목서 중 큰 채에서는 목공 작업과 사진 작업을, 작은 채에서는 작업실에서 제작한 액자나 가구,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만 사용하려던 게 초기 계획이었어요.

수연목서는 2019년 12월 31일 사용 승인을 받았어요. 그리고 2021년 3월까지 1년 3개월가량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았어요. 이 큰 두 채의 건물을 저와 아내의 작업실로만 사용했죠. 1년 동안은 수연목서 안에서 가족끼리 영화를 보거나 지인들과 작품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공간으로 사용했었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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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카페와 책방을 공간에 넣으신 건데,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페와 서점을 공간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여러 가지인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공간이냐 물어온 사람도 많았어요. 카페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요. 지인들도 수연목서에 올 때면 커피라도 팔아야 전기 요금이라도 낼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시기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카페를 운영할 겨를이 없었죠.

그러던 중 7년 전 일기장에 적어놓았던 글을 발견하게 됐어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저의 오래된 각오였다는 걸 다시 발견하게 됐죠. 그 각오가 바탕이 되어 수연목서에 책방과 카페라는 콘텐츠를 채우게 된 거죠.

 

지금의 수연목서가 있기까지,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셨나요?

총 15년 정도 걸렸는데, 그중 10년은 욕망을 정리하며 자금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고 나머지 5년은 그 욕망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밟아나갔던 시간이었어요. 

준비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수연목서의 전신이었던 10평 목공소가 떠올라요. 그 이름은 제가 붙인 이름인데 집 마당에 마련된 10평 남짓한 작업실이었죠. 1층은 공방이었고 2층은 암실로 사용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충분한 크기의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약 15년 정도 작업하다보니 어느 순간 더 넓은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오르더라고요. 그 욕망의 발견이 마치 선택의 순간 같았어요. ‘더 큰 공간으로 갈 것이냐’, ‘지금에 만족할 것이냐’ 두 선택지 앞에서 고민했고, 더 큰 공간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선택하고 이를 구체화하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볼 수 있어요.

 

©BRIQUE Magazine(좌), ⓒYongsoon Kim(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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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좌), ⓒYongsoon Kim(우)

 

실용적인, 너무나 실용적인

 

수연목서의 디자인 과정을 들려주세요.

수연목서의 디자인은 서울시립대 건축학과의 이충기 교수의 선택이었어요. 2018년에 이충기 교수와 지인, 저와 셋이 유럽 여행을 떠났었는데, 여행길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이 교수에게 작업실 하나를 짓고 싶다는 고민을 전했죠.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교수의 스케치가 마음에 들어 시작했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5개월 정도 설계 기간을 가졌고, 2019년부터 짓기 시작해 그해 말에 완공했어요. 이 시점은 10년간 예산을 확보하고, 공간의 목적과 대지 등 모든 준비기간이 끝난 뒤였어요.

초기에는 이 교수가 목공 작업실이 될 수연목서를 목조로 짓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었어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죠. 수연목서는 철근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을 계획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했어요. 철근콘크리트와 벽돌 건물이 관리하기도 쉽고, 장기적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죠. 오랜시간 목조주택에 살아봤는데 관리도 어렵고 중간중간 보수도 많이 했던 경험도 철근콘크리트를 선택하는데 한몫 했고요.

 

수연목서 큰 채에 마련되어 있는 최수연 대표의 개인 작업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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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판단이 돋보이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공간의 크기도 120평으로 계획해달라고 주문했어요. 소방법 상 120평이 넘어가면 필요한 설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추가적인 건축비가 발생하죠. 더 크게 키우고 싶었고, 심지어 200평 부지에 건폐율 40%, 용적률 200%까지 가능했으니 최대 160평까지도 지을 수 있었죠. 하지만 그 정도까지 크기를 키우는데 드는 건축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현장에서의 소통 문제 등 수연목서를 지으면서 겪게 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시공사와 소통은 건축사무소에서 주로 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자주 와서 체크했죠. 설계대로 진행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면 설계사무소에 전달하는 식이었어요. 한번은 바닥 벽돌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작업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깔고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곧바로 체크해줬습니다. 3분의 1정도 작업했는데 다 걷어내고 다시 했어요. 현장에서의 실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는 바로바로 수정하면 되죠.

 

수연목서 카페 공간을 즐기고 있는 손님들 ©BRIQUE Magazine

 

수연목서를 짓는 과정에서 예산적인 부분으로 어려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예산이 해결됐으면 더 일찍 수연목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거예요. 다니던 회사도 곧장 그만뒀을 거고요. 경제적인 문제는 10년간 준비와 고민을 반복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해요. 게다가 지금은 건축비가 2.5배 가량 오른 상태라고 하니, 만약 수연목서 만큼의 공간을 지금 짓겠다고 나서면 저로서는 힘들었을 겁니다. 주변에서도 그때 짓지 않았더라면 영영 못 지었을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계약하기 전 견적서 이외의 추가 비용은 없다고 못을 박고 시작했어요. 견적서에서 벽돌 종류와 가격, 창문 조명 등등 이미 디테일을 다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면 문제가 없었죠. 추가 비용은 말 그대로 추가로 공사하니까 생기는 비용이에요. 저는 인테리어도 없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어요. 콘크리트 거푸집 떼면 더 이상의 인테리어는 없을 거라고 명확히 주문했어요.

수연목서는 실용이라는 키워드가 콘셉트였어요. ‘심플, 간지’가 디자이너에게 주문했던 주요 핵심이었고요. 수연목서의 모습이 겉으로 봤을 때 적당히 고급스럽게, 하지만 실용적이고 멋진 건물이기를 바랬죠. 겉은 화려하지만, 내실이 없는 것보다 담백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이 반영됐기도 했고요.

실용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마당에 돌을 깔고 싶은 걸 예산상 벽돌로 바꿨어요. 나무 데크를 쓰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나무 데크는 시간이 지나면 썩거나 부서지니까 거절했습니다.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수연목서>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수연목서>

 

켜켜이 쌓인 경험이 녹아든 공간

 

대표님의 전직이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어요. 졸업한 뒤로는 직업(job)으로서 사진을 계속 해왔죠. 잡지사 사진 기사로 총 25년 정도 일했어요.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에서 20년간 일했고, 여성지나 시사지, 월간 중앙이나 레몬트리까지. 프리랜서로도 활동했어요.

 

그렇다면 목공은 나중에 배우신거군요.

목공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할 때 배웠어요. 아이들을 위한 가구를 만들고 싶어 시작했어요. 막상 시작했더니 적성에 맞더라고요. 제가 구상한 디자인을 실체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죠. 보통 다른 사람이 디자인 해둔 물건을 사서 쓰는 게 일반적인데,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니 성취감도 있고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몰입감도 즐겁고요. 덕분에 스트레스도 풀 수 있습니다.

목공은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사진 작업과 비슷하지만 또 달라요. 사진도 무언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구상하는 과정은 같지만, 직관적인 결과로 보여주는 사진은 작품에서 준비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목공은 정교한 작업도 필요하지만 품과 정성이 많이 드는 단순노동의 과정이 필요해요.

저는 수연목서 안에서 스위칭 하듯 사진 작업과 목공을 번갈아가면서 합니다. 사진 작업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자리만 옮겨 목공을 손에 쥐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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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이라는 매체에서 일했던 경험이 지금의 수연목서와 관계가 있나요?

아무래도 사람은 삶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칠 테죠. 저의 경우에는 20~30대 시절,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앞서 살아갔던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나 인생철학을 듣다 보니 어느새 저의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됐어요. 결국 지방에서 자리 잡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과 현재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나요?

김용택 시인과 문정현 신부님이 떠올라요. 먼저 김용택 시인의 경우에는 시골에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가 없더라고요. 문정현 신부님은 자신의 소신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고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죠.

그분들에게서 저의 모습을 본다면, 그저 자기 삶대로 치열하게 살아내겠다는, 그러면서도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는 모습이 공통점인 것 같아요. 도시의 사람들은 매일 같은 곳으로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즐기며 살죠. 저 역시 그랬어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도시에서 출퇴근했고 심지어 이곳에서 광화문까지 출퇴근하던 기간도 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수연목서의 삶을 살기 위해 타협한 시간들이죠. 서울과 멀어지면 경제활동이 어렵게 되니까요.

생각을 접었다가, 또 잊었다가 생각나고 그러다 또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밟은 다음 실질적인 미팅을 진행했을 때 결과물을 보면, 과거에 가졌던 생각들이 어느새 이루어져 있어요. 생각의 기초를 쌓아두지 않으면 건축물 안에 들어있는 콘텐츠는 갑자기 생기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는 오해 중 하나가 건물이나 이 안의 콘텐츠가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해서 만드는 거로 생각을 해요. 그 콘텐츠나 공간이라든지, 결과물은 끊임없이 쌓아온 생각들이 축적돼 나온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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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수연목서는 꾸준히 콘텐츠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남을까요?

앞으로도 공간을 사용하는 개념은 지금처럼 유지될 것 같아요. 콘텐츠와 문화를 파는 공간이요. 다만 공간을 재배치한다거나 가구 재배치하는 등 사소한 변화는 가능할 텐데, 공간 안에 담겨 있는 하드웨어는 다 갖춰졌으니 콘텐츠만 변화하겠지요. 새롭게 디자인한 가구나 새로운 사진, 주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새롭게 출판된 책이 나올 테고요.

이 공간은 문화를 생산하는 의미가 커요. 커피 마시면서 단순히 소비하는 문화보다 이 공간에 와서 사진도 보고, 책도 읽고, 전시도 보면서 문화를 키워가는 거죠.

 

수연목서를 서울이 아닌 여주에 짓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위치를 택한 것은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소위 말하는 좋은 땅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 것도 아니고요. 이 근처에 살기도 했고, 땅은 매입할 수 있을 때 매입해 두고 건물은 여유롭게 지을 작정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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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철학이 없다는 말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와닿습니다.

운영하면서 느꼈는데 ‘그 땅이 정말 좋은 땅이고 안 좋은 땅인가’에 대한 판단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죠. 만약 땅 주인이 땅을 사다가 창고를 지어 건축자재를 쌓아놓고 방치해둔다면 그 땅은 창고라는 용도로 규정되는 것이죠. 저처럼 배추밭을 사다가 수연목서를 짓고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면 이 공간은 문화 콘텐츠의 공간으로 규정되는 것이고요. 결국 사는 사람이 땅의 정의를 규정해요. ‘이 땅이 좋다’, ‘저 땅이 좋다’라며 좋은 땅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의아하더라고요. 자기의 조건에 맞는 땅을 찾아 무언가를 지은 다음 본인이 무엇을 하며 사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말이죠.

사실 땅 자체는 고정되어 있잖아요. 자기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가치가 바뀌는 거죠. 땅을 이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윤을 남겨주는 땅이 좋은 땅일 것이고, 살기 좋은 조건에 집을 짓고 싶은 사람에겐 그 조건에 맞는 땅이 좋은 땅일 테죠. 각자의 이치에서 자신에게 좋은 땅을 찾는 거지 절대적인 가치는 없어요. 대신 저는 땅에 건물 하나 세우는데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을 세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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