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고, 논 매고, 손님 묵는 땅끝마을 집

제2 인생을 위한 베이커리 겸 농가주택 해남 '삼산브레드'
ⓒSamganilmok
에디터. 장경림  글 & 사진.  권현효 삼간일목 책임건축가

 

지난해 무더운 여름 인터뷰로 만났던 삼간일목의 권현효 소장으로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은 따뜻한 글이 하나 도착했다. 2016년 완공한 ‘두루딱딱이 집’으로 삼간일목과 인연을 맺은 건축주가 해남 땅끝마을로 터전을 옮기며 두 번째 집을 의뢰한 내용이었다.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한 두 번째 집, ‘삼산브레드’는 아내가 취미로 이어온 제빵 기술을 살려 베이커리를 창업할 수 있는 공간과, 땅끝마을을 찾은 손님이 묵어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농가주택이다.
건축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시선과 건축주가 남긴 진심어린 삶의 이야기에서 마치 동화속 집처럼 평온한 일상을 잠시나마 상상하게 만든다. 멀리 땅끝마을에서 건너온 빵과 사람의 온기를 건축가의 글로 전한다.

 

ⓒSamganilmok

 

두 번의 만남, 인생 후르츠

몇 해 전 과천에서 작업했던 ‘두루딱딱이 집’ 건축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집의 설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그만 빵집을 겸한 집을 지으려고 해요. 설계를 맡아줄 수 있을까요? 근데 땅은 전남 해남 땅끝마을이에요. 너무 멀지요? 괜찮으실까요?”

두 번째 집을 설계하는 인연은 정말 쉽지 않다. 그 고마움만으로도 어디라도, 어떤 집이라도 설계해 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무조건 “알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얼마 후 사무실에 찾아온 건축주 부부(오제 어머니, 아버지)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귀촌을 결심하셨고 해남 삼산면 평활리에 논 1600평을 매입했다고 한다.

 

두륜산이 감싸 안고 있는 신기마을과, 들과 부지의 모습 ⓒSamganilmok

 

두 번째 집은 빵집과 농가주택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싶다고 하셨다. 아내는 빵을 굽고, 남편은 밭과 논을 일구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때 건축주가 책 한 권을 보여주셨는데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라는 책이다. 부제는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 88세, 85세 노부부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이 얼마 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무척 감동적으로 보았다며 내게 추천했다. 영화 제목은 ‘인생 후르츠’다. 얼마 뒤 나도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나 역시도 무척 감동했다. 특히 할아버지가 건축가여서 더욱….

 

‘삼산브레드’에 영감을 준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 2017년>

 

영화 중 노부부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와 텃밭 이야기 그리고 직접 가꾼 채소와 과일로 만든 제철 요리 이야기가 참 따뜻했다. 건축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설계 작품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렇게 두 번째 집의 설계는 시작되었다. 과천에 있을 때부터 손수 발효빵을 만들어 오신 오제 어머니는 본격적인 제빵 수업에 들어가셨고, 설계가 마무리될 즈음엔 프랑스에서 좀 더 전문적인 수업을 이어가고 계셨다.

 

들 한 가운데 ‘삼산브레드’ ⓒSamganilmok
‘삼산브레드’ 입구 ⓒSamganilmok

 

들 한가운데서

1600평의 논 가운데 빵집 부지 200평, 농가주택과 농가민박 부지 200평의 대지를 만드는 일은 새로운 땅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주어진 대지에서 설계하는 것과는 달리, 400평의 대지를 설계하고, 다시 그 대지 위에 네 개의 건물을 자리 잡게 만드는 일은 새로운 숙제이자 도전이었다. 2019년 1월 처음 가본 논에는 청보리가 봄처럼 푸르게 피어 있었다. 

 

네 개의 건물 배치 ⓒSamganilmok
도로면에 접한 베이커리 카페 입구 ⓒSamganilmok

 

우선 인지성과 도로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설정된 빵집 부지, 그리고 동쪽의 들과 산을 품으며 빵집의 뒤편으로 조성된 주택 부지를 계획했다. 가능하면 기존 마을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혹시나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까 고심하며 빵집과 주택의 부지를 계획하였고, 들과 마을 풍경에 좀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건물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관계를 생각하는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었다.

 

창고와 빵집 뒤편의 농가주택과 게스트하우스 ⓒSamganilmok
농가주택 ⓒSamganilmok
네 개의 건물 배치도 ⓒSamganilmok

 

네 개의 공간과 마당

전체적으로 네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해남 빵집과 농가주택의 전체 구성은 한옥과도 닮아 있다. 도로변 진입 마당에서 볼 때는 창고와 빵집이 마치 바깥사랑채의 역할을 하듯 공적 공간으로서 열린 구조를 지녔고, 창고 옆을 지나 뒤편에 자리 잡은 농가주택의 마당은 도로에서는 떨어져 프라이버시를 보호 받는다. 또 안마당의 역할을 하면서 동측의 들과 산을 향해 열려 있어 농촌의 풍광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동쪽 밭을 바라보는 농가주택 ⓒSamganilmok
게스트하우스와 농가주택 ⓒSamganilmok

 

빵집, 창고, 농가주택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의 네 개의 건물은 적절하게 그리고 독립된 장소와 공간을 가진다. 각각 열려 있는 방향이 서로 다르며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에 조성된 매개 공간, 처마, 데크 그리고 담장을 통해 적절히 구분되고 연결된다. 특히 안채와 별채 사이의 야외 주방 공간은 삶의 공간을 좀 더 외부로 확장하며, 시골 생활에 적합한 여러 기능을 담아낸다.

 

제3의 공간이 된 창고 ⓒSamganilmok

 

창고는 본래 시골 생활에 필수적인 빵집과 주택의 창고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제3의 중성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주택의 기능을 확장할 수도 있고, 빵집의 기능을 확장할 수도 있게 구성되었다. 도로변과 빵집에서 독립적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주택 마당으로도 연결이 가능하다. 때로는 서재로, 때로는 갤러리로, 때로는 체험공간으로 사용될 변화무쌍한 여러 가능성을 지닌 공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빵집은 오제 어머니의 공간이고, 창고는 오제 아버지의 공간인 셈이다.

 

ⓒSamganilmok
창고(좌)와 베이커리 건물 ⓒSamganilmok

 

언제나 빵끗빵끗, 삼산브레드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해남빵집과 농가 프로젝트는 땅끝마을 빵집이어서 ‘땅끝빵끗’, ‘빵끗빵끗’으로 불렀다. 겨울에서 봄까지 두 번째 집의 설계가 완성되었고, 그해 여름 공사가 시작되었다. 뜨거운 들 한가운데서 세 번의 태풍을 겪으며, 건물은 더없이 튼튼하고, 꼼꼼하게 지어졌고, 완공 후 남은 1200평의 논에는 앉은뱅이 밀이 심어졌다.

 

베이커리 카페 내부 ⓒSamganilmok
베이커리 카페 내부 ⓒSamganilmok

 

밀이 익고 추수를 거의 마쳤을 때, 드디어 빵집의 이름을 정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픈까지 차근차근, 천천히 준비하신다고 하셨지만, 내심 오랫동안 기다리고 응원하던 차였다. 여러 후보 가운데 결정된 빵집 이름은 ‘삼산브레드’였다. 해남 삼산면 평활리에 자리 잡은 빵집. 소박하고 멋진 이름이 지어졌다.
오제 어머니는 언제 오픈할 수 있을지,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으셨다. 여자 제빵사로서의 노고와 장사로서의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힘내서 발걸음을 내디뎌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도시를 떠난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제2의 삶을 자연과 함께, 손수 키운 곡식과 채소와 함께 빵을 만들며, 나누며, 풍경의 일부가 될 시골 생활은 설렘과 두려움을 지나 건물의 완공과 함께 감사함으로 다져져 갔다.

 

건축가가 직접 만든 로고와 포스터 ⓒSamganilmok

 

완공 후 늦어진 조경공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이듬해 여름에 찾아간 해남 빵집과 주택은 한껏 푸르고, 향기로 왔다. 논에는 모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고, 어느새 들 가운데서도 마을의 풍경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름이 정해지면 직접 가게 로고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나는 선물로 삼산브레드 로고와 포스터를 만들어서 내려갔고, 하루를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완공 사진을 찍으며, 두런두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빵실 ⓒSamganilmok
‘삼산브레드’ 내부 ⓒSamganilmok

 

오제 어머니는 이름과 로고가 생기니 진짜 시작할 용기를 얻으셨다고 하셨다. 저온창고에는 오제 아버지가 들에서 수확한 밀이 쌓였다. 내가 다녀간 몇 달 후 드디어 오픈 날짜를 정하셨고, 오픈 전 연습기간으로 한 달간 이웃들에게 무료로 빵 나누기를 하시면서 제빵사로서의 예열작업을 마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삼간일목 사무실로 르방빵과, 통밀빵을 가득담은 커다란 박스 두 개가 도착했다.

 

농가주택 ⓒSamganilmok
농가주택 ⓒSamganilmok

 

두 해를 거친 해남빵집과 농가주택의 빵끗빵끗 프로젝트는 2020년 추석에 마침내 ‘삼산브레드 & 하우스’가 되었다. 건축가란 어쩌면 삶을 주도할 건축주에게 적합한, 그리고 최소한의 배경을 제공하는 왼손의 역할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저 거들뿐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늘 받쳐줄 준비가 되어있는 왼손. 사실 해남빵집과 농가주택의 이야기는 건축보다는 삶에 있다.

 

게스트하우스 ⓒSamganilmok

 

제2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계시는 모습이 오히려 나에게는 큰 선물로 다가온다. 걱정은 거름이 되었고, 이제는 빵이 늘 부족할 만큼 너무나 열심히 잘 하고 계신다. 해남에 살면서 느끼는 일상들 그리고 제빵사로서 빵을 굽고, 베이커리와 카페를 운영하시면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는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SNS)에 수필처럼 기록되고 있다. 빵을 좋아하는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는 댓글을 보면 더없이 마음이 촉촉해진다. 어느새 나도 삼산브레드의 팬이 되었다. 오제 어머니의 글 하나를 꼭 소개해드리고 싶다.

 

“문득, 해질녘의 빛이 내려앉은 들판 건너편 겨울 배추밭 색깔이 같이 이웃하니 참 고와보입니다.
해남에 살면서 매일 매일 변하는 들판을 볼 수 있어서 그 들판에 무엇이 들어있든
화려하든 화려하지 않든 간에 그냥 좋기만 합니다.
너를 알지 못했더라면, 너를 볼 수 없었더라면, 내 삶 후회스러웠을 것 같아
나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빵집을 열지 않은 휴일 고도리 꽃집에 갔습니다.
사고 싶은 꽃과 화분을 사서 낑낑대고 가져와서 가게 앞 벤치 옆에 두었답니다.
빵가게 주변을 하나하나 틈나는 대로 채워갑니다.

아침은 어제 남겨둔 바게트를 몇 조각 썰어먹기도 하고 뚝 뜯어먹기도 하는데요,
계란후라이 하고 난 후라이팬에 구워서 버터와 사과잼 바르고 짜투리 채소는 올리브오일 뿌리고
쓱싹쓱싹 자르지 않은 바게트는 하루가 지나도 그 안은 생각보다 폭신합니다.
딱딱한 겉껍질이 안을 보호해준답니다.

가게 앞 벼를 베어낸 뒤의 풍경도 아련하여 논바닥에 내려가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베어냈으니 뿌리에서 새순이 돋았네요,

끝이라고 생각했던 인생의 시절이 있었어요, 건강을 잃었을 때, 사랑이 끝났을 때…
그때 알게 모르게 천천히 작은 새순이 돋았고, 지금 이렇게 건강한 중년을 맞고 있어요!”

2020.10.19. 삼산브레드 건축주 –

 

이런 삶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물해주신 오제 어머니, 아버지께 큰 은혜를 입은 것 같다. 두 번이나 함께 한 건축가로서의 나 자신 또한 덩달아 고마워진다. 삶은 숙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눔과 가꿈으로 삶은 더욱 더 따뜻하고 푸르게 피어난다. “언제나 빵끗빵끗! 삼산브레드!”

 

ⓒSamganilm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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