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의 이면

[정해욱의 건축잡담] ⑨ 건축가가 발견한 디자인 특이점에 관한 이야기
©Haewook Jeong
글.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 대표 ·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콜라보레이터

 

몇 해 전 수년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신축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지은지 3년이 좀 넘었고, 아주 작은 평수였지만 나름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였다. 다행스럽게도 앞서 살았던 세입자가 깔끔하게 사용해서인지 집 상태도 좋았다. 우리는 기본 마감에서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곧바로 입주하고 생활을 시작했다. 인테리어나 도배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집의 기운을 약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건축가로서의 나에게 의외의 경험적 선물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기업 건설사가 나름 체계적으로 엄선하였을 최신 마감재들을 직접 경험하고 사용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건설사의 아파트는 건축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적폐로 몰려(편리함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건설사 아파트는 못생겼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거주지를 아파트로 선택하기 전에 건축가로서 많이 고민했다. 솔직히 어디선가 꽃무늬 같은 것을 마주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웬걸,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특히 마감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촌스러운 장식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이제 아파트에는 더 이상 정체를 알 수 없는 곡선 장식의 몰딩이나 문손잡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화장실에 구비된 도기나 수전 등의 제품들도 요상한 형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조명은 전구색 매입등으로 처리되어 자동차 광택 집 마냥 새하얗고 눈부시던 거실의 조도는 옛말이 되었고, 무엇보다 꽃무늬 등의 근본 없는 패턴이 드디어 자취를 감추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 정도면 나름 모던했다.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딘가 어색했다.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가 수반하는 것들, 이를테면 높지 않은 단가에 따른 시공 방식과 낮은 마감 시공 퀄리티 등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상한 일관성이 나를 감쌌다. 디자인이 예전처럼 그렇게 못생긴 것도 아닌데, 왜 이 공간은 나를 찜찜하게 만드는 걸까. 이 찜찜함은 피곤함으로 이어졌다. 이 감정은 거실이든 주방이든 화장실이든 공간의 종류와 무관하게 일관적으로 느껴졌고, 심지어 바닥과 벽 등의 기본적인 공간 마감뿐 아니라 스위치나 문손잡이에서, 심지어 매립되어 설치된 가전제품(세탁기나 에어컨) 등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이상함은 특히 바로 하루 전날까지 머물렀던 독일 집에서의 경험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독일 집에서는 이와 같은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독일에서 살았던 집. 질감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Haewook Jeong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내가 첫 번째로 지목한 문제의 원인은 질감이었다. 집을 둘러보니 모든 인공물에서 질감, 원재료나 그것의 양감이 극도로 제거되어 있었다. 재료의 질감과 양감의 제거는 다양한 곳에서 당연하게 일어났다. 삭제된 자리는 여러 가지 코팅이 뒤덮고 있었다. 코팅된 마감은 대체로 미끈하여 손에 걸리는 것이 없다. 재료가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질감은 모두 죽어있었다. 목재의 무늬를 띄지만, 한없이 미끈한 강마루가 대표적인 사례다. 코팅이 안 되면 다른 것으로 덮어버린다. 재료 간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타일로 예를 들자면 그것의 두께나 깊이를 읽을 수 없도록, 틈새나 코너는 모두 몰탈 혹은 실리콘을 통해 메워지거나 코너 비드 등으로 가려지며 미끈함을 만들어낸다. 줄눈의 두께도 최소화되어 있었다. 사라지지도 못할 거면서, 줄눈이 애써 없는 척하고 있는 점은 바라보기에 민망했다. 차라리 당당하고 두툼하게 제대로 있어주면 안 되는 걸까.

 

우리나라 신축 아파트에서 가장 난감했던 벽. 소위 아트월의 반광택 질감 ©Haewook Jeong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모조리 덮고 메우고 가리는 것일까. 왜 어느 것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할까. 아파트는 조금이라도 거칠거나 모난 채로 남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이 편의의 측면에서 촉감을 조금이라도 거슬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갑의 위치에 있는 고객 혹은 납품처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 마감은 아니었을까? 불편하다는 불평을 듣는 것보다는 시각적 어색함을 남겨 놓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재료에 질감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먼지가 잘 낀다는 둥, 피부에 까칠하다는 둥, 사용하기에 무겁다는 둥, 별의별 컴플레인이 쏟아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적받지 않는 것이 모든 가치를 우선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지적질에 대한 과잉된 공포는 비정상적으로 과장된 친절을 낳는다. 이를테면 편의점이나 커피숍 알바생의 말투에서 존대 표현이 온갖 곳에 묻어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마시게 될 커피마저 존대받는 언어는 분명 이상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갑의 직접적 요구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을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기 언행을 단속하면서 일어나는 편이다. 불편함에 관한 지적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과잉된 사명감이다. 그런데 만약 사람의 언행까지도 자발적으로 고개 숙이게 만드는 문화가 있다면, 그곳에서 생산되는 사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불평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디테일을 압도하는 사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물에서 이는 애매모호함으로 드러난다. 공손함에 대한 의사 표명이 말에서 어미를 애매모호하게 처리하게 만들듯, 사물도 자신의 존재 방식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매모호함은 사물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있지 못하도록 만든다. 예들 들어 제거된 질감을 채우는 코팅은 특유의 일관된 마감 상태를 갖는다. 바로 반광택이다. 코팅은 무광으로 처리되더라도 아주 애매모호한 약간의 반짝거림을 남긴다. 신축 아파트에 가게 되면 바닥, 벽, 걸레받이, 문, 문 프레임, 문손잡이, 주방 가구 등등이 모두 아주 애매한 광택을 공통적으로 표출한다. 이러한 질감은 새것임을 암시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니,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예의 바르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이러한 사물과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사물의 질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나지 않으면서 친절해지려는 의지는 가전제품의 표면에 쓰인 글자들의 모양에까지 자리한다. 여기에 줄 맞춰 자리한 고딕체의 가장자리는 뜬금없이 곡선으로 애매모호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 공적인 인상을 갖추어야 하니 반듯한 고딕체를 쓰긴 하는데, 친절해야 하니까 글자의 끝은 부드럽게 흘리는 것 같았다. 여기에 기계가 작동이 끝났을 경우 단순한 알람음 대신 유려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금상첨화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친절은 친절한 ‘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ARS의 자동 응답 기능이 쓸데없이 친절하게 말을 이어가면, 오히려 그것이 사람인 척 하는 것에서 더 괘씸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는 서로 군더더기가 없을 때가 더 편한 법이다.

 

결국 필자는 해당 아트월을 도장으로 덮기로 결정했다. ©Haewook Jeong

 

어쩌면 내가 느낀 이상함의 정체는 ‘물질로 변환된 과잉 친절’일지도 모르겠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공통점을 추리자면, 좀 내버려두면 오히려 자연스럽고 깔끔할 수 있는데 굳이 하나씩 더 거드는 것들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실종된 질감도 여러 가지 증상 중 하나에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공간을 어색하게 하고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이런 것들로 가득 찬 집에서의 휴식은 거슬리는 게 많아 편안하기 어려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꽃무늬는 더 이상 없지만, 보이지 않는 꽃무늬 – 꽃무늬 같은 것을 굳이 끼워 넣으려는 오지랖 – 들은 여전히 가득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적질을 받지 않아야 하는 생존 조건 하에서 사물을 지워버려야만 하는 마음 가난한 현실이 눈에 밟힌다. 그래도 아파트가 이만큼 발전했으면 다음 세대의 아파트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도장 후의 거실 아트월 ©Haewook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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