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헤제

통인동 골목, 하늘도 나지막이 내려앉은 한옥이 한 채 있다. 오헤제 건축 이해든, 최재필 대표의 공간에서 사는 이야기, 집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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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이현준

 

o.heje?

o는 office다. 두 소장의 이름(해든과 재필)에서 앞 자만 따서 조합해 ‘heje’ 라 했다. 두 건축가는 동경 예대 재학 시절 일본에서 아틀리에를 열었는데, 전시도 하는 등 종종 일본에 다녀온다고. 1년가량의 차이를 두고 해든 소장이 먼저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당시 시작한 한국 천안의 프로젝트의 감리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아틀리에는 큰 정원이 딸린 고민가를 고쳐서 지역의 아티스트들이 작업실로 쓰는 곳이다.

 

오헤제의 ‘한옥’

종로구 서촌 인근에 아담하고 오래된 한옥이 있다. 2010년에 한 번 보수를 거쳤다. 세 달여 전 두 대표가 이사와 오헤제의 새 사무실을 꾸몄다. 하늘도 나지막이 내려앉은 통인동 골목집엔 낯설 만큼 고즈넉한 정취가 있었다. 아늑함과 포근함, 오묘한 공간감이 뒤섞인 두 건축가의 집이자 사무실에서 사는 이야기, 집 이야기를 나눴다.

 

사무실을 겸한 한옥에서 일과 삶을 병행 중이다. 아파트에서의 생활과 비교한다면?

아직까지 여러가지 느낀 점들을 정리해가는 과정 중에 있다. 지금까지는 만족스럽다고 느끼는데, 여러 이유가 있다. 한옥과 아파트는 굉장히 다른 주거 환경이다. 한옥은 하물며 일반 주택과 비교해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아파트와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 더욱 극명해진다.

미닫이문을 다 떼어내고 원룸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한옥의 칸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공간을 나누고 있다는 감각을 강하게 전달하면서도 서로 이어지도록 한다. 또 한옥은 사용자가 느끼는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 예를 들면 이 공간도 벽이 아닌 창호지로 내외부가 나누어져 있다. 안과 밖의 경계가 견고한 벽인 것과 종이인 것, 긴 처마의 유무도 공간감에 차이를 부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한옥은 ‘지붕의 건축’이라는 것이다. 한옥은 처마와 지붕이 굉장히 무게감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벽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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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로부터 집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다. 건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오는 일은 없다. 큰 길을 지나 조금 큰 길, 그리고 골목길, 이윽고 요 앞 좁은 길목을 지나면 대문이 나타나는 식이다. 이전에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 때는 바로 밑에 편의점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될 일이지만 그게 참 귀찮게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이 근처의 길 건너 슈퍼는 뭐랄까, 건넌방처럼 느껴져 얼마간의 걸음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집을 나선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마을, 이웃과 수평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도 물리적으로 맞닿아 있어 옆집이 언제 출퇴근하는지 인지하는 건 예사, 어떨 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을 타고 들려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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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 공간이 사무실이기도 하지만 생활하는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근대 시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 농부이면서 목수고, 장에 나가면 상인이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논밭에 나갈 준비를 하고, 일하다가 들어와서 쉬다가 이것저것 집안일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일과 일상의 삶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근대 이후엔 모든 것이 장르화됐고, 일상과 직업에 뚜렷한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정된 직장과 사무실이 있고, 집에서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집에 있는 응접실마저 점차 기능을 상실하고 친구들은 카페에서 만나며 아이들은 공부한다는 이유로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올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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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기능이 한없이 축소되고 분화된 오늘과 달리, 예전의 삶을 담은 한옥의 건축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금방까지는 집이었다가, 어느 사이 사무실이었다가, 또다시 집이 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공간이 과연 괜찮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원래 그런 생활 방식을 담던 건축이다 보니 우리의 생활도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들어 갔다. 딱히 불편하거나 이상스러울 것은 없었다. 원룸인데도 불구하고 따로 공간을 나누는 문이 없어도, 무거운 지붕 덕분에 자연스레 공간이 구획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살다 보니 ‘과연 근대 이전의 삶을 담던, 건축으로서의 한옥에 우리가 살고 있나’, ‘그렇다면 우리도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기도 한다.(웃음)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의 시대에 그런 과거의 생활방식을 이어가는 형태로서 한옥을 생각하고 있다.

 

오헤제가 느낀 아파트 주거문화

한 번쯤은 아파트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많은 나라고, 우리 역시 아파트에서 자란 세대다. 과연 한국인의 삶에서 어떤 존재인지, 아파트라는 건축에서 무엇이 가능할까 생각해보고 싶던 중에 Apartment D라는 프로젝트를 만났다.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대표적인 부동 자산으로 여긴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이 그 안에서 실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아파트 플랜이 존재하고,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며 진화 중이다. 최근 5년의 유닛 플랜과 10년 전은 완전히 다르다. 35년 전의 플랜은 더욱 다르다. 아파트 도면은 그 시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반영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Apartment D 프로젝트에서뿐 아니라, 이전 삶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 시간이 묻은 장소에서 오늘의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앞서 과거와 현재 사이를 어떻게 이을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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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파트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논하기는 무리가 있다. 다만 공간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지금 어떤 삶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묻어있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중간 영역’에 대한 고민이다. 일반적인 아파트에서 조금 간과되는 부분이 아닌가 했다.

오래된 아파트를 고쳐 짓는 행위를 두고 건축공법의 관점에서 ‘리노베이션’, ‘인테리어’라고 구분 짓지 않나. 아파트를 손보면 ‘인테리어’, 택지 개발 지구에 새로 지어 올리면 ‘신축’. 집을 새로 짓거나 기존의 아파트를 고쳐 짓거나 본질은 ‘건축’을 만든다는 데 있다. 주택 신축과 리노베이션은 ‘공간’을 구성한다는 본질에 있어서 같은 건축행위라고 생각하고 그런 관점으로 접근했다.

 

Apartment D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로 어떤 경로로 아이디어를 얻었나?

어떤 사례나 특별한 집을 참고로 한 건 아니고 우리가 이미 정해놓은 틀 안에서 발전시켜 나갈 때 한옥이나 우리의 예전 주거공간에 있던 토방, 툇마루와 같은 공간을 스터디 하기도 했다. 그 밖에 주택 선례 중에 작업 공간이나 차고 같은 부분이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있다든지 하는 공간들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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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벽에 레퍼런스 보드를 두고 카테고리별로 사진을 모았다. 그러니 어떤 한 가지에 집중했다기보다, 다양한 것들을 모아서 볼 때에 느껴지는 시대성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우리가 먼저 생각한 이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기보다, 이미 생각을 구체화시킨 뒤, 이런 것들을 비슷하게 실현시킨 사람들이 있을까? 실제로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실제 답사가 가능한 곳은 방문하기도 한다.

 

프로젝트 진행 당시 참고했던 레퍼런스 보드를 보여주는 이해든 소장 ⒸBRIQUE Magazine

 

35년 된 아파트를 고쳐 지으면서 어떤 변수와 돌발 상황이 있었나?

 

예측하지 못했던 것 투성이었다.(웃음) 실제로 뜯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열었을 때 배관이 지나간다는 건 우리가 받은 도면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윗집의 배관이 이 집을 통과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수평 수직이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구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구조가 아닌 것도 있었다. 현장 감리에 자주 가는 편이어서, 바로바로 현장에서 확인하고 해결했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 때문에 감리를 더 신경 써서 한 부분도 있다. 우리가 가진 정보는 1984년 당시 분양 플랜 한 장이 전부였다. 실측도 겉 부분에 한정됐기 때문에 이틀, 삼일에 걸쳐 창틀을 포함해 온 집을 재고, 철거를 하는 사이사이에 계속해서 측정했다. 여기를 헐면 저기를 재고, 저기를 헐면 여기를 재는 식. 배관이 나가는 모양이나 층고가 원래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감리 때 그런 부분을 발견하면 사무실로 돌아와 전체 도면을 수정해서 다시 가지고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힘든 한편 그런게 리노베이션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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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헤제에게 Apartment D?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테리어’라는 공사의 장르 안에 너무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한다. 서점에만 가도 그 틀이 보인다. ‘3천만 원으로 인테리어 하기’. (웃음) 그나마 택지 개발지에 집을 짓는 건축주들은 무언가나마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아파트는 그렇지 않더라. 공사비에 맞춰서 마감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느냐 차이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그런 현실과 우리나라의 대표 주거 형식에 대해 고민하고, 실현시켜볼 수 있었던, 우리에겐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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