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라이프스타일’을 불어넣다

[도시를 바꾸는 기획자들] ②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네오밸류
손지호 네오밸류 대표 ⓒneovalue
에디터. 박종우  자료. 네오밸류

 

인류가 팬데믹 터널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2021년. 끝 모를 지난한 여정에 지치기 십상이지만, 도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묵묵히 열심을 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위기일수록 더 단단하게 몸을 곧추세우고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있기에 도시는 여전히 살만합니다.

<브리크brique>는 새해를 맞아 회색의 도시에 온기를 덧입히는 기획자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도시를 바꾸는 기획자들’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달라질 도시의 미래에 대해, 달라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당일배송, 새벽배송 덕분에 편리하게 쇼핑하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로 영화관조차 갈 필요 없는 요즘. 그럼에도 굳이 공간을 찾아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분위기까지 즐길 수 있는 식당과 카페, 감성을 채워 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미술관, 꼭 필요한 물건에 구매 재미까지 더하는 시장. 각자 다르겠지만 모두 그곳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즉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망설이는 요즘, 우리는 이 이유를 두세 번씩 곱씹어 생각한다.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하고.

지난 2019년 광교 신도시에 문을 연 이후 주목받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앨리웨이 광교’. 소규모 브랜드들을 맞이해 쇠퇴한 가로수길을 되살리고 있는 상업공간 ‘가로골목’. 이 공간은 모두 부동산 디벨로퍼 ‘네오밸류’가 기획,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네오밸류는 지역의 특성과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잘 살린 공간 개발로 ‘가볼만한 이유’을 콕 집어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업의 핵심은 상업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어떤 의미일까. 네오밸류가 그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손지호 대표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앨리웨이 광교 ⓒneovalue
가로골목 ⓒneovalue

 

상업공간을 전문적으로 기획, 운영해오셨죠. 상업공간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 그래도 네오밸류가 상업공간에만 집중하는 거냐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하지만 핵심은 주거를 포함한 지역의 환경이에요. 제일 많이 알려진 앨리웨이 광교도 아파트 1200세대와 상업 시설을 함께 만들어야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지, 앨리웨이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어요. 단순히 상업공간과 주거공간을 분리하는 개념이 아니라 앨리웨이가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들의 니즈를 반영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공간이 되었으면 했고요.

 

손지호 네오밸류 대표 ⓒneovalue

 

‘라이프스타일 공간’의 의미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기술이 발달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물질만 중요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탈물질주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인간 고유의 영역에 집중해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성수동 같은 골목상권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개성, 체험, 창의성, 독립성, 다양성 등을 제공하는 골목 가게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단순히 골목을 거닐면서 힐링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매력적인 감성과 생활 문화, 창조적인 도시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라 봅니다.

개발업의 측면에서도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분양 수익만을 좇는다면, 건설업의 하위 카테고리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유형의 건물 자산(hard asset)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콘텐츠’고요. 건물이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건 기본이고, 그 안에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를 채우고 이를 지속해서 관리, 운영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입주한 브랜드 중 상당수를 직접 기획해 운영하는 것도 말씀하신 부분과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13년에 분양한 ‘위례 아이파크 1차’는 네오밸류가 임대 대행 수수료를 부담해 책임 임차했고, ‘위례 아이파크 2차’는 전체 상업시설의 지분 40%를 소유하고 네오밸류가 상업시설을 관리했습니다. 광교 아이파크에 조성된 앨리웨이 광교부터는 아예 지분을 100% 소유해 운영하고 있고요.

공간과 콘텐츠, 운영,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될 때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동산 개발업을 담당하는 네오밸류가 공간을 조성하고, 자회사인 ‘네오밸류 프라퍼티’가 콘텐츠 기획 및 운영을 맡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광교에 오픈한 앨리웨이가 그 시작이고요.

 

ⓒneovalue
ⓒneovalue
ⓒneovalue

 

‘앨리웨이 광교’는 오픈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앨리웨이 광교는 기획단계에서 상업시설의 의미부터 재정의했어요. 단순히 먹고, 놀고, 쇼핑하는 일반적인 상업시설이 아니라, ‘경험과 추억을 쌓는 곳’으로 정의했죠. 이를 바탕으로 추억과 경험이 쌓이는 즐거운 ‘골목(alley)’의 정서를 광교 신도시에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골목마다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취향을 아우르면서 지역에 꼭 필요한 시장, 아이들을 위한 공간,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광교 호수공원과 맞닿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넓은 광장을 통해 머무름과 쉼이 있는 마당을 마련했습니다.

 

입주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백화점이나 쇼핑몰, 마트만 가도 필요한 건 이미 다 살 수 있죠. 더구나 앨리웨이 광교는 서울에서 떨어진 광교 신도시에 있어요. 일부러 이곳을 찾아올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했죠. 독자적인 개성이 있고 장인 정신이 있는 브랜드를 원했어요. 거기다 지역 주민으로서는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브랜드와 콘텐츠여야 하고요.

 

설명만 들어도 선정 작업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정말 힘들었어요. 위의 조건들을 다 갖춘 브랜드가 흔치 않죠. 그리고 수익성보다는 가치 유지가 우선시 되기 때문에 공간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운영 부담이 큰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직접 운영해 공간 운영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어요. 자체 기획 브랜드인 가드너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식물원’도 그렇게 탄생했고요. 그 외에도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가 설립해 운영 중인 ‘책 발전소’도 입점했죠. 뛰어난 큐레이션과 기획력을 갖추고 있지만, 대표님께서 책방으로서 수익을 내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투자하고 책 발전소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했어요. 이렇게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입점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식물원’의 플라워 마켓 ⓒneovalue
식빵 전문 베이커리 ‘밀도’ ⓒneovalue
남성 전문 라이프스타일 편집 숍 ‘스트롤’ ⓒneovalue

 

앨리웨이 광교 외에도 ‘가로골목’도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죠.

가로골목은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모이게 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가로수길 상권을 ‘힙’하게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2019년 9월에 선보인 공간입니다. 이지스자산운용과 함께 한 프로젝트였죠. 참여 브랜드들의 입점 기간이 대부분 3개월인 일종의 ‘팝업 스토어’ 형태예요.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동시에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닿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조성해 건물의 수익을 올리고 참여 브랜드들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상생 공간이죠.

 

가로수길은 수년 전부터 상권 쇠퇴기를 맞고 있는데요. 기획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가로수길은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어요.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소의 매력이 사라졌다는 것이 핵심이죠. 세계 어느 도시의 활성화된 지역을 가도 명품 브랜드 매장이나 거대 규모의 상점은 대로변에 자리해 있어요. 소규모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그 뒤쪽 구역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상업공간이 확장되는 형태를 띠죠. 그렇게 다양성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국내의 경우 대로변 쪽 건물의 임대료가 오르면 덩달아 인근 모든 지역의 임대료가 올라요. 그래서 상생이 쉽지 않은 거죠.
기존 리테일 시장에서는 권리금 및 보증금, 시설 투자로 인해 참신하고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들의 접근이 어려워요. 가로골목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내 인테리어 비용을 최소화하고 권리금 없이 100만 원의 예치금만으로 보증금을 대체하는 임대 방식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브랜드들이 부담 없이 영업할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규모의 브랜드와 상점이 공존하는 게 지역의 매력을 유지하는 핵심이겠네요.

진정한 로컬 커뮤니티란, 명품 브랜드부터 작은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다양한 형태의 상업공간이 공존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가로골목은 보증금을 받지 않고 3개월 단위로 임대 계약을 하는 유연한 구조를 시도하고 있어요. 소규모 브랜드와 창작자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거죠.

 

가로골목 ⓒneovalue
ⓒneovalue

 

코로나19로 지난해 공간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을텐데 변화를 어떻게 겪어냈나요?

우선 저희 공간들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앨리웨이 광교의 경우, 야외 공간인 광장을 활용해 고객들이 외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테이블을 추가 설치했고, 매장들과 협업해 테이크 아웃 메뉴를 강화했습니다. 야외에서 편히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피크닉 세트’를 컨시어지에서 대여하고, 야외에서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실내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시기를 타파하기 위해 야외 몰의 특성을 최대한 부각하려 노력했죠.
마스크에 가려져 표정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말자는 취지로 작년 3월 ‘스마일 마스크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 있는 직원분들이 스마일 마스크 배지를 차고 서로 예민한 시기를 잘 헤쳐나가려고 애썼습니다.

 

지난해 3월 앨리웨이 광교에 진행한 스마일 마스크 캠페인 ⓒneovalue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의 축소에 대응하는 비전과 목표가 있나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사람 중심의 맞춤형 복합 공간 개발이 저희 목표예요. 하지만 사실 사람 중심이라는 개념도 공급자 입장의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은 사람과 콘텐츠를 봐야 해요.
워런 버핏이 한 얘기 중에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 돈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Value is what you get, price is what you pay)”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결국 어떤 공간을 운영하더라도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핵심인 거죠. 우리는 가치와 경험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하니까요.

 

앞으로의 공간 비즈니스는 가치와 경험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앞서 경험과 가치의 중요성을 얘기했던 것처럼, 이제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경험하느냐가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하며, 추억과 경험이 쌓이는 것이 앞으로 계속 중요한 요소일 거라고 봅니다. 최근 네오밸류는 온라인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공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온라인 쇼핑에 더욱 속도가 붙고 있긴 하지만, 결국 온라인에서 얻을 수 없는 실제 경험의 가치가 고객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모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봅니다.

 

오는 5월 선보일 예정인 ‘앨리웨이 인천’ 예상 이미지 ⓒneo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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