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정원

식물과 정원을 기반으로 공간과 콘텐츠를 만드는 ‘서울가드닝클럽’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지아  사진. 윤현기  자료. 서울가드닝클럽

 

서울가드닝클럽은 식물과 정원을 기반으로 공간을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이다. 흔히 아는 정원뿐 아니라 모르는 정원까지 만들어 내는 이들은 그 이름을 따라 도시 문화로서의 가드닝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오래된 빌라 옥탑에 사람들을 모아 작은 정원을 꾸리는 일에서부터 작가들의 정원, 연극 속 정원, 먹고 즐길 수 있는 생산적인 정원까지. 서울가드닝클럽을 운영하는 이가영 대표와 권오은 실장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가드닝에 대해 물었다. 

 

이가영 대표(왼쪽), 권오은 실장 ⓒBRIQUE Magazine

 

가드너의 일

서울가드닝클럽을 운영하는 멤버들을 소개해 주세요. 

이가영 서울가드닝클럽은 저랑 권오은 실장님이 운영하는 2인 스튜디오예요. 사명이 어반이슈Urban Issue고 그 안에서 ‘요즘 도시’와 ‘서울가드닝클럽’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가드닝클럽은 프로젝트에 따라 객원 멤버들과 협업하는 구조로 일하고 있는데요. 객원 멤버로는 콘텐츠 기획자, 가드너, 요가 선생님 이렇게 세 분 정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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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가영 저는 원래 광고회사에 다녔어요. 퇴사를 하고 식물과 조경 분야에 관심이 생겨 전직을 한 케이스죠. 그 과정에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오은 실장님은 학부 때 조경을 전공하고 조경 설계 일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본인의 일을 확장하고 있는 과정 중에 뜻이 맞아 서울가드닝클럽에 함께하게 됐죠. 지금처럼 회사의 단계로 발전하기 전에는 ‘공유정원’이라는 프로젝트로 서울가드닝클럽을 시작했어요.

 

공유정원 프로젝트 ⓒSeoul Gardening Club
공유정원 프로젝트 ⓒSeoul Gardening Club

 

공유정원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이가영 매봉역 뒤에 있는 오래된 빌라 옥탑에서 정원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옥탑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었는데, 제가 가진 공간과 가드닝 지식을 나누며 사람들을 모아 함께 작은 정원을 꾸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어떨까 싶었죠. 서울 한복판에서도 작지만 온전한 자신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요. 그렇게 서울에서 모여 가드닝하니까 이름은 서울가드닝클럽이 됐어요. 작지만 끝은 성대하리라 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인데 여기까지 왔네요. (웃음)

 

Labor, Work, Action이라는 모토가 흥미로워요.

이가영 제가 다른 일을 하다 식물도 배우고, 정원도 배우고 급기야 대학원까지 가게 된 거잖아요. 그러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러다 로버트 포그 해리슨의 『정원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한나 아렌트가 말한 인간의 조건이 언급되더라고요. 아렌트가 말한 세 가지 조건 Labor, Work, Action이 가만 살펴보니 가드닝에 부합하는 일이었어요. 자연과 연결되는 참된 노동(Labor),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도시에 표현하는 일(Work), 그리고 주변 사회-환경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Action). 이렇게 세 가지 의미를 정원이 다 내포하고 있어요. 왜인지 모르게 식물을 직접 만지고, 정원을 조성할 때 기쁜 이유가 이 세 요소로 설명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울가드닝클럽의 모토로 삼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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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은 노들섬 내 ‘식물도’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 공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요?

이가영 2019년 8월에 노들섬이 개장했는데, 그 이전 봄부터 운영사 측에서 식물 관련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협업을 제안해 왔어요. 그때부터 함께 공간을 논의하다가 입주는 노들섬 오픈하면서부터 하게 됐죠. 식물도에는 식물 관련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터 네 팀이 입주해 있어요. 각자 작업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고요. 저희도 들어와서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코로나19로 계획했던 프로그램들이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지금은 주로 작업실이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노들섬에 위치한 ‘식물도’ 전경 ⓒBRIQUE Magazine
노들섬에 위치한 ‘식물도’ 전경 ⓒBRIQUE Magazine

 

지금까지 진행해 온 가드닝 작업이 굉장히 다양한데요. 인상 깊은 작업을 소개해 주신다면. 

이가영 서울가드닝클럽이 한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로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작업이 있어요. 바로 서울로7017 하부에 조성한 ‘초속정원’이에요. 대학원생일 때 공공정원 공모전에 당선되어 진행한 프로젝트인데요. 지금까지도 했던 작업 중에 좋아하는 작업이 뭐냐고 물어보시면 이 작업을 말씀드리곤 해요.

도시의 심장부와도 같은 서울역 앞에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없는, 사계절 피고 지는 초화류를 식재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한 작업이죠. 시민들이 자연의 시간을 돌려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누구든지 가서 볼 수 있는 정원이라는 점도 중요했고요. 모두에게 열린, 디자인된 정원이 도시에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조성한 지 이제 한 3년 정도 됐는데, 시민 정원사분들이 계속 관리해 주셔서 지금까지도 작동을 잘하고 있어요. 대표작이자 뿌듯한 작업 중 하나죠. (웃음)

 

서울로7017 하부에 조성된 ‘초속정원’ ⓒSeoul Gardening Club
서울로7017 하부에 조성된 ‘초속정원’ ⓒSeoul Gardening Club

 

권오은 제주도의 예술 작가들이 거주하면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스의 정원 조경을 담당한 적이 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분들이 저희 작업을 보고 영감을 받아 뭔가를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만들면서 내내 즐겁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으셨으면 좋겠다, 상상하며 작업한 부분이 많았어요. 클라이언트분 역시 식물이 자라는 걸 지켜봐 주실 수 있는 아량이 있는 분이어서 실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사이트이기도 했고요.

 

제주 아티스트 레지던스 조경 작업 ⓒSeoul Gardening Club
제주 아티스트 레지던스 조경 작업 ⓒSeoul Gardening Club

 

가드닝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가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작은 사이트일 수록 더욱더 다양한 종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조경이 이루어진 공간에서 우리가 식물의 이름을 아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직접 경험해 본 식물의 종들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고요. 그래서 도시 내 조경 공간에서의 경험 자체를 좀 더 확장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건물의 위치나 해의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땅의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는 부분과 정원에서의 활동, 즉 이용성의 측면도 물론 고려하고요.

 

여러모로 색이 많은 작업들을 보여주시는 것 같은데요. 

이가영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 아닌 이상, 의도적으로 한 가지 종만을 도열하는 식의 디자인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경우에는 모던한 스타일로 해 달라거나 유럽풍으로 해 달라는 식의 스타일에 관한 요구 사항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정원은 스타일을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어서인지 믿고 맡겨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잘하는 스타일을 먼저 말씀드리죠. 모던한 스타일도 보여드리긴 하지만, 오히려 저희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리기도 해요.

 

제주 아티스트 레지던스 조경 작업 ⓒSeoul Gardening Club

 

다양한 색을 사용해 작업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권오은 조경 작업을 하면 설계부터 현장까지 컨트롤하는데, 워낙 다양한 수종을 쓰다 보니 식물들의 조화를 맞추는 데 품을 많이 들이게 돼요. 각도를 조금만 달리 해도 모양이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세심한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거죠. 현장에서 그런 부분들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이가영 아무래도 색을 다양하게 쓰면 중구난방이 되기 쉬워요. 리듬감이나 조화를 고려해 강약조절을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권오은 왜 지나가다 조경 공간을 무심코 볼 때, 인위적으로 조성된 정원도 예쁘지만 언덕이나 화단에 자리 잡은 오래된 정원도 예쁘잖아요. 여러 가지가 함께 있어도 자연스럽고요. 저희 가드닝 작업도 인위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노력해요.

 

ⓒSeoul Gardening Club

 

창의성을 요하는 작업일 것 같은데요. 

이가영 이제 한 3년 정도 작업을 하다 보니 2년차 때 했던 것과 지금이 또 다르구나 싶어요. 처음에 이렇게 심었을 때는 이 조화가 예뻤는데, 이제 그 식물들이 자라나면서 어떤 식으로 모양이 바뀌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 거죠. 시간을 들여 알아가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정통 조경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직접 해 보면서 알아가는 부분이 커요.

권오은 이론적으로도 물론 다층식재라고 해서 낮은 식물부터 점점 더 높은 식물까지,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배우기도 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각 식물이 커졌을 때의 높이나 모양은 환경마다, 식물 종마다 너무 달라요. 아무리 이론을 알아도 결국은 경험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이가영 한 십 년 해야 잘할 것 같은데요. (웃음) 가드닝 작업을 해 둔 게 2-3년은 지나야 본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요.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정원 디자인 작업에 대해 먼저 여쭤봤지만, 조경에서 확장되는 서울가드닝클럽의 다양한 작업들이 인상 깊었어요.

이가영 광고 일을 한 경력이 있다 보니 그 커리어를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접목하려는 의지가 컸어요. 오은 실장님도 조경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부분이 있었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반이슈라는 회사 내에서 요즘도시와 가드닝클럽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 저희는 도시 문화, 도시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안에서 가드너로서 식물 기반의 공간을 만들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거죠. 그 표현이 꼭 물리적인 식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글이나 음악처럼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더 다양하게 펼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서로 맨날 후회하죠. 왜 나를 말리지 않았느냐며. (웃음)

 

콘텐츠로서의 가드닝 작업 중 일부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가영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라는 제목의 연극에 정원을 조성하는 작업을 했어요. 실내지만 연극의 내용을 잘 표현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무대연출 쪽 의뢰에 즐겁게 진행했던 작업인데요. 콘텐츠로서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 왔는데, 상반기에 그런 방향으로 펼칠 수 있는 활동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 조경 작업 ⓒSeoul Gardening Club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 조경 작업 ⓒSeoul Gardening Club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정원 만들기》전시의 리서치에도 참여하셨다고요.

이가영 피크닉 팀에서 정원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리서치를 맡겨 주셔서 기획 초반에 길라잡이 역할을 했죠. 정원의 의미나 동서양 정원의 차이, 도시 사회적 맥락에서의 정원의 의미, 요즘 정원의 트렌드 등 전반적인 리서치를 담당했어요. 한두 달 정도 책을 쌓아놓고 정원 역사와 중요한 저술가들이 말하는 정원의 의미 같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많은 공부가 됐어요. 그런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좋아하고, 또 거기에 잘 맞는 그룹인 것 같아요. (웃음)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와 ‘그로서리 가든’이라는 프로그램도 협업하셨는데요.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권오은 그로서리 가든이라는 주제로 처음 선보이는 콘텐츠였는데, 한국의 토종 허브들과 계절 채소들을 조합한 팟을 선보이는 행사였어요. 미나리, 곰취, 당귀 이런 채소들도 사실은 향이 있는 허브잖아요. 인식하지 못하지만 토종 허브인 셈이죠. 그 부분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식용 식물들도 미적으로 관상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키워서 먹는 데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이 식물들을 모아두면 어떤 종은 넓은 잎, 어떤 종은 뾰족한 잎 이렇게 다 다르거든요.

이가영 말하자면 심미성 있는 원예 정원 식물과 생산성 있는 텃밭 식물을 결합한 작업인 거예요. 텃밭 식물들도 아름다운 정원의 소재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어요. 동시에 먹고 기르는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고요. 이런 식으로 정원 디자인을 잘 하지는 않는데, 어떻게 보면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인 거죠. 지금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전시 《파밍 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와 협업한 ‘그로서리 가든’ ⓒSeoul Gardening Club

 

권오은 그로서리 가든을 계기로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2층 공간에 허브 가든을 조성하기도 했어요. 개별 화분 하나하나 늘어놓는 방식은 아니고, 식물들의 조합을 보여주는 프로젝트였어요.

이가영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면, 컴패니언 플랜팅companion planting이라고 해요. 지속 가능한 정원 혹은 텃밭을 디자인하는 방법인데, 상호 보완적인 식물들을 한데 두는 거예요. 예를 들면 시금치와 무를 같이 심으면 시금치에 꼬이는 벌레가 무잎을 먹는데, 무의 생장에는 방해가 안 되는 식의 과학적인 상호 보완 작용을 활용하는 방법이죠. 일종의 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원리예요. 벌들이 식물의 수분을 도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처럼요. 가드닝클럽 공간 앞에 만들어 둔 화단에도 당근, 무 같은 채소들과 라벤더, 딜, 펜넬 그리고 나비와 벌을 위한 야생화를 함께 식재해 뒀어요.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2층에 위치한 ‘허브 가든’ ⓒSeoul Gardening Club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2층에 위치한 ‘허브 가든’ ⓒSeoul Gardening Club

 

가드닝은 환경과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네요. 농업과도 자연스레 이어지고요. 서울가드닝클럽이 생각하는 도시에서의 가드닝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이가영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가드닝이 식물을 기르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작업일 수 있어요. 그런데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되게 특이하고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식물들에 열광하게 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식물을 통해 주변 환경을 개선한다든지, 농업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친환경적인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그 영역이 확장돼요.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나 자연으로요. 내가 나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환경적인 부분들과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런 식으로 계속 확장하다 보면 식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각이나, 조경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각이라기보다는 지구인으로서의 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네요.

이가영 최근에 제가 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어요. 주택이 생기니 집에 작은 텃밭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 작은 텃밭에 토마토랑 가지, 허브 몇 가지, 작은 무, 당근 등을 심어 두고 소량씩 재배해 먹었어요. 근데 그렇게만 해도 생활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이 현저히 줄어드는 거예요. 말씀드린 지구인으로서의 자각이라는 게 이렇게 직접 실천해 보면서 경험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혹은 더 힙하게 정원이나 콘텐츠를 디자인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좀 더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려고 해요. 쓰레기가 덜 나오게 하거나, 사람들이 생산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의 방향을 고민하죠.

 

‘파밍 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전시 전경 ⓒSeoul Gardening Club
‘파밍 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전시 전경 ⓒSeoul Gardening Club
‘파밍 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전시 전경 ⓒSeoul Gardening Club

 

최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정원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도시의 정원문화와 관련해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요?

이가영 체감상 식물 관련 일을 하는 주체들이 상당히 많아졌어요. 퇴사하고 한참 식물을 배우고자 했을 때까지만 해도, 어디서 배울 수 있지? 하고 찾아보면 한 서너 군데 거론되는 곳이 다였거든요. 지금은 가드닝 클래스를 여는 곳도 많아졌고, 상품화된 식물들도 많고요. 시장이 커졌다는 걸 체감해요. 예컨대 상업 공간에 식물을 하나라도 가져다 놓으려고 하고, 외부 조경도 과거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다면 요즘은 그런 요소까지도 고려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희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웃음)

권오은 이 일을 하면서 SNS에서 그 주체들을 팔로업하고 있는데, 요즘은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식물에 관심을 두고 키우는 2-30대 젊은 세대가 확실히 늘어난 것 같아요. 예전에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이 중노년 여성들의 취미 활동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보다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죠. 이제 막 식물 문화에 뭔가 생겨나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이가영 맞아요. 그리고 최근 들어 이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되었죠. 자기만의 식물을 찾아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드물지 않게 보이고, 식물을 다루는 영역도 아주 다양해졌어요. 근데 정원문화가 과연 있나, 생각해 봤을 때 저는 아직인 것 같아요. 내가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정원문화라기보다는 식물 문화 혹은 실내 가드닝 문화 정도는 생긴 것 같아요. 실외 가드닝, 정원에 있어서는 아직 제약이 많은 듯하고요.

 

정원이라고 하기에 부족한 지점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서울의 정원문화, 혹은 식물 문화에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이가영 주거 문화의 아쉬움이죠. 정원문화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할 만한 게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서울의 주거 문화는 정원문화를 만들기에 명백히 한계가 존재하니까요. 누군가가 조성한 예쁜 정원이 많아진다고 해서 정원문화가 생기는 게 아니라, 내 일상의 공간, 주거의 공간에 가꿀 수 있는 정원들이 생겨나야 정원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주거 문화의 선택지가 다양해져야 정원문화도 함께 다양해질 수 있을 거고요. 공공영역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내 정원이 없어도 가드닝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 있겠죠.

정원문화 혼자 생성되고, 발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무리 멋지고 예쁜 걸 많이 보여줘 봤자 실현할 곳이 없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실내에서 여러 가지를 극복해 보려고 하는 기술이나 문화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인위적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권오은 과연 지속 가능한 문화인가? 싶기도 하죠.

이가영 그건 그 나름의 역할이 있겠지만, 실내에서의 가드닝만으로 정원문화가 확장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해결해 줘야 하는 부분이 크죠. 처음 시작했던 공유정원을 다시 진행해 보려고 하는 것도 그런 고민과 닿아 있어요.

 

공유정원 프로젝트 ⓒSeoul Gardening Club

 

공유정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정원을 경험하다 보면, 조금씩 정원을 원하는 주거 문화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이가영 확실히 수요가 생기면 바뀌어요. 예컨대 테라스가 예전에는 확장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테라스 있는 집을 더 선호하잖아요.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요. 타운하우스 형태라든지, 원룸이나 오피스텔 유형의 1인 주거 공간에도 옥외 공간들을 어떻게든 조금씩 넣어서 디자인하려는 경향이 있죠. 그건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설계인 거지, 건물주의 취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점점 바뀔 것 같기는 해요.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인상 깊었던 정원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이가영 서울은 아니고, 제주도에 개관한 스누피 가든에 최근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넓고 볼 거리가 많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좋아할 수 있게 꾸려져 있어요. 캐릭터숍을 상상하고 많이들 방문하는데, 무엇보다 정원이 콘텐츠와 잘 어우러져 있어요. 서울의 공간들은 약간 점잖빼고 무심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게 이 시대의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쾌활하고, 너무 감정을 드러내면 촌스러운 것이 되고, 다들 무심한 태도로 공간에서 적당히 힘을 빼고 있는 게 서울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죠. 스누피 가든에서는 사람들이 다 신나서 감정을 표출하고 다니더라고요. 그런 공간이 되게 오랜만이었어요.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에요. 누구라도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공간!

서울에서는 근래 성수동에 생긴 플라츠Platz의 중정 공간이 좋았어요. 좁은 진입로로 들어가다가 가운데 공간이 열리는 구조가 우리나라에 잘 없는데, 베를린 컨셉으로 디자인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중정 공간이 자아내는 느낌이 인상 깊었어요. 면적이 그리 넓진 않아도, 삭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꾸려져 있었던 것 같아요.

 

ⓒSeoul Gardening Club
ⓒSeoul Gardening Club

 

도시 문화 기획자라는 정체성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서울가드닝클럽의 계획을 들려주신다면.

이가영 도시라는 키워드 안에서 작업을 이어갈 것 같아요. 되게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을 중심에 두고 작업할 계획이에요. 준비 중인 전시의 타이틀도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이에요. 그로서리 가든 형태의 정원이나 직접 채소를 키워 먹는 삶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명하는 작업을 이어가려고 해요. 모든 작업을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되고 뜻이 맞는 정원주를 만나면 저희가 지향하는 가치와 개념을 담은 정원을 조금씩 이식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어요. 농사도 천천히 배워보고요.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공유정원을 사업화하는 일도 기획하고 있어요. 도시 문화로서의 가드닝을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활동을 펼칠 수 있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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