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한옥에 사는 남자, 양태오

[People] 그에게 물었다. 대체 한옥은 어떤 곳이냐고.
ⓒYoonsuk Sim
글. 전종현   사진. 심윤석

 

양태오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우연찮게 한옥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에 거대한 물결이 찾아왔다. 창작자로서 평생 집중할 목표가 명확히 생겼고, 지금도 쉼 없이 항해 중이다. 2012년 운명처럼 이끌려 한옥에 거주한 지 올해로 8년 째. 전통의 미래를 고민하는 실험실로 제 집을 활용하는 그에게 물었다. 대체 한옥은 어떤 곳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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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계동에 자리 잡은 한옥에 살고 계세요. 여기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평소부터 ‘한옥에 살아야겠다, 꼭 한옥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란 목표를 가진 적은 없었어요. 당시 평창동에 있는 부모님 댁에 살았는데 좀 더 도심 쪽으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안국역 부근과 삼청동 인근의 집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한옥을 접하게 되었는데,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한옥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여기에서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서양에서 공부하며 너무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나의 정체성과 뿌리와 맞닿아있는 한옥을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요.

 

한옥의 어떤 면에 반하게 되었을까요?

이게 말로 설명하기는 참 힘들어요. 너무나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엮인 굉장히 감성적인 부분이거든요. 좋은 예술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같아요. 요소를 따져가며 말하기가 쉽지 않죠. 감성과 기분이 저절로 와닿았어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요.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한옥하면 우리에겐 굉장히 친숙하잖아요. 한옥 모르는 사람도 없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적지 않게 있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한옥의 대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한옥이 가깝지만 먼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죠. 문을 열고 실제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라고도 느꼈고. 무엇보다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많은 분들, 특히 외국인들이 아름답다는 탄성을 자주 외치는데, 아마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도심에서 느끼는 평온함, 마당이 주는 탁 트인 느낌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는 것 같아요. 사실 이사 온 지 8년이 넘어서 이제 그 첫 느낌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게 힘드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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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는 어떤 주거 공간에서 살아보셨나요?

제일 어렸을 때는 2층 양옥집, 그 다음에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유학 중에는 콘도미니엄, 귀국 이후엔 처음 살았던 양옥집으로 돌아왔죠.

 

대표적인 카테고리는 모두 경험하셨네요. 혹시 한옥으로 옮기면서 주거 경험이 확 바뀌었나요?

그렇게 확 달라진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집은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공간이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거든요. 하지만 공간만큼은 엄청 다르죠. 그동안 지내던 모던한 곳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이 열렸어요.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더욱 가까워지니까요. 한옥에 와서 한옥 공부도 굉장히 많이 하게 되었죠.

 

전에 살던 평창동에서도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았나요?

양옥과 한옥에서 느끼는 자연은 너무나도 달라요. 양옥에서 자연은 바라보는 풍경, 경치라는 인상이 강해요. 하지만 한옥에서는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죠. 한옥은 풍경을 품고 있어요. 한옥이 휴먼 스케일에 좀 더 맞는 자연이죠. 마당이라는 사각형 중정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변화는 무척이나 개인적이고 민감하게 다가와요. ‘ㅁ’자 한옥의 특성이에요. 어느 방에서도 마당의 자연을 볼 수 있어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어두우면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비가 오면 ‘비가 오는구나’ 한 번 더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죠. 특히 한옥은 빛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잘 담아내는 그릇이에요. 빛과 그림자, 그로 인한 다양한 색의 변화가 잘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죠. 벽이 거의 없고 창이 겹겹이 있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창이 받아들이는 빛 자체가 자연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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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답답함을 느끼진 않나요? 여기는 단층이고 전에 살던 곳은 2층이었잖아요.

전혀요. 한옥이 답답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매시간마다 바라보는 사람은 없어요. 결국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면서 잊혀요. 좋은 풍경이 당연시되죠. 오히려 한옥은 대문을 닫으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우주라는 느낌이 강해요. 다른 곳이라면 밖으로 다른 집이 보이고, 타인의 존재감을 신경 써야 하지만 여기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충분한 곳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한옥은 100년 된 집 두 채를 연결한 건물이라고 들었어요.

여기는 원래 건축가 김영섭 선생님이 사시던 곳인데요. 그분이 사실 때부터 ‘ㅁ’형 한옥 두 채가 돌계단을 통해 이어져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한옥의 이름은 청송재고 1917년에 지어졌어요. 아까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지나친 곳은 능소헌이고 1931년에 지은 건물이죠.

 

다른 인터뷰에서 이곳을 20세기 초 만들어진 ‘보급형 도심 기와집’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가 아는 고택과 여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보존해야 하는 한옥을 망쳤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인터넷 댓글에서요. 근데 이건 정말 짚고 넘어가야 할 큰 오해예요. 여기는 한마디로 개량한옥이에요. 20세기 초 도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당대의 생활상에 맞게 고쳐지은 한옥이거든요. 그래서 고택이 가지고 있는 유교적인 문화가 남아있지 않아요. 남녀 차별이나 상하 질서가 적용된 공간이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어 여기는 사랑채, 사랑방의 개념이 희박해요. 예전에 사랑채, 혹은 사랑방은 집주인, 즉 가장이 거주하는 곳이었어요. 보통 가장은 사랑채에서 책도 읽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손님 접대도 했어요. 여자가 들어오지 않는 남자만의 공간이었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니 옛날 양반들처럼 책 읽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어졌죠. 돈 벌러 나가야 하니까요. 여자만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안방 또한 부부 모두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고,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 자리 잡은 행랑채도 기능을 상실했지요.

 

결국 우리가 한옥과 고택을 동일시하면서 생기는 오해군요. 

그렇죠. 고택과 개량한옥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한옥에 살려면 한복 입고 아궁이에 불때야 한다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제가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여기는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이미 한 번 개량된 곳인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100년이란 시간은 길지 않아요. 프랑스 파리 같은 곳만 봐도 100년이 되지 않은 집을 찾는 게 더 힘들죠. 이런 개량한옥에서 역사를 말하며 보존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방향을 잘못 잡은 거라고 봐요. 그런 보존은 고택에 필요한 거지, 여기까지 과거에 머무르면 안 돼요. 이곳은 한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더 아름다워지고, 주거공간으로서 전통의 진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해요. 미래를 위한 한옥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케이스 스터디의 장인 거죠. 그래서 저는 8년 동안 이 집을 계속 바꿔왔어요. 조금씩 조금씩.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는 어떻게 바꾸셨나요?

외부는 거의 손대지 않고 유지 보수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여기가 한옥이 밀집한 곳이다 보니 개보수하는 일손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건 정말 행운이었죠. 김영섭 선생님께 아직도 감사한 일 중 하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옛 기와까지 주고 가셨다는 거예요. 유지 보수를 하려면 기와를 바꿔야 하는데 새 기와를 쓰면 멋이 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끔 ‘이 한옥은 내 한옥이 아니구나’ 생각할 때가 많아요. 다음 세대에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곳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럼 내부는요?

간단해요.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고쳤어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게 참 커다란 범주죠. 다 나열하기가 힘들잖아요. 동시에 너무 쉽기도 해요. 내가 기분 좋고 행복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면 돼요. 예를 들어, 저는 손님 접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이닝 공간이 꼭 필요했어요. 대신 부엌은 저 깊숙이 집어넣었죠. 제가 요리를 못하거든요. 이렇게 내가 살아왔던 방식을 인식하고 이를 공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있었어요. 여기가 한옥이라는 사실이었죠. 고택이 아니더라도 한옥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옥의 기본 구성에 대한 리서치는 필수였어요. 사랑방, 안방, 대청 등 각 공간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고치는 게 필요했죠. 저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청송재가 대표적이에요. 여기는 집 자체가 사랑채 역할을 해요.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제 생활 공간이 없어요. 여긴 손님을 위한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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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청송재가 ‘게스트 하우스’라고 소개가 됐더라고요.

영어에서 게스트 하우스는 주인 집이 존재하는 상황에 작은 집이 따로 있어서 찾아온 지인들이 하루 이틀 편하게 묵을 수 있는 곳을 말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는 게스트 하우스가 맞죠. 제 지인을 맞이하고 그들이 머물기도 하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은퇴 후 지금 외국에 계시는데 한국에 오시면 여기서 지내세요. 게스트로 말이죠. 근데 한국에서는 게스트 하우스란 개념이 다르게 퍼져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돈 내면 묵을 수 있는 곳으로 오인하더라고요. 여기는 엄밀히 제 가정집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게스트 하우스란 표현을 절대 쓰지 않아요.

 

아, 그럼 청송재는 옛 사랑채의 개념이 확실하네요. 그럼 능소헌은 어떤가요? 

능소헌은 저희 스튜디오가 쓰는 공간과 제 개인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있어요. 개인 공간은 저만을 위한 오롯한 곳이라, 거기에는 침실이 있어요. 정말 긴밀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이닝 공간도 있죠. 제가 들어올 때부터 지하가 파져있어서 거기에는 미디어 룸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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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계속 공간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어떻게 바꿨는지 궁금하네요.

큰 변화는 아니고요. 와인룸과 라이브러리를 만들었어요. 지금 저희가 있는 이 공간이 와인룸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와인룸 겸 티룸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조금 더 색다른 느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청송재에는 거실이 있고, 앉아서 생활할 수 있는 한국적인 공간, 침실이 있는데 다이닝 테이블을 놓아서 편하게 차를 마시고, 미팅을 하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거죠.

라이브러리는 행랑채에 만들었어요. 예전부터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모아서 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저희 직원들도 함께 공유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죠. 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행랑채인데 이미 기능은 상실했고, 구조 자체가 좁고 길어서 누군가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기엔 부적합해요. 그래서 아예 길고 좁은 벽 한쪽에 책장을 짰어요. 책을 보관하기에 용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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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산 지 8년째에요. 한옥 생활의 단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한옥을 너무 좋아하나 봐요. 단점이 분명히 있을 텐데 제가 잘 못 느끼고 있는지 진짜 단점이 없어요. 한옥의 모든 게 다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공간의 묘미를 더해줘요. 지금 저희가 있는 와인룸만 하더라도 방과 방 사이에 껴있는 공간이지만 답답하지 않아요. 한옥이 가진 레이어의 매력 덕분이에요. 문을 닫으면 안 보이고 열면 생각지 못한 광경을 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죠. 한옥이 품은 이런 매력은 굉장해요.

근데 사람들이 저를 만나 한옥에 대해 물어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한옥은 춥지 않나요?” 난방을 잘 하는데 왜 추울까요. 한옥이 춥다는 건 고택 이야기고 여기처럼 보일러를 다 깔고, 창도 유리를 끼워 단열한 곳은 추울 수가 없어요. 저희는 오히려 덥다고 느껴요. 요즘 시골에 가도 창에 유리를 써요. 창호지가 아니라. 그만큼 한옥이 사람들과 단절된 것 아닌가 싶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한옥에 살 때 변치 않는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막혀있지만 막혀있지 않다는 점.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지만 단절되지 않고 나만의 세계가 온전하게 주어진다는 점. 이게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봐요. 이건 마당의 존재와 레이어 효과 때문인데요. 항상 자연과 연결되어 답답하지 않아요. 해가 비추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호사를 부리면서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죠. 한옥은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해요. 대문을 닫고 집에 들어오면 분명 실내 공간이죠. 하지만 지붕 없는 마당 덕분에 동시에 실외 느낌이 나요. 집의 연장선 상에 존재하는 마당에는 자연이 살아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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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원래 좌식 문화를 기반으로 발달한 주거 양식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좌식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깊게 깔린 것 같아요. 그에 비해 이곳은 입식 공간에 가까운데 혹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고민이 되진 않나요?

입식 공간이란 게 뭘까요? 고택에 의자를 놓고 앉으면 그것도 입식이에요. 어떤 가구를 들이느냐에 따라 생활 양식에 차이가 있는 거지 좌식, 입식을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만일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게 좋다면 싱크대도 바닥에 파야 하는 걸까요. (웃음) 저는 바닥에 앉을 때 몸이 무척 불편해요. 그래서 의자와 테이블을 놓았죠.

물론 저도 고려하는 게 있어요. 전통 한옥에서는 창의 높이가 굉장히 중요해요. 바닥에 앉았을 때 주변 가구들은 창의 풍경을 가리면 안 돼요. 바깥을 보는 게 핵심이니까요. 그리고 누웠을 때 밖에서 자신이 누운 모습이 보이지 않아야 해요. 이런 걸 다 공부하고 습득한 상태에서 제가 사는 한옥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거예요. 양태오의 한옥이 전통 한옥의 요소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면 저는 다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다만 바라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죠. 전에는 이렇게 사용했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야 전통이 계승된다고 믿어요.

 

그럼 요즘 한옥에 사는 사람은 어떤 관점으로 한옥을 대해야 할까요?

기본을 지켜야 해요. 뿌리를 알아야 해요. 기초를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 본질을 잊어버리게 돼요. 제가 청송재를 의식적으로 사랑채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로서 전통을 계승했다는 걸 계속 주지하는 거예요. 어떤 공간에 손을 대는 건 공간이 지닌 역사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돼요. 한옥이 가진 기본 구성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변형이 용인되는 거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에 전통을 살릴 수 있는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제 화두에요.

그런 면에서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유행을 따라 우후죽순 생겨나는 요즘 한옥 공간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한옥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곳이 많아요.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소재와 시간에 국한돼있어요. 결국 한옥의 의미가 퇴색되는 거죠. 어떨 때는 일본의 와비사비 같은 모습이 차용돼 겉은 분명 한옥이지만 안에는 왜색이 가득한 광경도 목격해요. 그런 건 저는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해요. 저도 사람인지라 보고 나면 혹 영향을 받을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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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지네요. 능소헌과 청송재는 양태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은인과도 같아요. 여기에 살기 전만 하더라도 한옥에 대해 잘 몰랐고, 한국적인 문화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한옥이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이 집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구나, 제 일생의 화두를 얻었어요.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죠. 저는 전통적인 유산을 현대적이고 국제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해요. 그런 면에서 여기는 새로운 공간을 실험하는 플랫폼이자, 실험실 역할을 맡는 동시대 한옥이에요.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툇마루에요. 바깥에 앉을 수 있어서 정말 쉬어가는 공간이죠. 집 내부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한옥이 주는 평온함이 이런 거구나 굉장히 깊게 느낄 수 있어요. 이런 걸 즐기려면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집 안에서 가능하다는 건 굉장한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살 수 없는 경험이죠. 이 집은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게 허락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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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혹시 이곳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간대가 있을까요?

여름에는 저녁 7시 즈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아직 날은 밝을 때인데 그때 집도 숨을 쉬는 느낌을 받아요. 하루 안에 굉장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휴식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집이 알려주는 기분이죠. 이 집이 온전히 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에요. 겨울은 눈 올 때가 좋죠. 여름에는 비가 내릴 때. 아파트에서 느끼는 장마는 뭔가 나와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기는 문만 열면 돌과 소나무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비가 점점 더 내리기 시작하면 기와 색깔이 점점이 거멓게 변해요. 자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집의 섬세한 반응, 이 모든 게 굉장히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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