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비일상非日常을 경험하다

[Archur의 낯선 여행] ① 인도네시아 우붓의 고품격 휴양지 ‘호시노야 발리’
ⓒarchur
글 & 사진. 스페이스 도슨트 방승환  자료. Hoshino Resorts , Getty Images Bank

 

‘Archur’ 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도시와 공간을 안내하는 방승환 작가가 <브리크 brique>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시지만 그 안에 낯선 장소,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업들을 소개해 새로운 영감을 드리려 합니다.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와 공간에 대한 소개와, 현재에 이르게 된 이야기, 그리고 환경적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Archur와 함께 이색적인 세계 여행을 떠나보시죠.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 지역은 전세계인의 여행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우붓 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출입구에는 특유의 조각상들이 배치돼 있다. ⓒGettyImagesBank

 

택시 기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우붓Ubud 시내를 출발하고 30분이 지났지만 리조트는커녕 여관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은 풍경만 펼쳐졌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마지막 좌회전을 하고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자 힌두교 사원 같이 생긴 문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리조트나 호텔의 입구는 환대의 영역이다. 그래서 차에서 편하게 내릴 수 있는 여유 있는 로터리를 두고 개방적으로 조성된다.

하지만 호시노야 발리Hoshinoya Bali에는 전통 복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좁은 문 앞에서 깍듯하게 인사를 할 뿐이다. 문을 들어서기 직전까지 택시 기사의 의심은 풀리지 않은 듯했다.

 

호시노야 발리 출입구 ⓒHoshino Resorts
다섯 개의 가제보로 이루어져 있는 리셉션 영역 ⓒarchur

 

리셉션reception은 다섯 개의 가제보gazebo(정원의 정자)로 이루어져 있다. 한쪽 가제보에 놓인 소파에 피곤한 몸을 구겨 넣자 반대편 가제보에서 흘러나오는 가믈란gamelan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무나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울린 가믈란은 주변이 어느 정도 시끄러우면 꺼지고 어느 정도 조용해지면 들리는 묘한 음악이다. 눈을 감고 반복적인 음률에 집중하자 다른 방향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호시노야 발리의 핵심 공간인 물길 ⓒarchur
건물과 깍지 낀 듯 물길이 맞물려 있다. ⓒarchur
마치 강에서처럼 물길을 따라 유영하며 휴식할 수 있다. ⓒHoshino Resorts

 

호시노야 발리에서 물길은 건물과 깍지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70미터 길이의 세 물길은 동쪽에서 만나 더 큰 물길을 이루는데 이를 따라 음식점과 스파 같은 편의시설이 배치돼 있다. 모든 빌라는 물길에 직접 닿아있고 리조트 내 이동은 물길 옆에서 이루어진다. 건축가 리에 아즈마Rie Azuma와 조경설계가 히로키 하세가와Hiroki Hasegawa는 호시노야 발리를 설계할 때 지역의 고유한 풍토를 존중하여 물을 중요한 요소로 다루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논농사를 지어온 발리에서 ‘물’은 사회화의 역할과 정화의식을 위한 요소였다. 발리의 전통적인 관개灌漑 시설인 ‘수박subak’은 영적 세계와 인간 세계 그리고 자연을 하나로 결합하는 힌두 철학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와 결합하면서 지역의 중요한 문화경관이 됐다. 유네스코는 2012년 수박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발리 내 다섯 곳의 수박 경관 중 호시노야 발리가 있는 파케리산 분수계Pakerisan Watershed의 경관이 가장 오래됐다. 파케리산 강江의 근원은 리조트에서 북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티르타 엠풀Tirta Empul 사원에 있는 ‘샘’이다. 962년 와르마데와Warmadewa 왕조 때 신성한 샘 위에 사원을 지었다. 신화에 따르면 힌두교의 신 인드라(Indra, 산스크리트어로 ‘강력한’이라는 뜻으로 전쟁의 신)가 대지에 칼을 찔러 넣고 물을 끌어들여 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샘과 강에 신화가 더해지면서 우붓 정글 곳곳에 스며드는 파케리산 강은 인드라 신의 편재遍在하는 보살핌을 상징하게 됐다. 그리고 그 강물이 리조트 곳곳으로 스며들면서 호시노야 발리는 성스러운 강 속으로 편입된다. 리조트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물소리를 통해 투숙객들은 인드라 신뿐만 아니라 자연과 초자연 그리고 인간 간의 균형을 강조하는 발리 철학에 동화된다.

 

물길에 직접 닿아 있는 빌라 ⓒarchur
일본의 어느 마을을 떠오르게 하는 리조트 내 산책로 ⓒarchur
몸을 살짝 틀어야 들어설 수 있는 빌라의 입구 ⓒarchur
공들여 설계한 외부 공간의 디테일 ⓒarchur

 

이 부분에서 1914년 설립돼 줄곧 일본에서만 사업을 운영해온 호시노 리조트가 첫 번째 해외 리조트를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발리에 지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일본의 중심 종교였던 신도神道의 기본은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에 대한 숭배(かみさま, 카미사마)다. 발리의 힌두교와 묘하게 닮아 있는 부분이다.

호시노 리조트는 이곳에서 투숙객들이 ‘압도적인 비일상非日常’을 경험하기를 원했다. 섬나라라는 지형적 특징과 오랫동안 지속된 사무라이 시대로 인해 일본문화에는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판타지나 이야기가 발달해 있다. 자신들의 속마음을 철저히 숨긴 채 바깥과 단절된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거나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를 상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판타지에서 비일상의 경험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높은 담으로 외부와 차단하고 일본인 특유의 접객 태도(おもてなし, 오모테나시)로 손님을 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건 현실을 다르게 경험하는 방식이다.

 

빌라의 외부 공간 ⓒarchur
객실 ⓒHoshino Resorts

 

30개의 객실을 갖춘 호시노야 발리는 점점 대형화되는 최근 리조트 개발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진다. 촘촘한 공간구성, 공들인 건축물과 외부공간 거기에 리조트 주변의 거대한 풍광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시각적・청각적 경험과 운동감각을 끊임없이 확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풍경을 이루는 수많은 관계에 대한 각자의 탐색이 이루어진다.

탐색을 위해서는 속도를 늦춰 순간의 시간을 길게 만들어야 한다. 객실로 연결되는 좁고 바닥이 끊어져 있는 길과 지그재그로 설계된 나무 데크는 투숙객의 걸음을 늦춘다. 객실의 좁고 기다란 문은 몸을 살짝 트는 행동을 요구하고 문을 열기 위해서는 카드키 대신 열쇠를 넣고 돌려야 한다. 객실을 장식하고 있는 발리 전통공예품도 투숙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오롯이 경험하다 보면 하루의 자연스러운 속도감을 올곧이 느낄 수 있다.

 

상반된 속도와 느낌이 공존하는 하나의 공간 가제보 ⓒarchur
리조트 앞에 펼쳐져 있는 우붓의 우림 ⓒarchur
ⓒHoshino Resorts

 

내가 느낀 정점은 절벽에 매달린 카페 가제보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우붓 숲의 녹음은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빨랐다. 새는 숲속에서 분주했지만 그 새를 보려는 내 몸은 이미 늘어져 있었다. 주변 숲의 공기는 녹진했지만 차의 향기는 가볍게 맴돌았다. 상반된 속도와 느낌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해서였을까? 그 장면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호시노야 발리에서의 찰나는 느리게, 그 합은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감각의 촉수를 세우고 있었던 순간은 또렷하고 생생하게, 그렇게 보낸 그곳에서의 모든 시간은 아득하고 흐릿하게 기억되었다.

 

ⓒHoshino Resorts
호시노야 발리 야경 ⓒHoshino Resorts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